재경원, 추경예산안 편성에 불법 자행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5.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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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예산안 위법 편성… 한국통신 주식 팔지도 않고 ‘매각 대금 부족액’ 산입
한국은행이 직원의 지폐 유출을 방치한 것은 신종 통화 정책이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런 한국은행과 재정경제원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실정법을 위반하면서 정책을 편다는 점이 그것이다. 재경원은 예산회계법을 위반하면서 예산안을 편성하는 신종 재정 정책을 펴 문제가 되고 있다.

재정경제원이 최근 96년도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95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은 불법적으로 편성되었음이 드러났다. 이는 재경원의 발표 직후 <시사저널>이 세법 전문가들과 함께 추경을 예산회계법 제33조에 의거하여 검토한 결과 밝혀진 것이다.

재경원이 올해 예상되는 세수 증가분 1조8천9백32억원으로 추경을 편성하면서 특히 불법을 자행한 부분은 재정투융자특별회계(재특) 세입 결손 보전 부분이다. 재경원은 이 부분의 예산을 9천3백80억원으로 잡으면서 그 내역을 ‘한국통신 주식 매각 수입 부족액 보전’으로 들었다.

원래 정부는 95년도 예산안에서 올해 안으로 한국통신 주식을 상장하면서 총주식 중 14%인 4천여만 주를 매각해 그 대금을 정부의 출자·융자·차관에 쓰이는 재특으로 편성했다. 당시 정부는 1주당 장외 시세를 4만원 정도로 보고 매각 대금을 약 1조4천3백억원으로 잡았었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로 예정된 한국통신의 주식을 매각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재경원은 마치 한국통신의 주식을 실제로 매각한 것처럼 꾸며 매각 대금 부족액을 보전한다는 구실로 9천여억원을 추경으로 편성한 것이다. 이는 예산회계법상 명백히 불법이라는 것이 세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경원 “관례대로 했을 뿐”

이 법 제33조는, 정부가 이미 성립된 예산을 예산 성립 후에 생긴 사유로 인해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추경을 편성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경원이 한국통신 주식 매각대금 부족액을 보전하기 위해 추경을 편성하려면 실제로 주식을 매각한 뒤 부족액이 발생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한 전직 재무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한국통신 주식을 매각해서 생기는 대금을 재특의 주요 세입원으로 편성했으면 예정대로 매각했어야 한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매각할 수 없었다면 다른 분야 세출을 줄여서라도 재특 예산을 확보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한국통신측도 추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국통신의 한 고위 관계자는 “주식을 매각하지도 않았는데 왜 정부가 그와 같은 추경을 편성했는지 모르겠다. 궁금해서 물어보니까 재경원은 매각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것뿐이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재경원의 답변은 실제로 궁색하다. 95년도 제1회 추경이 불법적으로 편성되지 않았느냐는 <시사저널>의 질문에 김영주 예산과장은 ‘오로지 관례대로 편성했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심지어 그는 예산회계법 제33조가 구체적으로 어떤 규정을 담고 있는지를 몰랐다.

그러면 재경원이 예산회계법도 모른 채 9천여억원을 한국통신 주식 매각 수입 부족액 보전을 위해 추경으로 잡았을까. 그렇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통신 주식에 대한 상장과 매각이 증시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정부가 매각을 늦추다 보니 추경이 불법으로 편성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재정 전문가는 “한국통신 주식은 약 2억9천여만 주에 달한다. 이같은 대규모 물량이 공급되면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증시가 더욱 침체할 우려가 있다. 그럴 경우 내년도 총선에서 현 정권이 불리하기 때문에 재경원이 매각을 보류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집권 여당 총선 전략 따른 것”

한마디로 집권 여당의 총선 전략에 따라 한국통신 주식 매각이 예정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재특 세입이 부족해지자 재경원은 세수증대분으로 추경을 편성해서 막는 불법을 자행하게 되었다. 이는 세수 증대가 없었다면 재특은 제대로 집행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경의 불법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북한에 쌀 15만t을 지원하는 데 따른 남북협력기금 규모 감소분을 보전하기 위해 남북협력기금 지원이라는 추경 사항으로 1천8백50억원을 편성한 것도 불법이다. 또한 교육환경개선 투자로 3천억원을 잡은 것도 마찬가지로 예산회계법을 위반한 것이다.

특히 정부가 남북협력기금 감소분을 보전하려면 재특 결손 보전으로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즉, 95년도 예산안을 보면 한국통신 주식 매각 대금은 재특의 세입 부문이고 남북협력기금 출자는 재특의 세출 부문으로 이미 5백억원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집권 여당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재정정책 수단인 예산이 불법적으로 편성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한국통신을 올해 안으로 주식 상장과 매각을 통해 민영화하겠다고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도 정부의 통신 정책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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