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좋은 일’ 하는 종신보험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3.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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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부 형태로 각광…계약자가 지정한 기관에 보험금 기탁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지만 어떤 이들은 보험증서를 남긴다. 무역업을 하는 신필상씨(37)는 두 아들의 아버지다. 그에게는 아내도 모르는 종신보험 증서가 하나 있다. 자신이 죽으면 보험금 천만원을 백혈병어린이재단에 위탁한다는 내용이다. “식구들이 내 사후에 보험금이 좋은 곳에 쓰이는 것을 보고 위안을 얻을 것이다.” 신씨는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2만원 가량을 보험료로 내고 있다.



기부 문화가 척박한 우리 사회에서 종신보험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계약자가 사망하면 보험금을 유족이 아니라 계약자가 지정한 기관에 주도록 하는 것이다. 종신보험은 생전에는 기부하는 기쁨을 누릴 수 없고 세금 면제 혜택도 못 받기 때문에 일반 기부보다 불리한 점이 있다. 하지만 매달 수만원만 내면 거액을 기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석 달 전 기부형 종신보험에 가입한 임동택씨(39·의류상)는 “처음에 보험설계사가 말을 꺼냈을 때는 ‘또 뭘 팔아먹으려고 하나’라고 미심쩍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간편하게 기부하고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국이웃사랑회 앞으로 천만원짜리 보험을 들었다.



“간편하게 기부해 큰 효과 본다”



종신보험을 운영하는 회사 가운데 체계적으로 기부형 보험을 관리하는 곳은 ING생명보험이다. 2001년 이 회사가 처음 기부형 상품을 만들었을 때 신청자가 3백31명이었는데 지난해는 4백50명으로 늘어났다. 보험금 8억원 이상의 고액 계약자도 7명이나 되고 모두 합치면 1백53억원에 이른다. 고객의 80%는 계약금이 천만원 안팎으로 일반 종신보험 계약가에 비해 액수가 적은 ‘개미’들이다. 운영 회사 처지에서 단기간에 수익을 낼 만한 사업은 아니다.



지원을 받는 곳은 유니세프·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홀트아동복지회 등 54개 기관이다. 아직 대학교는 포함되지 않았다. 종신보험 특성상 수십 년이 지나도 건재할 만한 복지재단을 골라야 한다. 지난해 후원 대상이었던 ㅅ 복지재단이 구설에 휘말리자 해당 계약의 수혜자를 다른 곳으로 바꾼 일도 있었다.



처음 기부형 종신보험 아이디어를 낸 최세연 컨설턴트는 “영국에서는 시민단체나 복지단체의 재정 확보 수단으로 국가 지원·후원회 기부금·유력 재산가의 기부금과 함께 종신보험을 주요 항목으로 꼽는다”라고 말했다. ING생명 요스트 케넨만스 사장은 “한국인은 수해 성금 모으기처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남을 돕는 일에는 열정을 발휘한다. 하지만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기부 문화는 약하다”라고 말했다.



보험을 통한 기부 사례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지난해 말 메트라이프 종신보험에 가입한 영남대 졸업생이 모교에 2억원짜리 보험증서를 기탁한 일이 있었다. 흥국생명의 한 보험설계사는 고객들에게 보험금 수령액 중 1%를 복지재단에 기부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삼성생명도 비슷한 기부형 상품 개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종신보험 하면 억만장자들이 자녀들에게 탈법·편법으로 유산을 물려주는 수단으로 악명 높았다. 그에 반해 종신보험금을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원·소규모 자영업자 등 평범한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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