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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헌법재판관들 '이상한 외출'

3년간 해외출장비 2억3천만원 쓰고 보고서도 안 남겨...헌재 "외유성 출장은 없다"

소종섭 기자 ㅣ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3.08.19(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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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과 헌법재판소(헌재) 재판관 임명을 둘러싸고 사회적인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시사저널>은 헌법재판관들이 최근 3년간 해외 출장을 다녀온 기록을 입수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재판관들은 2001년에 8천1백여만원, 2002년에 9천1백여만원, 2003년 상반기에 5천7백여만원 등 모두 2억3천여만원을 해외출장비로 사용했다.

베니스위원회 총회 등 국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경우도 있었지만, 단순한 ‘연구·시찰’도 많았다. 한번 출장을 갈 때 보통 천만원을 썼으며, 기간은 사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주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유럽쪽 출장이 많았고, 간혹 미주 지역도 있었다.

2001년에는 한대현·이영모·권 성·김효종 재판관이 ‘헌법 재판 제도 연구·시찰’과 ‘베니스위원회 총회 참석’ 명목으로 유럽 지역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기간은 15일부터 20일까지 차이가 있지만, 집행된 예산은 1천55만원으로 똑같았다. 김영일·하경철 재판관은 18일간 캐나다와 미국 등 미주 지역으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역시 1천55만원을 썼다.

2002년에는 김경일·송인준·권 성·한대현·하경철·김영일 재판관이 2001년과 비슷한 명목으로 유럽 지역을 다녀왔다. 12일 일정이었고, 집행된 예산은 2001년과 같은 1천55만원이었다. 13일간 미국으로 출장을 간 김효종 재판관에게 지급된 비용 또한 같았다. 2003년 들어 출장 기간은 예전과 같았지만, 재판관들의 출장 비용은 1천40만원으로 10만원 가량 줄었다.


문제는 한번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천만원이 넘는 국민의 세금을 사용한 헌법재판관들이 귀국한 이후 아무런 보고서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 데 얼마를 쓴 것인지,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어디를 시찰하고 무엇을 연구했는지 내역을 알 방법이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헌재 관계자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장관급인 헌법재판관들의 해외 출장은 ‘공무 국외 여행 규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 규정은 원래 행정부 소속 국가 공무원의 국외 출장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해 1988년 12월31일 대통령령으로 공포한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관들은 행정부 소속이 아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재판관들의 공무 국외 여행에 대해서는 현재 아무런 규정이 없다. 헌법재판소는 관행대로 ‘행정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규정에 따라 재판관들의 국외 출장을 처리해 온 것이다.

‘공무 국외 여행 규정’ 2조 3항에는 장관급에 상당하는 공무원과 외교통상부장관이 정하는 차관급 상당 공무원에게는 다음 3개 항만 적용된다고 되어 있다. △출국 10일 이전에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해 외교통상부장관에게 요청한 뒤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긴급한 경우에는 구두로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여행 결과 중 외교 업무와 관련된 사항에 한하여 귀국 후 14일 이내에 외교통상부장관에게 통보하거나 보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출장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그러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인 임지봉 교수(건국대·법학과)는 단순한 규정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법 논리 이전에 국민의 세금을 수억원 쓴 것인데 그에 대한 보고서가 전혀 없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를 태만히 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어떤 사안에 대해 합헌인지 위헌인지를 판단하는 최종 심판관들인 헌법재판관들에게는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김광수 공보관은 “헌법재판관들은 실제로는 출장비보다 더 많은 돈을 쓴다. 부족한 돈은 재판관들이 자기 돈을 보탠다. 일각에서 의심하는 외유성 출장이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정된 예산에서 돈을 써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일정액 이상은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그의 말이 얼마나 맞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헌법재판관이 자기 돈을 써가며 해외 출장을 다녀온다는 말은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게다가 일부 재판관들은 중복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 재판관이 다녀온 지역을 다른 재판관이 또 다녀온 것이다. 재판 제도를 연구·시찰하는 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일까.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김공보관은 “헌법재판관들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을 한다. 같은 지역에 가더라도 재판관마다 관점이 다 달라 요구하는 자료도 다르다. 따라서 중복 출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국고를 사용해 출장을 다녀왔는데 보고서를 남기지 않는 것이 비단 헌법재판관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대법관들도 비슷하다. 임기 6년인 대법관들은 재임 중 2년에 한번씩 모두 세 차례 ‘국제화 연수’를 다녀온다. 다른 나라 대법원을 방문하고 사법 제도를 시찰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대략 2주 동안 유럽과 미주 지역을 돌아보는 것이어서, 헌법재판관들의 ‘해외 시찰’과 성격이 비슷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취지 자체가 눈으로 가서 보고 시야를 넓히라는 것이어서, 의무적으로 보고서를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사법부의 최고 권위자들인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이 해외 출장을 가는 것을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장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그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국민의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 없다면, 자칫 공인 의식 부재 내지는 특권 의식이 투영된 현상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제도적인 보완책과 함께 당사자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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