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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는 남편들 “마누라! 제발 때리지 마”

매 맞는 남편 23%, 갈수록 증가… 가정 위해 대부분 참고 살아

成耆英 기자 ㅣ 승인 1997.10.0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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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는 남편이 있다고?” 매 맞는 여성들을 위해서는 피난처가 마련되어 있지만 남편도 맞고 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매 맞는 남편은 있다. 또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이다.

김광일 교수(한양대 의대·신경정신과)가 전국의 기혼 남녀 1천3백여 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30.9%인 4백6명이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여성 응답자의 37.5%가 폭행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고, 아내로부터 폭행당했다고 대답한 남성도 23.2%나 되었다. 이같이 매 맞는 남편이 많은데도 그들이 별로 노출되지 않는 까닭은, 남성들이 사회 통념상 아내로부터 맞은 일을‘부끄러운 일’로 생각하고 공개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다리미 던지고 칼 휘둘러

40대 직장인 ㄱ씨. 아내가 외도하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녀들을 생각해서 ‘저러다가 말겠지’하는 심정으로 모른 체해 왔다. 이렇게 3년 가량이 지난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의 외도 사실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이미 외도 사실을 알고 있던 ㄱ씨는 가정으로 돌아올 것을 당부했다. 상황은 이때부터 역전되기 시작했다. 남편이 자신의 외도 사실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내는 도리어 남편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별 것 아닌 남편의 행동에도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어 왔다.

처음에는 할퀴거나 꼬집더니 이것으로 성이 차지 않자 집기를 집어던지는 일이 늘어났다. 이때부터 ㄱ씨는 상습적으로 구타당했고, 직장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아내 때문에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아내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당하기까지 했던 그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남성의 전화 상담 창구를 찾았다.

95년 문을 연 남성의 전화(02-652-0456∼7)에는 매일 30∼40통씩 상담 전화가 걸려온다. 그 중 절반 가량은 매 맞는 남편들의 호소 전화. 그러나 호소라기보다는 이혼 상담에 가깝다. 대부분 아내의 구타가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들이다. 그만큼 매 맞는 남성들은 혼자 고민한 끝에 이혼을 결심한 뒤에야 상담 기관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ㄱ씨는 지금도 매주 토요일 남성의 전화가 마련하는‘새 출발 모임’에 나가 비슷한 처지의 남성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아픔을 치유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과 달리 남성이 아내로부터 맞고 살았다고 해서 이혼이 성립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상처의 정도가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의 전화 이 옥 소장은 “여성 취업이 늘어나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면서 아내의 구타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런 이유로 이혼을 생각하는 남성은 적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이 두려워 참고 살려는 경향은 여자보다 남자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30대 중반인 ㄴ씨가 아내로부터 폭행당한 것은 시부모에 대한 용돈 문제가 화근이 되었다. 그동안 10만원씩 드리던 용돈을 아내의 동의 없이 5만원 올리자 이에 격분한 아내가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장모도 “폭력배를 동원해서라도 가만 두지 않겠다”라며 딸을 거들었다. 심지어 아내는 다리미를 집어던지거나 칼을 휘두르기도 했다.

남편이 가하는 폭력의 경우 직접 행사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내들은 격분하면 주로 주방 기구 등 집기를 집어던진다는 외국의 조사 결과도 있다. 부부 싸움 끝에 피자가 담긴 프라이팬이나 스파게티 접시를 집어던지는 영화의 한 장면은 극적 긴장 조성을 위한 허구만은 아니다. 남성의 전화를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도 폭행당한 흔적이나 아내가 던진 집기에 얻어맞은 상처를 그대로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사 소통 훈련 통해 갈등 조정해야

그런데도 94년 가정 폭력 전문가인 머레이 스트라우스가 미국 사회학회에서 발표한 조사 결과는 남편과 부인의 폭력에 대해 상당수가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남편의 손찌검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국인의 10%에 불과했지만, 아내가 남편을 때려도 된다고 응답한 사람은 25%나 되었다. 미국인 대부분이 아내가 남편을 때리는 것은 큰 상처를 입히거나 실질적인 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별 것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내의 폭력에 대한 미온적 태도가 가정 불화를 누적시켜 결국은 여성 자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경고한다.

물론 매 맞는 남편들은 매 맞는 아내에 비해 숫자도 적고 피해 정도도 약하다. 김광일 교수는 “매 맞는 남성이 없지 않지만 배우자간 폭력의 원인으로 보자면 미미하다. 오히려 남성의 피해를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은 가정 폭력의 원인을 희석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비판한다. 나우리 정신건강센터 권진숙 박사(사회복지학)도 “배우자 폭행의 경우 누가 가해자냐 피해자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상습 폭행을 제외하고는 폭행당하는 과정에서 방어적인 폭력도 나올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의사 소통 훈련 등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과 사회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에서도 아내의 폭행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이 80년대 중반에 겪었던 부부 갈등 양상이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베티 프리던이 가정 생활에서 느끼는 여성들의 불만을 모아 쓴 <여성의 신비>가 베스트 셀러가 된 지 꼭 30년 만에 <뉴스위크> 편집장 엘리스 코즈는 얼마전 <남성의 세계>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남자의 세계는 그들이 느끼는 사회적인 무력감과 위기의식, 그리고 아내에 대한 소심증, 두려움 같은 것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어쩌면 명예 퇴직과 총체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한국 상황하고도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명퇴 증후군’을 낳은 사회 분위기가 소심하고 매 맞는 남편을 양산하고 있다는 그럴싸한 분석도 나온다(그래서인지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남자의 위기>이다).

PC통신 하이텔에는‘맞사모’라는 이름의 동호회가 하나 있다.‘맞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의 줄임말이다. 93년 30대 기혼자 중심으로 처음 만들어져 점점 연령층이 확대되고 있다.‘맞아서 생긴 상처의 정도에 따라 가입 자격을 심사한다’는 가입 조건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 모임의 회원이라고 모두 맞고 사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모임의 취지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아내에게 맞고 살 각오로 가정의 행복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물론 남편이나 아내 어느 한쪽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지금 당장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 남편이나 아내가 있다면 이 말에 담긴 희생과 상호 존중의 정신을 떠올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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