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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반란 "몸둥이찜질 못참겠다"

교내 모순에 자극된 고교생 집단 행동 잇달아…전근대적 교육 풍토가 교육 위기 불러

김은남 기자 ㅣ ken@sisapress.com | 승인 1996.10.17(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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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윤무영
봇물 터진 분노:교사 폭력에 항의하던 한국광산공고 학생들의 집단 행동으로 깨져나간 유리창. 90년대 고등학생 운동은 인권 회복을 주제로 전개되고 있다.
 
 
단양 방면 시내 버스는 순식간에 소란해졌다. 지난 9월17일 오전 8시께. 승객은 대부분 등교하려던 한국광산공고(충북 제천) 학생들이었다. 버스가 멈춘 제천시 중앙동 중앙시장 정류장에는 같은 학교 학생 50여 명이 무리를 지어 모여 있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2학년 ㅈ군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정류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한 아이가 버스에 올라타 ‘오늘 데모를 한댄다’라고 소리치자 버스에 있던 아이들도 우르르 따라 내렸다. 버스에 남은 아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백여 명으로 불어난 학생 무리는 골목길을 따라 학교까지 40분 남짓을 행진했다. 1교시 수업이 시작되고 20여 분이 지나고서야 학교에 도착한 이들 가운데 선두에 선 몇몇이 학생동 건물 유리창 3~4장을 깨뜨리며 소란을 피웠다. 교사 몇몇이 이를 제지하러 나서자 학생 일부는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고, 일부는 교실로 들어가 남은 수업을 받았다. 학교측 표현대로라면 이것이 ‘1차 소요’이다. ‘2차 소요’는 1교시가 끝난 직후 발생했다. 주동자로 추정되는 학생들을 따로 추려 조사하느라 학교측이 방심한 사이 1학년 교실 쪽에서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것이 손쓸 새도 없이 전학급으로 확산되어 버린 것이다. 이 날 깨진 유리창은 2백여 장. 사태는 결국 경찰이 개입해 주동 학생 2명을 긴급 구속하는 것으로 끝났다.

   
 
ⓒ시사저널 윤무영
친구야, 어디 있니?:학생들은 구속된 학생이 희생양일 뿐이라고 입 모아 주장한다.
 
 
학교·교사에 불만 팽배…“모두가 주동자”


경찰 조사 결과 학교측은 사태가 발생할 것을 사전에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위가 있기 전날인 16일 기계과 2학년 학생 13명이 학교 앞으로 건의문을 남기고 무단 조퇴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건의문에서 ‘담임인 이 아무개 교사가 지각한 학생들을 심하게 때렸다’며 체벌 금지 및 통제 완화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담임 교사는 ‘지각 한 번에 종아리 10대, 두 번 이상에 종아리 20대’는 2학기 초 학생들과 약속한 사항이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전교생 대부분이 순식간에 시위에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9월21일 제천경찰서 면회실에 와 있던 구속 학생들의 학교 친구 11명은 “주동이 어디 있어요?”라고 입을 모았다. ‘시위를 한번 해야 한다’는 얘기는 입학 초부터 암암리에 돌았으며, 문제의 담임 교사뿐 아니라 학교·교사 전반에 대해 쌓여 있던 불만이 조퇴 사건을 계기로 우연히 터져 나왔을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또 학교측이 언론에 공개한 학생들의 요구 사항 또한 조작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학교측은 시위 사태 직후 반별 토론을 한 결과 학생들이 △두발 자율화 △자유로운 지각·조퇴 허용 △자율 학습 폐지 △교사의 체벌 삼가(많이 나온 의견 순)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흡연실 설치나 남녀 공학 실시를 요구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은 고등학생이 어떻게 그런 비상식적인 요구를 하겠느냐며, 농담처럼 나온 얘기를 오히려 전면에 부각해 자기들을 패륜아인 양 몰고 있다고 항변했다.

뱉은 가래침을 다시 핥은 학생

한국광산공고 사태는 이전과 달라진 학생 소요의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소강 상태이던 고등학생들의 집단 시위가 90년대 들어 새로운 형태로 재연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말에는 ‘고등학생 운동’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학생들의 집단적인 욕구 분출이 활발했다. 가장 앞선 것은 사립 학교의 ‘사학 비리 척결 투쟁’이었다. 87~88년에만도 전국적으로 40여 고등학교가 여기에 휘말려 길게는 6개월에 이르는 학내 시위로 진통을 겪었다. 거의 같은 시기 학생회 직선제를 관철하려는 시위도 빈발했다. 89년 ‘전교조 지지 및 관련 교사 징계 저지 투쟁’은 그 정점이었다.

80년대 학생 시위가 사학 비리·전교조 등 정치 이슈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90년대 학생들은 인권 회복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PC 통신을 통해 만난 중고등학생들이 올초 결성한 ‘하이텔 학생복지회’도 학교의 비민주적인 운영 방식과 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 사례를 여론화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시사저널> 제336호 참조). 이번에 시위를 일으킨 한국광산공고 학생들은 교사 폭언과 폭력에 가장 많은 불만을 표시했다. 이들이 공개하는 인권 침해 사례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수업 시간 ㅎ학생이 교실 바닥에 가래를 뱉었다. 이를 본 ㅂ교사가 교실 뒤에 있던 마대자루를 부러뜨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후 그 학생에게 “이 개××야, 5분 내로 몽땅 핥아 먹지 않으면 죽이겠다”라고 협박했고, ㅎ학생은 결국 교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실업계인 이 학교 학생들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입학 이후 인격적인 모멸감을 수도 없이 맛보았다고 주장했다. 60∼70년대 산업 팽창에 따른 각종 제도적 유인책으로 우후 죽순처럼 생겨났던 실업계 고등학교는 80년대 이후 날로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성적도 점점 하향화하는 추세이다. 지난해 엄상호씨(강원대)가 석사 논문에서 실업계 고등학생 1천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졸업 후 취업이 아닌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은 전체의 91.1%였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은 진학을 할 수 없는 이유로 공부를 못하거나(38.2%) 공부가 하기 싫어서(43.4%)라는 이유를 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라는 학생은 16.1%에 불과했다. 교육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이석태 변호사는, 이처럼 정체감이 상실된 실업계 학생들이 자기를 무시하는 교사들에게 주눅이 들거나 반대로 극도의 반감을 갖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실업계 고등학교의 특수한 문제로 국한해 보는 것은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고 조혜정 교수(연세대·문화인류학)는 지적한다.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일은 인문계 학교에서도 일상적으로 발생하며, 단지 그 불만을 터뜨릴 창구가 인문계는 더 교묘하게 봉쇄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번 사태를 ‘교육의 위기·학교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특히 사회 전반의 보수 회귀 분위기와 맞물려 학교와 학생 간의 대화 통로가 막히면서 학생들이 ‘반란’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혜정 교수의 우려를 입증이나 하듯 한국광산공고 사태 1주일 후 또 다른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9월24일 부산 대덕여고(부산 사상구)에서 학생들이 집단으로 시험을 거부한 사태가 그것이다. 발단은 교사들 사이의 폭력 사건이었다. 교내 환경 개선과 인사위원회 설치 등을 요구하며 교사들의 서명을 받던 ‘교사 의견 수렴을 위한 모임’(수렴 모임) 교사 26명이 이를 제지하던 ㄱ교사 등 2명을 폭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고, ㄱ교사도 폭행을 당한 것은 자신이라며 맞고소한 사건이다. 그러던 차에 검찰 조사를 관망하고 있던 학교측과 교육청에 학생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이 학교 학생회는 수렴 모임 교사들이 학생들의 요구를 학교측에 전달하려던 과정에서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으므로 ‘ㄱ교사가 폭력을 행사한 것은 우리들의 의사를 짓밟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폭력 교사를 즉각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한국광산공고나 부산 대덕여고 모두 교사 폭력을 매개로 집단 행동이 야기되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학원 폭력을 추방하려면 교사 폭력부터 뿌리 뽑으라.’ 두 달에 한 번꼴로 PC 통신에 개설되는 학교 폭력 관련 토론실에는 이같은 비아냥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조혜정 교수는 ‘오늘날의 학교는 사디즘과 매저키즘을 가르치는 온상’이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체벌의 수위를 넘어선 교사들의 폭행이 계속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에게 체벌을 가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교육법에 명문화되어 있는 일본(학교교육법 제11조)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교사 폭력은 한 예일 뿐이다. 5·31 교육 개혁 이후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입시 위주의 파행적인 교육 풍토가 지속되는 한 ‘제2, 제3의 학생 반란’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데 교육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 해결책으로 모두가 공감하는 대목은 있다. 학생들을 의사 결정권과 인격을 가진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자각이 그것이다. ‘교육 제도·시설·교재·방법은 항상 학습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여 능력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강구되어야 한다’는 교육법의 정신이 유명무실해질 때 학교의 붕괴를 촉진하는 가장 약한 고리가 될 것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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