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두 아들의 병적 기록 미스터리
  • 김 당 기자 ()
  • 승인 1997.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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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인·철인 없어 변조 의혹…“면제 처분은 위법” 주장도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 두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이 공론화한 가운데 병무청의 병역 면제(제2 국민역 편입) 처분 자체가 위법이라는 주장이 처음 제기되었다. 이같은 주장은 병무청이 뒤늦게 공개한 병적기록표(사본 및 원본)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우선 이대표의 장남 정연씨(34·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제도실 연구위원)의 병적기록표에는 병역 면제 처분을 내리는 데 필요한 군 병원의 정밀 신체검사 기록이 누락되어 있고, 징병관의 직인과 지방(병무)청 대조 확인 그리고 본인 사진과 철인(鐵印)이 없는 등 엄격히 작성·관리해야 하는 정부의 병적(兵籍) 공문서로서 효력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 형 정연씨와 마찬가지로 체중 미달로 병역을 면제받은 수연씨(31·미국 유학)의 병적기록표에도 징병관의 직인이 없을 뿐 아니라 석연찮은 가필 흔적이 있고, 군 병원에서 정밀 신검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정작 그 결과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 역시 공문서로서의 효력을 의심받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이대표 두 아들의 병역 문제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자 병무청이 뒤늦게 국회에 제출한 병적기록표(사본은 7월30일 제출, 원본은 7월31일 공개) 등 관련 서류를 정밀 분석한 전직 병무청 고위 관계자(김○○씨)가 제기한 것이다. 8월1일 <시사저널> 취재팀과 함께 관련 서류를 검토한 김씨는 ○○지방병무청장을 지낸 ‘병무통’인 데다가 여야 양쪽과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 제3자라는 점에서 이같은 주장은 신뢰할 만하다.

서울 지방병무청에서 3년간 징병관으로도 재임한 김씨에 따르면, 두 사람의 병적기록표는 한마디로 의혹과 허점투성이이다. 따라서 이를 병적 기록으로 인정하기가 어렵고, 이 기록만으로 병무청이 병역 면제 처분을 내렸다면 그 자체가 위법한 행정 처분이라는 것이다.
우선 정연·수연 씨 두 사람의 병적기록표는 둘 다 73년 2월20일 승인된 정부 공문서이나 그 양식이 서로 다르다. 또 둘 다 상당 부분 가필 흔적이 있다. 또 정연씨 병적기록표에는 사진과, 변조를 막기 위해 그 위에 찍는 철인 흔적이 없다. 병무청 주장은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떨어진 것이라지만 철인 흔적까지 없다는 것은 석연치 않다.

수연씨 병적기록표에는 가필 흔적이 역력하다. 가족 관계 난을 보면 처음에는 ‘이회정­부’ ‘김경희­모’라고 썼다가 각각 ‘백부’ ‘백모’라고 ‘백’자를 가필했다. 가족 관계 난의 앞머리에 부모 대신에 백부모 이름을 쓰고 그 밑에 형 이름을 쓰고 옆칸에는 아버지 이름만 쓴 것도 엉뚱한데, 아버지 이름(이회창) 글자는 앞의 글씨와 필체가 다르고 ‘대법원 판사’라는 글씨가 가필되어 있다. 만 19세가 될 때 작성하는 병적기록표의 기본 인적사항은 통상 본인이 직접 기재하거나 병무 공무원이 작성한다. 따라서 병무 담당자가 착오해 가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병무청의 주장이다.
정연씨 기록표에는 가족 관계가 모두 제대로 적혀 있지만 가필한 흔적이 있다. 직업 난에 ‘대법원 판사’라고 쓴 글씨는 다른 글씨와 필체가 다르다. 서류 조작에 의한 면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가필 흔적 때문이다. 둘 다 공교롭게도 대법원 판사라는 가필 흔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연씨 부(백부) 직업 난에는 ‘공직자’라는 스탬프가 찍혀 있다. 통상 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체적인 직업은 명기하지 않게 되어 있다. 군은 고위층 자녀의 병역 비리를 막기 위해 고위 공직자 및 특수층 자녀를 ‘특별 관리 대상’으로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호주 및 세대주 난에 조부인 ‘이홍규’씨를 적은 것도 엉뚱한 대목이다. 호적법상 차남인 이회창씨는 혼인해 분가함으로써 독립 세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이홍규씨는 호주 및 세대주가 될 수 없다. 만약 이회창씨의 형인 이회정씨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면 가능하나, 이홍규씨를 ‘호주’로 이회정씨를 ‘부’로 기재한 것은 특수층 자제 특별 관리 대상에서 면제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 천의원측의 주장이다. 즉 특별 관리 대상자가 되면 주시를 받게 되어 그만큼 병역 면제 판정을 받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를 피해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수연씨는 특별 관리 대상서 제외?

이는 두 사람이 동일한 법을 적용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차 판정의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는 사실과 맥락이 닿아 있다. 이를테면 2차 신검에서 현역 판정 기준보다 체중이 1㎏ 미달한 수연씨는 일단 국방부령 377-14조에 의거해 5급(제2 국민역)에서 4급(방위병 소집)으로 상량 판정을 받았다. 반면에 같은 5급인 정연씨는 상량 판정을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대표의 주장은 둘째 아들은 2차 신검(입영 신검) 때 5급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특수층 자제 특별 관리 대상이라 4급 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보통 사람보다 더 엄격하게 법이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연씨는 이대표의 주장대로 특수층 자제여서 상량 판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법규를 정상적으로 적용받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수연씨에게 적용한 국방부령 377­14조에는 ‘다만, 신장이나 체중으로 5급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심신 장애의 정도를 파악하여 차상위 등위로 판정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수연씨는 심신 장애를 측정하는 7개 진료과에서 모두 정상 판정을 받았다. 병무청도 국방부령 377­14조에 따라 수연씨에 대해 4급 판정을 한 것이나 특수층 자제 사항을 고려해 상량 판정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따라서 수연씨는 처음부터 특별 관리 대상에서 제외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형제가 둘 다 똑같이 체중 미달로 면제되었지만 법규 적용이 달랐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보여 주는 것은 수연씨의 병적기록표 상단에 표기된 ‘체중 재검’이라는 글씨이다. 기록표에 따르면, 85년 10월 병무청 신검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은 수연씨는 89년 7월18일 306 보충대 입소 신검에서 4급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90년 1월8일 56사단 방위 소집에서 다시 ‘체중 재검’ 판정을 받고 1월11일 수도병원 입소 정밀 신검에서 키 165㎝ 몸무게 41㎏으로 5급 판정을 받고 병역이 최종 면제되었다. 이대표는 입소 당시 둘째가 심한 위염을 앓고 있었다고 했으나 내과 기록은 정상이었다.
정연씨 병적기록표에서 드러난 결정적인 허점은 ‘체중 재검’ 같은 재검 사유도 적혀 있지 않고 군 병원 신검 기록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정연씨는 학적 변동(휴학) 사유로 83년 3월 병무청 신검에서 키 179㎝ 몸무게 55㎏으로 갑종(현재의 1급) 판정을 받았으나 미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 과정에 있을 때인 91년 2월에 받은 102 보충대 입소 신검에서 체중 미달(몸무게 45㎏)로 5급 판정을 받았다.

정연씨 본인의 주장은 2월11일 입소 후 첫날 선발된 20명과 4일간 정밀 검사를 받은 뒤 5급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병적기록표에는 ‘91년 2월11일 보충대’ 신검 판정(5급)을 받자마자 같은 날짜에 병역 면제(‘2월11일 제2 국민역’) 처분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군의관의 기록이 맞다면 당일 판정을 내린 것이 되므로 정밀 진단을 받았다는 근거 기록이 없고 그 날짜로 병역 처분까지 받은 것이 된다.

이처럼 반드시 군 병원 정밀 신검을 받게 하는 이유는, 보는 눈이 많은 병무청 신검 때보다 군 부대 입소 신검에서 편법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병무 행정은 감사원의 엄격한 감사를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일반 수검자가 병무청 관계자와 짜고 병역을 기피하려고 할 경우에도 일단은 입소한 뒤 군 병원 관계자와 짜고 정밀 신검 판정을 받은 다음 통상 한 달쯤 뒤에 그 판정(5급) 기록표를 근거로 병무청이 병역 면제(제2 국민역) 처분을 내린다(수연씨도 89년 7월18일 입소 신검 후 40일이 지난 8월28일 ‘보충역’ 처분을 받았고, 90년 1월8일 방위병 입소 신검 후에는 1월30일에 병무청의 ‘제2 국민역’ 처분을 받았다). 그래야 병무청은 군 병원 관계자와 짜고 했더라도 서류상으로는 ‘면피’가 되기 때문이다.

“정연씨에 대한 입영 연기 자체가 특혜”

실제로 군 관계자들도 고의성이 있건 없건 신검에서 ‘장난’을 치기 쉬운 곳은 병무청 신검보다는 흔히 ‘입소 정밀’이라고 부르는 군 병원 신검 과정이라고 입을 모은다(40~41쪽 관련 기사 참조). 이에 대해 이대표와 정연씨는 “국군 춘천병원에서 나흘간 고의로 살을 뺐는지 여부에 대한 정밀 검사를 받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병적기록표를 검토한 김씨는 “서류에 드러난 보충대 판정 기록만으로는 병역 면제 처분을 할 수 없다. 특히 다른 질병이 없는 단순 체중 미달의 경우 반드시 군 병원이 정밀 신검을 해 그 기록을 근거로 삼아 병무청이 병역 처분을 내리게 돼 있다. 따라서 두 사람에 대한 병역 처분의 효력이 의심스럽다”라고 지적했다.
또 병역법 시행령에는 만 27세까지만 입영 연기 신청이 가능하다. 그런데 63년 4월생인 정연씨의 경우 90년 12월31일까지 8개월 이상을 초과해 입영 연기 허가를 받았다. 이는 병무청장이 허가해야 가능하다. 보통 유학생들은 만 26세 전에 귀국해 신검을 받는다. 학업이 남아 있더라도 입소 신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영 연기 자체가 특혜라는 지적도 있다. 병무청이 국회에 제출한 ‘징병 검사 신장·체중 불합격(5급)자 명단(90∼93년)’ 자료에 따르면 절대 다수는 71∼74년생들이다. 91년 서울 지방병무청에서 면제 처분을 받은 ‘최고령자’는 △62년생 1명 △63년생 2명 △64년생 1명 △65년생 2명뿐이다. 각각의 신장(㎝)/체중(㎏)은 △154/74 △168/42, 167/102 △175/114 △170/106, 181/117이다. 다른 해에도 절대 다수는 ‘체중 초과’였다. 91년 2월 입소 신검 당시 정연씨는 만 28세였다. 이씨처럼 나이가 꽉 차도록 입영을 연기받은 사람도 없지만, 사병으로 입대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나이였다. 게다가 이 명부에는 두 형제의 명단이 없다. 입소 후 면제자는 전산 기록에 없다는 것이다.

이대표와 당사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0∼70%는 해명을 믿지 않고 있다. 이같은 불신은 공교롭게도 둘 다 병무청 신검에서는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몇 년 뒤 입소 후 신검에서는 체중이 10㎏씩 줄어든 상태에서 5급 판정을 받아 면제 처분되었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입소 당시의 몸무게가 자연스런 체중 감소에 의한 정상값이라면 이같은 판정을 둘 다 정상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37쪽 <도표>에서 보듯 왜 하필이면 면제 판정을 받은 입소 신검 때만 둘 다 체중이 최저값을 기록했느냐이다. <시사저널>은 이같은 병적기록표의 의혹을 해소하고 당사자의 반론을 보장하기 위해 이정연씨의 측근을 통해 여러 번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이씨는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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