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97% “핵개발 절실”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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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군 연구> 보고서…“통일 후 주변 4강 견제 위해”
우리 군은 절대 다수가 독자적 핵 개발을 강력히 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시사저널>이 단독으로 입수한 <21세기 한국군 연구>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핵 개발에 대한 현역 군인들의 견해를 공개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비공개 보고서는 군발전연구조사사업위원회(위원장 최평길 교수)가 육·해·공군 전장병을 모집단으로 하여 무작위 표본 추출한 부대를 직접 방문해 현역 장병 1천7백87명(육군 1,256명 해군 278명, 공군 253명―장성 290명, 영관 477명, 위관 465명, 하사관 304명, 병사 251명)을 대상으로 면접 및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연구 분석한 것으로, 지난 5월 청와대와 국방부장관에게 보고되었다(<시사저널> 제306호 커버 스토리 참조).

김영삼 정부 들어 첫 ‘두 자릿수 국방 예산’ 책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된 이 실증적 보고서는, 특히 핵무기를 포함한 국방력 향상에 필요한 한국군 무기 체계 개발에 대한 군의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특히 최근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국과연·소장 배문한)에 대한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70년대 국과연의 비밀 핵무기 개발 계획이 미국의 압력에 의해 백지화했다는 주장이 처음으로 정식 제기된 것도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부분이다.

먼저 <표1>은 북한 핵 문제와 주변 4강의 핵 보유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의 핵 보유에 대해 군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 군의 절대 다수가 핵을 제조하거나 핵 제조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강력한 핵 개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군은 △핵 제조 능력은 갖추되 핵 제조는 보류(49%) △과거 역사를 고려해 핵 제조를 해야 한다(47.5%)는 견해를 나타내 절대 다수(96.5%)가 핵 제조 또는 핵 제조 능력 보유를 주장하는 데 반해 △극소수(1.3%)만이 미국의 핵우산 속에 있는 한 핵 제조는 불필요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군의 본질적 특성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일반 국민의 핵 보유 견해와는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또 <표2>에서 보듯 자체 무기 체계 개발에 대한 견해를 묻는 조사에서도 현역 군인들은 절대 다수(96.5%)가 기술개발의 필요성을 절감(적극적 개발 필요 87.7%, 약간 필요 8.8%)하는 데 반해 극소수(0.8%)만이 이에 부정적(별로 불필요 0.7%, 전혀 불필요 0.1%)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우리 군의 절대 다수는 핵무기를 포함한 독자적 무기 체계 개발을 강력히 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표3>에서 보듯, 통일 후 한국의 가상 적국에 대한 견해를 묻는 설문에서는 △군의 대다수(66.2%)가 일본을 가상적으로 지목한 반면에 △중국은 21.6% △러시아는 5.1% △미국은 4.6% 등으로 낮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사실은 통일 한국의 가상 적에 대한 인식 태도와 계급 간에 상당한 유의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낮은 계급(위관·하사관·병)에서는 전체 평균보다 10% 가량이 더 높은 76% 가량이 일본을 가상 적으로 지목한 반면 장성 계급은 일본(48%) 다음으로 중국(38%)을 상대적으로 높게 지목했다.

다른 계급에 비해 일본과 중국을 동일한 비중으로 꼽고 있는 장성들의 통일 후 가상 적에 대한 인식 태도는, 일본(78%) 다음으로 미국(14%)을 가상 적으로 꼽고 있는 병사 계급과 특히 구별된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젊은 세대인 병·하사관·위관 들은 무역 개방 압력 등에 대한 반미감정으로 미국을 가상 적으로 꼽는 비율이 높아져 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관련 근거로 ‘대학생이 싫어하는 국가’를 연대 별로 조사한 결과, 그 순위가 △70년대는 북한(61%) 일본(29%) 중국(4%) 미국(3%) 소련(3%) △80년대는 일본(57%) 미국(16%) 북한(15%) 소련(12%) 중국(0.5%) △90년대는 일본(63%) 미국(26%) 북한(6%) 중국(3%) 러시아(2%) 등으로 현저한 변화를 보인 것을 제시했다.

<표4>는 핵 개발 필요성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더욱 선명하게 그려준다. <표4>는 핵 보유에 대한 견해와 통일 후 가상 적에 대한 견해를 연관시켜 교차 상관관계를 들여다본 것이다. 거기에 따르면, 전체 현역 장병들은 ‘유보적 핵개발’을 상대적으로 더 지지(핵 제조 능력은 갖추되 핵 제조는 보류 49.7%>과거 역사를 고려한 핵 제조 47.5%)했다. 일본을 통일 후 가상 적으로 지목한 장병들만이 ‘실제적 핵 개발’에 더 큰 비중(과거 역사를 고려한 핵 제조 50.4%>핵 제조 능력은 갖추되 핵 제조는 보류 47.2%)을 두고 있었다.

이는 한국군의 강한 핵 개발 의지의 핵심이 ‘가상 적 일본의 핵 개발’을 의식한 ‘대응 핵 개발’임을 엿볼 수 있다. 놀랍게도 일본 다음으로 미국을 가상 적으로 꼽고 있는 현역 장병들이 중국과 러시아를 가상 적으로 꼽고 있는 장병들(중국 40.9% 러시아 40.2%)보다 상대적으로 ‘실제적 핵 개발’에 더 큰 비중(44.4%)을 두고 있다. 혈맹국 미국을 잠재(가상) 적으로 겨냥한 핵 개발 의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포드·카터 대통령, 한국 핵 보유 필사 저지”

지난 10월5일 국과연에 대한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강창성 의원(민주)이 정식으로 제기한 70년대 국과연의 핵무기 개발 및 미국의 압력에 의한 포기설에 대한 진상 추궁은 그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보안사령관을 지낸 강의원은 이 날 “박정희 대통령은 독자적·자주적 방위 능력을 확보하려면 핵무기 개발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보고 핵무기 개발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미국의 포드·카터 대통령은 한국의 핵폭탄 제조를 필사적으로 저지하였다는 것이 역시 항간에 기정사실화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70년대 말에 국과연의 핵무기 개발이 거의 완성 단계에 있었다’거나 ‘미국이 한국의 핵 개발을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개입했다’는 강의원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월간조선>이 전재한 ‘박정희 육성 증언’에서 확인되고,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소재로 사실처럼 알려진 것들이다. 그러나 강의원은 한 걸음 나아가 자기가 보안사령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미국의 ‘개입’과 박정희 대통령 시해와의 관련설도 입수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강의원은 자기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입증 사례를 8개 제시했다.

그는 먼저 “78년 9월 박대통령으로부터 ‘국과연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중인데 95% 정도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79년 1월3일 선우연 유정회 의원이 박대통령으로부터 들은 내용이라면서 ‘81년 전반기에 핵폭탄이 완성된다고 국과연 소장에게서 보고 받았다. 김일성의 남침을 막기 위한 방어용이다’고 한 전문을 소개했다.

강의원은 또 “국과연이 80년 8월부터 81년 4월 사이에 이른바 ‘정화 차원’에서 총 77명의 연구직 및 기술직 직원을 강제 퇴직시켰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당시 존슨 대통령이 기구 개편을 강요해 82년 12월 이른바 ‘기구 개편’이라는 명목으로 국과연 직원 총 2천6백15명의 27%에 이르는 7백9명을 집단 해고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사실들은 ‘전두환 정권이 80년대 초에 미국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대가로, 즉 정권 안보를 위해서 한국 국방과학 기술과 핵 기술을 10년 이상 퇴보시킴으로써 자주적 국가안보력 확보를 포기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시 군 출신인 국과연 배문한 소장은 강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핵무기 개발에 관여했다가 80년대 초에 해직된 인사가 몇명이며 누가 남아 있는지는 파악된 것이 전혀 없으며 그 분야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고 잡아뗐다. 배소장은 또 과거와 현재의 핵기술 보유에 대해서도 “계획한 적도 없고 계획을 검토한 적도 없다”고 답변했다.

핵 개발설과 미국 개입설의 진상은 예상대로 확인되지 못했다. 그러나 앞서의 실증적 보고서는 과거(70년대)의 핵 개발(또는 설)이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면, 현재(95년)의 핵 개발 의지는 일본을 포함한 주변 4강을 가상 적으로 겨냥한 것이고, 거기에는 미국의 핵 주권 포기 강요에 대한 강한 반작용이 자리잡고 있음을 암시한다. 결과론이지만 미국은 한국이 ‘호랑이 새끼’가 될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북한의 미래 핵을 자르려 하듯이. 그러나 한국군은 지금 ‘핵 주권 부활’을 뜨겁게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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