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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비의 거리’ K스트리트를 아십니까

미국 거물 로비스트들의 핵심 거점…공화계가 장악, 민주계 반격 노려

워싱턴/변창섭 ㅣ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4.04.20(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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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바둑판처럼 동서남북으로 연결하는 많은 도로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거리가 있다. 백악관과 의회 등 권력 심장부 가까이에 있으며 ‘K’라는 이름이 붙은 거리가 바로 그것이다.

백악관과 직결되는 펜실베이니아 가나 의사당과 직통하는 컨스티튜션 가에 비해 이름값이 떨어지는 K 가가 세인의 눈길을 끄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곳에 행정부의 정책이나 의회 입법안을 자기들 뜻대로 관철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는 굴지의 컨설팅 사와 최고의 로펌 그리고 각종 이권 단체들이 입주한 건물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K 가는 ‘권부의 거리’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해 미국의 유명한 영화 전문 텔레비전 채널인 HBO는 라는 연속극을 통해 이곳 로비스트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풍자한 바 있다.

K 가에 요즘 화젯거리가 하나 생겼다. 나토 사무총장과 영국 국방장관을 지낸 조지 로버트슨이 K 가의 한 대형 컨설팅 회사에 영입되었다는 소식이다. 이 회사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코언이 이끄는 ‘코언그룹’이다.

현재 이 그룹의 선임 자문관이라는 직함을 가진 로버트슨은 런던에 상주하면서 1년에 대여섯 번 본사에 들러 고객 자문에 응하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코언그룹이 관리하는 28개 고객사가 자문료 외에 연간 가입 유지비 명목으로 동종 업계에서 최고인 35만 달러 이상을 지불하는 것으로 보아 로버트슨의 보수도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의회와 공생하는 ‘필요악’

K 가에는 코언그룹뿐 아니라 전직 행정부 각료 혹은 전직 의회 중량급 인사들이 차린 컨설팅 회사가 즐비하다. 대표적인 곳이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세운 올브라이트 그룹, 새뮤얼 버거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만든 스톤브리지 인터내셔널, 칼라 힐스 전 무역대표부 대표가 이끄는 힐스 사,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설립한 스코크로프트그룹 등이다.

또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토머스 맥라디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이끄는 컨설팅 회사와 합병해 생긴 키신저 맥라디 사도 빼놓을 수 없다. 전직 의원 출신이 만들어 번성하고 있는 컨설팅 사로는 공화당 중진으로 하원 세출위원장을 지낸 로버트 리빙스턴 전 의원이 설립한 리빙스턴그룹이 단연 돋보인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거물급 인사가 운영하는 컨설팅 회사들은 굴지의 로펌이나 홍보회사와 손잡고 미국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 심지어는 외국 정부까지 주요 고객으로 삼는다. 리빙스턴그룹 고객 명단에는 터키 정부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 컨설팅 회사의 가장 큰 매력은 현직 행정부와 의회는 물론 해외 정부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끈끈한 연줄을 가지고 있어 사업 성사를 위한 결정적인 정보나 영향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코언그룹은 한 통신 회사로 하여금 행정부 규제의 벽을 뚫고 50억 달러짜리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권고했는가 하면, 또 다른 고객에게는 수십억 달러짜리 정부 입찰을 딸 수 있도록 유럽의 한 정부를 설득하기도 했다. 이런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코언그룹은 2001년 창업 당시 멤버가 4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유럽 주둔 연합군 최고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공군대장 조지프 랄스턴을 포함해 유명 인사 18명이 포진한 회사로 컸다.

물론 K 가에 전직 관리나 의원 들이 운영하는 ‘점잖은’ 컨설팅 회사만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이곳은 막대한 정치 자금을 무기로 행정부 정책이나 의회의 입법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각종 이익단체들의 집합소로 더 유명하다. 그런 점에서 K 가는 오랫동안 워싱턴 정치 개혁의 주된 걸림돌로 꼽혀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의회와의 ‘공생 관계’가 계속 이루어지는 한 K 가는 앞으로도 ‘필요악’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기 직전인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K 가는 사실상 민주당의 독무대였다. 웬만한 이익 단체의 총수는 거의 다 민주당 인사였다. 그러나 1994년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사정이 돌변했다. 불과 엊그제까지도 민주당 인사가 책임자로 있던 이들 단체들이 이번에는 공화당 인사들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실제로 1998년 전자산업협회가 민주당 하원의원 출신인 데이비드 맥커디를 새 이사로 영입한다고 발표하자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과 톰 덜레이 원내총무가 하원에서 지적 재산권 관련 법안에 대한 투표를 고의적으로 방해한 일이 있다. 당시 이 사건은 당사자 중 하나인 덜레이 총무가 하원 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까지 받을 정도로 파장이 컸지만, 이를 계기로 대다수 이익 단체들은 대표를 공화당 인사로 채울 수 있었다.

이와 같이 K 가의 정치 지형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바뀌던 1995년에 일부 공화당 핵심 인사가 이른바 ‘K 가 프로젝트’를 발족시켰다. 이 프로젝트의 기본 취지는 워싱턴 로비 단체나 무역 관련 업체들이 어떤 정당을 지지하며 또 정치 헌금은 얼마나 내는지 조사해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측은 이 계획을 로비스트들의 집합지인 K 가의 주요 이익 단체 대표를 친공화당계 인사로 채워 가기 위한 일종의 ‘음모’로 파악하고 있다.

전직 의원만 1백60여 명 ‘맹활약’

이 계획을 주도한 인물은 친공화계 세금 반대 민간 단체인 미국세제개혁 총재인 그로버 노키스트이다. 그가 덜레이 공화당 총무와 손잡고 추진한 이 계획은 지금껏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데, 실제로 2000년 이래 K 가의 이익 단체 대표로 진출한 민주당 인사는 고작 2명인데 비해 공화당 인사는 15명에 달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워싱턴 포스트는 ‘새 대표를 물색하는 거의 모든 회사나 무역 단체들이 ‘K 가 프로젝트’에 자극받아 공화당 인사들을 고용하기 위해 안달이다’라고 보도해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K 가 프로젝트’에 힘입어 사실상 공화당 세력권에 넘어간 K 가에는 현재 최소 1백60명 이상의 전직 의원들이 로비스트로 변신해 활약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은 공화당 출신 의원들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다. 딕 아미 전 공화당 원내총무가 얼마 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 내 어느 부처에 가도 내 사람이 박혀 있지 않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라고 호언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연간 로비 수임료로 수천만 달러씩 벌어들이는 워싱턴 최고의 로펌 중 하나인 파이퍼 루드닉 사의 선임 정책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과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K 가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2년에 이어 이번에도 공화당이 다수파를 차지할 경우 K 가가 공화당의 외곽 로비 통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의 인기가 한풀 꺾이면서 ‘민주당계’ 로비 회사들의 재기할 것이라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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