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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정계의 여성 거물들

북유럽, 장관·의원 30% 이상 차지… 노르웨이 전 총리·아일랜드 대통령은 유엔 사무총장감

朴在權 기자 ㅣ 승인 1996.11.14(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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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최고 지도자가 되는 방법에도 동·서양 간에 차이가 있다. 아시아에서는 아버지나 남편을 잘 만나야 하지만, 서양에서는 자수성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컨대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는 아버지가 미얀마 독립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장군이었고,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여사는 아버지가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이었다.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총리도 아버지가 대통령이었고, 필리핀의 코라손 전 대통령은 상원의원이던 남편 아키노의 덕을 보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쏠렸던 존경을 물려받았다.

스웨덴, 각료 52%가 여성

유럽은 다르다. 이들은 가문의 후광과는 거리가 먼,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현재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73)의 뒤를 이어 차기 사무총장 후보로 거론되는 노르웨이의 그로 하를렘 브룬트란트 전 총리(57)와 아일랜드의 메리 로빈슨 대통령(52)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끄는 이는 브룬트란트이다. 81년 이후 두 번이나 실각을 경험하면서도 12년 간 노르웨이를 이끌어온 그는, 지난달 23일 갑자기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감으로 꼽혀왔던 그였기에 전세계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가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일이 많을 것이다”라고 밝혀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과연 그 흥미로운 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오슬로의 중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오슬로 의대를 졸업한 뒤 내과의사가 되었다. 그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74년 환경장관으로 발탁되면서부터이다. 81년 그는 42세에 최연소 총리가 되었다. 86년 두번째 총리가 되었을 때 브룬트란트는 정부 각료 18명 가운데 8명을 여성으로 채웠고, 군주 국가인 노르웨이 왕실에서 여성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했다. 93년에는 요한 홀스트 외무장관을 중재역으로 내세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간에 오슬로 협정을 체결케 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노르웨이만 통치하기에는 너무 큰 인물’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지난 81년 그가 처음 총리로 취임했을 때만 해도 노르웨이 내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해 노르웨이 정부가 북경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노르웨이에서 장관의 44%, 차관의 38%, 국회의원의 38.2%(94년 기준)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정은 덴마크·스웨덴·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들도 비슷하다. 이들 나라에서 여성 장관이나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전체의 30%를 넘는다. 특히 스웨덴은 94년 선거가 끝난 후 여성 장관의 비율이 52%까지 높아졌다. 94년 현재 전세계 국가에서 여성 장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5.7%, 여성 국회의원의 비중이 11%밖에 안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유럽 여성들은 지금 가장 행복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이한 점은 가정 생활에 대한 브룬트란트의 태도이다. ‘여권운동이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펴는 그는, 네 자녀를 모유로 키우고 집안 살림도 손수 챙길 정도로 가정적이다. 4년 전 한 아이가 자살하는 불행을 당하자 그는 토르뵤예른 야글란트(45)에게 노동당 당수직을 넘겼고, 이번에는 총리 직까지 그에게 넘겨 주었다.

브룬트란트가 유엔 사무총장감으로 거론된 것은 지난 6월 중순, 독일을 방문한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이 재선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뒤이다. 미국 정부는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이 때문에 그를 대체할 후보자들이 거론되었던 것이다.

현재의 선출 방식에서는 미국의 반대가 절대적 힘을 갖는다. 1백85개 회원국을 거느리는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되려면 우선 안보리 5개 상임 이사국과 4개 이상의 비상임 이사국 찬성을 얻은 다음, 총회에서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현재 대다수 국가가 부트로스 갈리의 연임을 지지하지만, 미국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다른 인물을 찾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민의 절대 신임 받는 메리 로빈슨

브룬트란트 다음으로 유력한 후보는 아일랜드의 메리 로빈슨 대통령(52)이다. 아일랜드의 명문 트리니티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25세 때 트리니티 대학 최연소 교수, 26세에 최연소 상원의원, 46세에 아일랜드 최초로 여성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보수적인 카톨릭 국가 아일랜드에서 피임과 이혼을 합법화할 정도로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고, 92년에는 소말리아를 방문해 내전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국민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그는, 변호사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이다. 가정 생활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브란트란트와 일치하지만, 임기가 끝나는 내년까지 사임하지 않겠다고 말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누가 차기 사무총장에 당선될 것인가. 미국 대선이 끝나면 이 문제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최대 현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브룬트란트에 관한 기사에서 ‘그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다면 효율적으로 유엔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데에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다’라고 기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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