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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정부 '통일 트리오'의 정책 노선 해부

DJ 정부 대북 정책팀 해부/강인덕·임동원·나종일 ‘해빙기의 새 아침’ 준비

南文熙 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1998.03.26(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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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들끼리는 노는 물이 달라도 통하는 것이 있다.” 온건한 이미지를 지닌 임동원 외교안보수석과 강경 이미지인 강인덕 신임 통일부장관이 과연 조화를 이루겠는가라는 질문에 통일원의 고위 당국자는 무협 소설을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임수석이나 강장관 모두 풍부한 현장 경험과 이론적 연구, 그리고 산전 수전 다 겪은 ‘고수’들이어서 눈빛만 보아도 서로 통할 것이라는 말이다. 통일 분야에서 앞으로 그 역할이 크게 주목되는 인물은 이 두 사람 외에 새로 개혁된 안기부에서 대북 및 해외 정보 수집을 맡을 나종일 안기부 2차장이다.

우선 임동원 외교안보수석. 비록 `‘작은 청와대’라는 취지에 따라 예전 같으면 장관급이었을 수석 비서관 직이 차관급으로 내려앉았지만, 그의 역할이 차관급에 머무르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그는 최근 강화되고 있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사무처장을 겸하게 됨으로써 대통령 바로 밑에서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일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임동원 수석의 키워드는 ‘포용’과 ‘협상’

그의 경력이나 전문성, 조직 관리 능력 등을 잘 아는 주변 사람 역시 그를 ‘최고의 안보수석감’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평북 위원 출생으로 육사 13기 출신인 그는 군 경력의 대부분을 작전과 군비 통제 분야에서 보냈다. 소장으로 예편한 후에는 나이지리아와 호주 대사를 거치면서 외교 현장 경험을 쌓았고, 외교안보연구원 원장을 4년간 지내면서 최장수 원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연구원장 시절 그는 거의 맨몸으로 한남동의 연구원 공관을 현재의 서초동 공관으로 이전시킬 만큼 놀랄 만한 추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또 ‘어떤 조직에 가든 조직의 체계를 잡고 발전시키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아태재단의 김광린 박사는 평가한다.

남북 관계 개선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지금 그의 역할에 주변의 기대가 쏠리는 것은 6공화국 말기 그가 축적한 풍부한 현장 경험 덕분이기도 하다. 6공 말기인 91~92년은 반세기 분단사에서 남북 관계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었다가 열매도 맺기 전에 스러져 버린, 영광과 좌절의 시기였다. 당시 통일원 차관이었던 그는 남북 고위급회담 본회담 및 대표회담의 우리측 협상 대표와 교류협력분과위 위원장으로서 탁월한 협상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남북 간의 귀중한 합의가 92년 대선 기간에 국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대북 강경론이 대두하고 이에 북한이 맞대응하면서 휴지 조각으로 변해 버리는 통한의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김영삼 정부 출범을 전후해 통일원 차관에서 물러난 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세종연구소 연구위원·아태재단 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겨 가면서 그는 자신이 축적해 온 경험을 이론화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연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몇몇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지난해 10월께 미국의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가 그를 찾은 적이 있다. 서로 일면식도 없었지만 그들의 만남은 10년 지기 같았다. 그것은 임동원 당시 아태재단 사무총장이 미국 전문가의 거의 모든 저서와 논문을 이미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광린 박사는 “당시 임총장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국제 정치나 한반도 관련 주요 논문은 꼭 챙겨 보고 연구원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북한과 관련된 좋은 책이 발간되면 그는 일부러 몇 권씩 사두었다가 그를 찾아오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자상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김대통령 휘하에서 통일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는 그가 이 시기에 저술한 몇몇 논문에 잘 요약되어 있다. 특히 ‘남북 고위급회담과 북한의 협상 전략’(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한 <북한의 협상 전략과 남북한 관계>라는 책에 수록된 논문)과 ‘남북 관계의 전개 과정(1988~1997)’(아태재단 아카데미 교재 수록 논문)에는 그의 경험과 이론 체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대북 정책의 방략들은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즉 북한을 보는 시각은 ‘변화론적 관점’, 정책은 ‘포용 정책’, 전략은 ‘병행 전략’, 협상 기법은 ‘원칙 협상 기법’이다.

우선 변화론적 관점부터 살펴보자. 90년 고위급회담을 시작하던 당시 6공화국 정부에는 북한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이 있었다. 하나는, 북한도 루마니아처럼 1~2년 내에 갑자기 무너질 것이라는 ‘붕괴론적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갑작스럽게 무너지기보다는 중국처럼 점진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변화론적 시각’이었다.

붕괴론 쪽에 서면 북한과 협상할 필요성이 없게 된다.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차라리 붕괴를 촉진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즉 붕괴론은 곧 ‘봉쇄 정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변화론 쪽에 서면, 북한으로 하여금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도와 민주 체제로 변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포용 정책’이 도출된다. 임수석은 ‘고위급회담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6공화국 정부의 포용 정책과 북한의 생존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북한이라는 상대를 상정한 협상에서는 협상 전략과 기법 역시 매우 중요하다. 협상 전략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병행 전략’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91년 말 한국 정부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대화가 진행되는 도중에 북한 핵 문제가 돌출한 것이다. 그때 대처 방법을 둘러싸고 두 가지 견해가 팽팽히 맞섰다. 북한이 핵 의혹을 스스로 밝혀야 남북 대화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연계 전략’과, 핵 문제 해결과 남북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병행 전략’이 맞섰던 것이다. 당시 6공 정부는 결국 병행 전략을 채택해 남북 기본합의서를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남북 고위급회담 당시 그는 교류협력분과위 위원장으로서 ‘원칙 협상’이라는 기법을 개발해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동안의 남북 대화가 서로의 과장된 입장을 일방적으로 선전하다가 끝나는 ‘입장 협상’에 머물렀던 데 비해, 그는 협상의 원칙과 기준을 먼저 세워 놓고 양자가 공동의 대안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처럼 양쪽 모두에 도움을 주는 ‘플러스섬 게임’으로 협상 구도를 바꿈으로써, 당시 다른 분과위원회가 말싸움 수준을 넘지 못했던 데 비해 교류협력분과위는 현안의 90% 정도를 타결했다. 김달현의 한국 방문과 대우그룹의 남포공단 조성, 이산가족 면회소 합의 등은 그의 이같은 유연한 전략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아태재단 교재에 수록된 논문에서 김영삼 정부가 대북 정책을 망친 이유는 6공화국의 정책과 완전히 거꾸로 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김영삼 정부 초기에는 ‘핵을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 수 없다’는 핵 연계 정책으로 실패했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로는 ‘북한은 고장난 비행기이므로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북한 붕괴론과 봉쇄 정책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현재의 남북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타개할 방략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는 자신의 논문들에서 현재의 남북 관계를 ‘6공화국 당시 남북이 합의했던 중요한 성과들이 외적인 상황에 따라 잠시 유보된 상태’라고 규정한 바 있다. 다시 말해 당시 이루었던 성과들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 잠시 유보된 것인 만큼 새 정부가 이를 다시 회복하면 된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북한측에 기본합의서 체제로 복귀하자고 촉구하고 나선 것도 그의 이같은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 간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임수석의 정책 역시 6공화국 말기에 효율성이 입증된 변화론에 입각한 대북 인식과 포용 정책, 그리고 병행 전략 등이 큰 줄기를 이룰 것이다. 지난해 12월 초 그가 철저히 감수해 <바람직한 대북 정책>이라는 제목의 소책자로 발간된 아태재단 정책연구보고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즉 △전쟁 억지와 협상 병행 △정경 분리, 그리고 당국간 회담과 민간 협력 병행 △남북 양자 채널과 국제 기구 주변국의 다자 채널 동시 활용 △한·미·일 공조 체제 신축적 유지 △ 남북 정상회담 추진 △ 급변 통합 관리 계획 수립이 그것이다.
강인덕 통일부장관은 ‘합리적 보수’

임동원 수석이 외교·안보·통일 정책의 총괄 조정역이라면, 강인덕 통일부장관은 통일 정책의 현장 사령탑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예의 그 강성 이미지 때문에 순탄치 않은 출발을 보였다. 이미 북한측이 그의 입각에 대해 ‘북과 남에 일고 있는 화해와 통일의 기류에 역행하는 괴이한 일’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해 앞으로 대북 접촉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해명되어야 할 일이 있다. 강장관은 과연 알려진 대로 대북 강경론자인지, 그가 강경론자라면 왜 김대통령이 그를 통일부장관에 임명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국내 보수 세력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인선이었다는 설명이 유력하기는 하나,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실제로 그와 만나 대화해 본 사람들은 그를 강경 일변도 보수주의자라기보다는 합리적 보수 또는 현실주의자라고 말한다.
지난해 9월 그는 국내의 한 경제연구소에서 ‘북한 정치의 향후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적이 있다. 강연록에 나타난 그의 입장은, 우선 북한에 대한 인식 부분에서는 대단히 엄격한 시각을 보이고 있다. 구태여 구분하자면 ‘붕괴론적 시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기존 붕괴론과는 성격이 다르다. 즉 북한이 현재와 같이 내외의 곤란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있지만 짧은 시간 내에 무너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붕괴론자와는 다르다. 또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는 한국에도 심대한 타격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신중한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점을 보면 흡수 통일론자도 아닌 것 같다.

이 강연록에서는 앞으로 남북 간에 진정한 평화가 보장되려면 남북 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엿보이는데, 이런 점에서 그는 보수적인 현실주의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즉 대북 정책의 실제에서는 김대통령이나 임수석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나종일 안기부 2차장은 기존의 3차장 업무까지 통합해 해외 정보뿐 아니라 북한 정보 수집을 겸한다는 점에서 행보가 주목된다. 나종일 차장은 지난 대선 기간에 김대중 대통령의 막후 두뇌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그의 주전공은 국제 정치와 한반도 분야이다. 김대통령이 2차장 자리에 그를 임명한 것도 그의 전공 분야를 감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교수의 대북관이나 정책관은 김대통령이나 임수석과 마찬가지로 온건 합리주의에 입각한다. 굳이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자면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그가 지난해 출간한 <끝나지 않는 의문>(도서출판 남지)이라는 저서의 곳곳에는 현실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보인다. 그는 남북 간의 갈등 관계를 ‘머리(이성)의 갈등이나 가슴(감정)의 갈등 차원을 넘어 내장(內腸)의 갈등’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내장의 갈등’이라고 표현한 것은 ‘(남과 북이) 6·25 이후 끊임없이 반목과 다툼을 되풀이해 그만큼 갈등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를 흡수하거나 갈등 상태에서 순식간에 벗어나려는 조급함보다는 갈등과 공존하려는 입체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나종일식 ‘기브&테이크’

구체적인 정책 분야에서도 그는 현실주의를 추구한다. 지난해 대선 직전 그는 기자와 만나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과 이산 가족 상봉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식량 지원에 대해 민간 차원의 지원은 그렇다 해도 정부 차원의 지원까지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식량을 지원하는 대가로 정부도 북한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산 가족 상봉이었다. 즉 북한이 이산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상봉을 주선할 때마다 식량 지원의 양을 그에 연동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이라는 탁월한 대북 전략가 밑에서 임동원-강인덕-나종일로 이어지는 통일 및 대북 정책 트리오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빚어낼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출발은 좋다는 것이 대체적인 인식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곽태환 소장은 이와 관련해 “그동안 언론이나 학자들은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데만 익숙해 있다. 새 정부가 이를 바로잡겠다고 하니 도울 것은 과감히 돕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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