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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서울대 도서관 ‘옛날 책’알고보니 보물

유럽에도 없는 ‘옛날 책’ 일제가 사 모아‘준문화재’ 가치…정리 작업 시급

박성준 기자 ㅣ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0.01.20(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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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경제학의 시조 애덤 스미스가 지은 〈국부론〉의 원래 이름은 〈여러 나라 국민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고찰〉이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만큼이나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불후의 대작은 애덤 스미스 자신의 손으로 10년에 걸쳐 완성되어 1776년 처음 나왔다.

서울대 도서관, 정확하게 서울대학교중앙도서관 6층 이른바 ‘구간(舊刊) 서고’에 가면 이 책의 2판이 1817년에 나왔음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는 출판 연도가 선명하게 찍힌 두 권(초판은 다섯 권짜리)으로 된 〈국부론〉 2판본이 고서 특유의 향기를 내뿜으며 서가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도서관 6층 서고에는 ‘철학의 세기’ ‘계몽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출판되어 지식 혁명의 한 이정표를 세웠다는 디드로의 〈백과전서〉가 간직되어 있다. 스무 권으로 된 서울대 소장 〈백과전서〉가 간행된 연도는 1876년. 역시 초판은 아니지만(초판은 1751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해 1772년에 마무리됨) 세상에 나온 지 백 수십 년을 헤아리고, 학술적인 면에서도 보존 가치가 확실한 귀중본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서울대 소장본 〈백과전서〉는 그 휘귀성 때문에 한때 다른 대학 불문학 전공자들에게 ‘묻지마 복사’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디드로의 〈백과전서〉에 얽힌 이같은 일화는 이 서고가 지닌 가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구간 서고에는 이들 책말고도 출판 연대나 자료적 희귀성, 학술적 가치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보물’이 그득하다.

현재 이 대학 도서관측은 1945년 광복 때를 기준으로 하여 소장 자료를 각기 따로 관리하고 있다(규장각 도서는 별도). 예컨대 1945년을 기준으로 한 ‘구장서(舊藏書)’와 ‘신장서(新藏書)’가 그것이다. 구간 서고에 있는 책들은 구장서로 부르는 1945년 이전 책들을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구간 도서의 대부분은 서울대가 경성제국대학이던 시절 일제가 들여다 놓은 책들인 것이다. 서울대 도서관에는 이같은 구장서가 현재까지 31만 권 가까이 전해진다.일제, 식민 통치 위해 자료 수집 열올려

단순한 수치로만 얘기하면 ‘31만 권’이라는 숫자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이는 2백만 권을 헤아리는 서울대 도서관의 전체 장서와 비교해볼 때 15%에 불과한 대수롭지 않은 분량이다. 시야를 넓혀 장서 수가 천만 권을 헤아리는 외국의 일류 도서관 규모와 비교하면 구장서의 형세는 더 쪼그라든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태는 달라진다. 한반도를 제물 삼아 아시아의 맹주이자 세계의 열강으로 발돋움하려 했던 일제는, 서울대(경성제국대학)에 동경 제국대학 다음 가는 일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해외에서, 특히 자기네가 뛰어넘으려는 서양에서 진귀한 서적을 닥치는 대로 구입해 경성제대로 보냈다. 서울대 도서관은 일제 시대 일본인에 의해 대학 도서관으로서 세계 일류의 면모를 갖추었던 것이다.

전체 구장서는 크게 화한서(和漢書)와 서양서로 분류된다. 화한서는 일본 책과 중국 책을 말하는데, 일본 책은 식민지 조선에 ‘일본의 정신’을 심기 위해, 중국 책은 중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모색하기 위해 들여다 놓은 것이다. 일제는 또 서양 정세와 특히 밀접한 법률·경제·철학 관련 도서와, 조선 사정을 훤하게 알 수 있는 경제 통계 자료·신문 기사 수집에 열을 올렸다.

일제가 도서 구입에 얼마나 열성을 기울였는가 하는 것은, 1996년 서울대가 펴낸 〈서울대도서관 50년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일제는 1926∼1928년 도서 구입비로 80만 엔을 지출했다. 이는 경성제대의 3년간 예산 4백만 엔 중 20%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이다. 당시 조선총독부도서관(지금의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의 1년 평균 총예산은 8만여 엔이었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사서로 일하다가 1996년 은퇴한 이상은씨의 증언은 한층 더 실감 난다. 이씨가 서울대 도서관에 일자리를 얻어 들어간 때는 1950년대 초반. 당시 이씨는 광복 전부터 도서관에서 일해온 선배들로부터 도서관 장서에 얽힌 일화를 들었다. 경성제대에 재직했던 일본인 교수들은 대학의 허락도 받지 않고 책을 수집해와 도서관에 넘기는 일이 많았다. 이같은 일은 식민지 당국조차 당혹스럽게 만들어‘당신네들 자료 수집 비용을 충당하느라 총독부 재정마저 흔들린다’고 대학측에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정도였다는 것이다.30만권 모으는 데, ‘일제 20년, 서울대 40년’

오늘날 서울대 도서관이 제한적으로나마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는 구장서는 이 과정을 통해 한국에 남은 서적들이다. 특히 귀중 도서 중에는 ‘해당 국가에는 물론 일본 도쿄 대학에도 없을 것으로 보이는 문화재급 도서가 수두룩 하다’는 것이 이 도서관 사서 이두영씨의 말이다. 특히 구간 서고 한켠의 ‘귀중본 서고’에는 서울대가 항온·항습은 물론 화재 방지 시설까지 갖추고 애지중지하는 문화재급 도서들이 비장되어 있다. 주종은 역시 서양에서 수집해온 법학·정치학·철학·언어학 관련 서적이다. 서울대 도서관은 구장서 31만 권 가운데 1차로 소장 가치가 뛰어난 6백18권을 ‘귀중 도서’로 추려 서고에 보존하고 있다.

독일 출생 예수회 신부로서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난징 대성당을 건립한 아담 샬이 라틴어로 쓴 〈동방과 중국 왕국에서의 정통 신앙의 발전에 관한 보고서〉(1672년), 프랑스의 대표적인 혁명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에밀, 교육에 관하여〉(1762년), 〈리바이어던〉의 저자로 유명한 17세기 영국의 정치 사상가 토머스 홉스의 〈비헤모드〉(1680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비헤모드〉는 정치적인 이유로 홉스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했다가 사후에야 겨우 빛을 본 진귀한 책이다.

귀중본 도서는 대체로 1920∼1930년대 일제가 일괄 구입한 이른바 ‘특수 장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도서관이 정식으로 문을 연 1926년 일제는 독일 경제학자로서 베르너 좀바르트의 장서 3천2백여 권을 비롯해, 서양의 유명 학자 장서를 ‘서고째로’ 사들였던 것이다.

서울대 도서관의 컬렉션 수준을 한결 빛나게 하고 있는 이들 구장서는 지금까지 국내 대학이 무엇을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일제는 도서관을 세운 지 꼭 20년 만에 구장서 31만권을 모았고(한때 경성제대 도서관의 장서는 50만권을 넘기도 했다), 서울대 도서관은 이와 맞먹는 장서를 수집하는 데에만 꼭 40년을 보냈다. 더욱이 경성제국대학 시절 학생 수는 법문학부·의학부·이공학부를 통틀어 5백 명에 불과했다. 단지 식민 통치라는 목표를 위해 이처럼 멀리 내다보고 투자를 아끼지 않은 일제의 ‘잔재’에서, 일본이 패전의 참화를 딛고 세계 열강으로 다시 우뚝 일어서게 된 저력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내 돈 들여 사와도 결코 아깝지 않을’ 구장서를 앞에 두고도 누구 하나 이제껏 학계 전체를 위한 해제 작업 한번 진지하게 검토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구간 서고에 대한 자료가 나온 것은 서울대가 1996년 개교 50주년 행사의 하나로 ‘귀중 도서전’을 열며 간행했던 60쪽짜리 관련 도록이 거의 전부이다. 구장서의 존재를 외면하고서 과연 ‘역사 반성’이 성립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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