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평]방송 죽이는 시청률 지상주의
  • 김승수 (전북대 신방과 교수) ()
  • 승인 1997.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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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시청률 제일주의’에 프로듀서들 무력…오락성 일색으로 치달리는 방송
우리 방송은 오락 방송이 되기로 작심했나 보다. 30개가 넘는 드라마에 쇼·코미디 프로그램까지 각종 오락 프로그램이 네 채널을 도배하다시피 한다. 뉴스나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도 선정적이고 오락성 짙은 내용이 많다. 문화를 주도하는 방송이 이처럼 방탕과 소비, 벼락 출세와 불륜 이야기로 날을 새우는 나라가 또 있는지 묻고 싶다. 그저 쓰고 노는 이야기가 전부이다. 이러한 오락 프로그램은 마약과도 같아 시청자의 바른 판단 능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시청자 의식을 왜곡시킨다.

방송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마지막까지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사람은 누구인가. 프로듀서 아닌가. 이들은 삼라만상을 선택하고 압축하여 사회·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문화 저널리스트이다. 프로듀서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고, 청소년에게 선망하는 직업으로 비치는 것도 이때문이리라.

불행히도 프로듀서를 움직이는 것은 진실이나 정의가 아니요 건강한 문화 의식도 아니다.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시청률이다. 프로듀서는 시청률 높이기를 요구하는 경영진의 성화에다 상업주의적인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광고주의 압력에 저항도 해보지만 대부분 속수무책이다. 시청률을 잣대로 해서 제작된 프로그램은 한 번 방송하면 없어지는 하루살이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전날 밤의 시청률 자료가 공개되면 한쪽에서는 가슴을 쓸어내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기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없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프로듀서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창의성이니 비판성이니 하는 개념은 사치스럽다.

광고주들이 방송의 상업주의를 요구하는 압박 수단이요, 방송사 경영진이 프로듀서의 자유로운 제작 활동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무기로 쓰이는 한 시청률은 흉기일 뿐이다.

시청률이 주인 행세하는 우리 방송 현실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프로그램 장르를 뉴스·시사 프로그램·다큐멘터리·드라마·스포츠·어린이·농어촌 및 중소기업 등으로 아주 구체화하여 해당 장르의 의무 편성 비율을 정한다면, 시청률에 얽매여 마구잡이로 오락 프로그램을 양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요 시청 시간대의 편성 비율도 규정함으로써 오락 프로그램 과잉을 억제해야 한다.

현행 방송법 시행령 제29조 제1항은 보도 10% 이상, 교양 40% 이상, 오락 20% 이상으로 규정하여 방송사들이 마음대로 프로그램을 편성하도록 허용하였다. 이렇게 규정이 막연하다 보니 보도와 교양 프로그램을 합쳐 50%만 편성하고 나머지 50%를 오락 프로그램으로 편성해도 무방하다. 더욱이 오락과 교양 프로그램의 경계선은 이미 무너져 오락 프로그램의 편성이 압도적이다. 이를 고쳐 장르를 세분화하여 편성 비율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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