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아직 마르지 않은 ‘마르크스의 샘’
  • 한승완 (고려대 강사·사회철학) ()
  • 승인 1996.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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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연 교수 지음 <지배와 이성>/지식 프롤레타리아의 환경운동에 주목
자본주의가 과거에 그랬듯이 그 위기를 극복해 가는 듯한 현실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은 더더욱 식자층에서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나아가 과거의 다양한 시도들을 되돌아볼 때 과연 마르크스를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한가라는 물음도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회의에 대한 반박의 사례로, 여전히 캐낼 것이 있는 사상적 보고(寶庫)로서의 마르크스를 보여주는 뛰어난 실례로 황태연 교수의 <지배와 이성> (창작과비평사)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것으로, 그간 저자가 독일의 이론지에 발표한 글과 함께 독일의 진보적 지식인으로부터 반향을 불러일으킨 노작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독창적인 해석에서 돋보이지만, 동시에 마르크스 재해석에 균형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세밀한 문헌학적 연구와 체계적인 접근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보장되는 것이다.

이 책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는 교조화한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극렬해지거나 자유주의로 귀의한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로부터 찾을 수 있는 해방적 계기를 ‘소문 마르크스’가 아니라 텍스트에 등장하는 범주를 사용함으로써 현재화하는 작업이다. 그 단적인 예가 사회주의에서의 ‘소유 문제’와 새로운 노동귀족층으로서의 ‘지식 프롤레타리아론’이다.

저자가 이 두 테제를 입론하는 데 근거로 삼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텍스트 자체는 어찌 보면 미미하다 할 수 있다. 기실 저자는 <자본론> 마지막 절의 일부 구절과 엥겔스의 편지에서 각기 그 개념적 확실성을 찾고 있다. 그런데도 저자는 이들 사상의 전체 연관에서 볼 때 이러한 개념이 형성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논하고 있다.
특히 그의 소유권 테제는 새로이 역사비평적 고증 작업을 거쳐 출간되고 있는 <마르크스-엥겔스전집>(MEGA)이 가져온 새로운 이론적 해석에서 국제적 성과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자본론>의 각종 판본을 비교해 제기하는 사회주의적 소유론은 기존 ‘공동 소유’나 ‘국가 소유’로 이해되어 왔던 낡은 관념을 뒤흔들어 놓는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프롤레타리아의 이중화에 따른 ‘지식 프롤레타리아’ 출현을 단순히 매수된 층이 아니라 객관적 의미에서 노동귀족층과 연관해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피지배층의 구조와 전망에 대한 해석은 다시금 자본 관계의 지배 측면 이중화와 맞물려 전개된다. 자본의 소유와 기능 분리를 통해 신용 수수 관계로 매개되는 기능자본가와 자본소유권자 간의 이중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충실한 이러한 해석은 마르크스의 생각에 대한 일정한 유보를 배제하지 않는다. 그 한 예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의 법칙’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법칙은 마르크스가 역학적 산업자본주의의 특이한 자기 모순으로부터 추리해낸 것으로, 현재 극소전자적 내포화를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산업자본주의 출현과 함께 과거에 귀속되는 것으로 역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마르크스 재해석은 마르크스에 대한 다양한 기존 논의들과의 논쟁선상에서 전개되고 있어 그 현실성을 더하고 있다. 이때 19세기의 마르크스를 20세기 말의 시각에서 고찰하는 철저함이 저자의 논쟁 축이라 할 수 있다. 계급투쟁 결과 ‘청빈해지고’ 자본이 내포적으로 확대 재생산된 결과 교육 수준이 높아진 지식 프롤레타리아의 환경운동에 대한 주목은, 그것의 계급이론적 측면과 현실 운동의 정위 문제에서 새로운 시사점을 주기에 충분하다. 80년대 우리의 지식 지형에서 뒤늦게 부활한 마르크스는, 90년대 그 소문과 유형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하고 더 탄탄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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