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지는 것이 이기는 것, 입 다물어라"
  • 경남 합천·박병출 부산주재기자 ()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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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주지 세민 스님 '묵언' 당부로 '폭력 사건' 종결 선언


지난 한 달 동안, 해인사에는 산문을 연 지 1천2백 년 만에 가장 험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크기 지향'의 대불 건립에 반대 의견이 쏟아진 데다, 조성 배경을 두고 '유훈 시비'가 벌어지기도 했으며, 선방 수좌들이 실상사 수경 스님의 처소로 찾아가 폭력을 행사한 사건은 해인사를 더욱 궁지로 몰았다. 해인사는 결국 불사 계획 전반을 원점부터 다시 그려 나가겠다고 밝혀 대불의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상사가 21일 간의 참회 기도에 들어가자 해인사측도 참회 성명과 8일 간의 용맹정진 계획으로 화답해, 사태는 수습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인사는 이 과정에서 커다란 도덕적 상처를 입었다. 특히 7월6일자 미국 〈뉴욕 타임스〉는 청동 대불 조성과 관련한 시비를 폭력 조직의 마찰에 비유해 '갱스터리즘'이라고 표현하며 한국 불교계 전체를 비하했다. 〈뉴욕 타임스〉 도쿄지국장 하워드 프렌치가 쓴 이 기사가, 해인사 포교국장 관암 스님이 4백만 달러에 달하는 청동 대불 시주자가 정치가라고 말한 것처럼 묘사한 점도 반발을 사고 있다.


해인사는 몇 가지 구설에 대해 해명하지 않고 있다. 주지 세민 스님이 건강이 나빠져 지난 7월 초부터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한 데다 그 전부터 '묵언(默言)'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조계종이 〈뉴욕 타임스〉 보도가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왜곡했다고 보고 해인사 명의로 정정 보도를 요구하기로 했지만, 세민 스님은 지난 7월15일 측근을 통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말해 무대응 방침을 시사했다. 해인사 대변인 원철 스님(월간 〈해인〉 편집장)은 이같은 분위기가 해인사의 오랜 종풍이라며 "해인사는 선방 수좌와 학승이 많아 '겉모양'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해인사 관암 스님은 "절에 거주하는 대중이 워낙 많아 여론을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주지 스님의 묵언 당부를 사태 종결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7월16일 현재 청동 대불을 둘러싸고 일었던 열기는 해인사 어느 곳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름 수련회에 참가한 신도들만 오갈 뿐, 5백여 출가자는 선원·율원·강원과 각 암자에 들어앉아 하안거 수행을 하고 있다. 이들은 7월21일부터 8일 동안 등을 바닥에 대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는 참회 용맹정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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