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해 돌아온 미술 여전사
  • 김은남 (ksisapress.com.kr)
  • 승인 200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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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 불씨 개인전/시선으로 상징되는 ‘권력’ 비판
이불씨(38)의 개인전 포스터(오른쪽 위)를 본 사람들은 ‘야하다’고 입을 모은다. 포스터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둘이 뒷모습을 보인 채 서서 숲을 응시하고 있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것을 야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가 되어 돌아온 이 불씨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도발적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그녀의 최근작을 거의 만나볼 수가 없었다. 구미의 유수 비엔날레와 미술관이 앞다투어 그녀를 불러가는 바람에 정작 국내에는 작품이 들어올 기회가 없었던 까닭이다. 올해에도 이씨는 해외에서 여섯 차례 초대전을 열 계획이다.


‘절규’ 대신 조용하게 말걸기


금의환향한 이씨의 머리에는 ‘현대 미술의 여전사’라는 월계관이 씌워 있다. 1988년 미술계에 입문한 이래 그녀는 남성 중심·엘리트 중심·테크놀로지 중심의 세상을 상대로 피투성이 싸움을 벌여 왔다. 이번 전시회장 한귀퉁이에서는 이씨가 초창기에 벌였던 퍼포먼스를 비디오로 상영하고 있는데, 자신의 벗은 몸을 천장에 거꾸로 매단 채 갈라진 목소리로 절규하는 이씨를 지켜 보는 일은 1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고통스럽다(<낙태>).





세계 무대로 진출한 뒤에도 이씨의 파격은 계속되었다. 돌아온 30대 후반의 여전사는, 그러나 더 이상 절규하는 모습은 아니다. 그보다는 좀더 멀리 내다보고 디테일하게 접근하는 내공을 내뿜는달까. 공기 페달 스무 개를 관람객이 끊임없이 밟아 주어야만 우뚝 서 있는 6m짜리 괴물 풍선(<히드라>)이나, 허공에 떠 있어 관람객이 올려다보아야만 하는 9등신의 조각 난 신체(<사이보그>)를 통해 그녀는 선과 악, 자연과 인공,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따위 이율배반적인 가치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현대적 삶의 딜레마를 곱씹게 만든다(이들 작품은 ‘순간적인 영감’ 같은 데서 나온 것이 결코 아니다. 그의 작업 스타일은 오히려 치밀하게 계산하는 쪽에 가깝다. 그녀의 집 벽에는 아이디어를 메모한 용지가 빽빽이 붙어 있다.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작품으로 구체화할 때까지 그녀는 4년이고 6년이고 이들 메모를 보완하고 또 보완한다).


다시 처음의 포스터 얘기로 돌아가보자. 이씨는 여학생이 등장한 포스터에 얼굴을 붉히는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다고 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사람들 내부에 은밀하게 감추어진 어떤 지점을 건드렸다는 얘기이다. 그것은 성인 남자들의 ‘로리타 콤플렉스’일 수도 있고,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시선으로 상징되는 권력이다. “시선이 곧 권력이다. 나는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폭로하는 데 일관되게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현대 미술의 여전사-이 불>전은 3월22일∼5월5일 서울 로댕갤러리에서 열린다(문의 02-2259-7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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