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소설가 윤영수씨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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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 뒤집기’ 소설집 <자린고비의 죽음을 애도함> 펴낸 윤영수씨
소설집은 민담 열한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린고비> <나무꾼과 선녀> <토끼와 거북이> <북두칠성이 된 일곱 효자> 등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야기들이다. 작가 후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저 민담에서 빌려왔다. 너무나 친숙한 옛날 이야기, 속셈이 빤히 들여다뵈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내 놀이 마당에 잠깐 초대했다.’

<자린고비의 죽음을 애도함>(창작과비평사)을 펴낸 작가 윤영수씨(46)는 민담을 단순히 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확 뒤집어 놓았다. 오랜 세월 전해 오면서 덧칠에 덧칠을 거듭해 온 민담이지만, 윤씨의 작품에 이르러서는 그 전통적인 덧칠들이 자취를 감춘다. 소재만 살아 있고 뼈대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천하의 구두쇠로 비웃음거리가 되었던 자린고비는 ‘스스로 몸을 낮추어 낮은 곳으로, 더욱 낮은 곳으로 임한 실용철학자요, 모든 이를 구제하는 구세주’로 신분 상승하고, 사슴을 숨겨 준 착한 나무꾼은 여자를 괴롭히는 천하의 불한당으로 탈바꿈한다. 모든 작품에서 이루어지는 ‘뒤집기’는 민담의 교훈적 속성마저 여지없이 뒤집는다. 민담들이 현대적 의미, 또는 ‘윤영수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셈이다.

“나무꾼이 진짜 착한 사람일까? 그가 착한 남편이었다면 몇년간 살을 부비고 살던 선녀가 날개옷을 발견하는 순간 왜 미련없이 하늘 나라로 떠났을까? 결국 나무꾼이 선녀를 납치·감금·폭행했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작가의 민담 뒤집기는 너무나 익숙해서 그냥 넘겨 버릴 법한 이야기들에 대한 단순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뒤집기를 통해 드러내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작가의 직설적인 발언들이다. “자린고비를 통해서는 ‘최대 생산’ 때문에 지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소비가 미덕이라고 하지만 이제 생산 자체를 줄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양하고 낯선 소설 형식 선보여

대단히 익숙한 이야기들을 뒤집어 낯설게 만들어 놓았지만, 소설의 형식은 내용보다 더 낯설다. 열한 편 작품이 모두 다른 형식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의 시점을 빌려 말하는 것은 그래도 덜 파격적이다. ‘세상에 진실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 한 사건을 두고 등장 인물(사물)들이 각기 다른 처지에서 이야기하고, 정신과 의사의 임상 보고서가 그대로 도입되기도 한다. 판사 앞에 선 원고와 피고의 이야기는 신문 기사처럼 2개로 나뉘어 한 면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한 소설집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형식 실험들은 편안한 독서를 방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단편집의 지루함을 잊게 한다. “임상 보고서는 그 자체만 보아도 앞뒤 내용을 다 알 수 있는 소설이다. 보자기를 휘휘 두르면 옷이 되는 것 아닌가. 민담을 짤막짤막하게 쓰다 보니 형식을 놓고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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