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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과 금기는 여전히 있건만…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 33호로 종간…실명 비평으로 수많은 논쟁 일으켜

안철흥 기자 ㅣ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1.24(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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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월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는 모토를 내걸고 출범했던 저널룩 <인물과 사상>(개마고원)이 만 8년 만인 2005년 1월 33호로 종간을 선언했다. <인물과 사상>은 발행 초기 5만부가 넘는 판매 부수와 사회적 의제 설정 능력을 과시하며 새로운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초판 3천부조차 소화하지 못하는 부진을 거듭한 끝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월간 인물과 사상>은 인물과사상사에서 따로 내는 잡지로 계속 출간된다).

<인물과 사상>은 1호부터 25호까지는 강준만 교수(전북대)의 개인 저널 형태로 운영되다가 26호(2003년 4월 발행)부터 김진석 교수(인하대)와 소설가 고종석씨(<한국일보> 논설위원)가 합류해 3인 편집위원 체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대중의 뇌리에는 여전히 ‘강준만 저널’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따라서 <인물과 사상>의 종간으로 강준만식 글쓰기가 역사적인 수명을 다했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강씨는 이미 지난 총선 이후부터 정치 칼럼 집필을 중단했다.

<시사저널>은 <인물과 사상> 종간을 맞아 강씨와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에 대해 그는 ‘참여와 개입에서 관찰과 분석의 입지로 옮겨간 입장에서 인터뷰 형식을 통해 내키는 대로 떠드는 건 규칙 위반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라고 거절 메일을 보내왔다.

그가 전화를 받지 않고 메일과 팩스로만 외부와 교신한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심지어는 <인물과 사상> 편집위원들조차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없다. 편집회의는 e메일로 했으며, 개마고원출판사 장의덕 대표가 셋 사이에서 중계와 조정 역할을 했다. 장대표는 이들에 대해 ‘글로써 연대한 특이한 동지적 관계’라고 표현했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인물과 사상>은 편집위원 체제로 바뀐 뒤에도 개인 저널 성격을 유지했다.
비판 겸허히 수용한 곳은 <문화과학>이 유일

그러다 보니 한 책에서 편집위원 세 사람이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낸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총선 전 발간된 ‘4·15 총선을 보는 세 개의 시선’(29권)이라는 특집에서 이들은 열린우리당 지지(김진석)와 비판(강준만), 제3의 길(고종석)로 나뉘어 서로 논쟁했다. 물론 당시 개혁적 지식인 그룹이 처한 곤혹스런 입장을 특유의 ‘성역 깨기’식 직설 화법으로 정리해냈다는 점에서 보자면 특집은 성공이었다.

‘실명 비평’으로 대표되는 이런 직설적인 글쓰기는 <인물과 사상>이 처음부터 견지한 원칙이었다. 비판이야말로 토론의 출발점이라는 강준만 교수의 소신은 1997년 1월의 창간 특집 ‘정권 교체가 세상을 바꾼다!’에서부터 확실하게 드러났다. 김대중씨를 지지하면서, 그에게 비판적이거나 냉소하는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꼬집은 강씨의 글은 당시까지 지식인들의 글쓰기와는 판이했다.

지금까지 <인물과 사상>의 실명 비평 도마에 오른 인물은 1백68명. 여기에는 김대중 노무현 김근태 박근혜 등 정치인과 김동길 김용옥 손호철 송호근 윤평중 임지현 등 지식인, 김병익 김우창 백낙청 이문열 이인화 등 문인이 망라되어 있다. 김대중 전 조선일보 주필과 조갑제 <월간 조선> 발행인 등 이른바 ‘언론 권력자’들은 그의 단골 글감이었다. 참여연대 등 진보적 그룹도 여러 차례 비판받았다.

실명 비평의 성격상 비평은 곧바로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의 내로라 하던 논객 대부분이 비평 대상으로 혹은 필자로 <인물과 사상>과 인연을 맺었다. 유시민 의원이 대표적이다. 강준만 교수는 2권(1997년 6월)에서 당시 ‘조 순 대안론’을 펴던 유시민씨의 논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유시민씨는 4권(1997년 11월)에 ‘성역 파괴자 강준만의 미덕과 해악’을 써 반박했고, 논쟁을 통해 가까워진 유씨는 <인물과 사상> 필진으로 참여했다. 두 사람은 대선 이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라섰다.

진중권씨(문화 평론가)도 한때 고정 필자였다. 진씨를 세상에 알린 책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인물과 사상>에 연재한 원고를 보완해 펴낸 것이다. 시인 김정란씨(상지대 교수)가 문학권력 논쟁을 제기한 것도 이 매체를 통해서였다.

비평의 잣대에 오른 당사자들은 흔히 감정적 반발을 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편집장 역할을 했던 장의덕 개마고원 대표는 “비판 내용보다 표현의 강도에 시선이 집중되면서 내용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뭘 비판하고자 하는지가 실종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비판받은 뒤 ‘겸허히 수용한다’는 반응을 보인 곳은 <문화과학> 편집진이 유일했다.

<인물과 사상>이 비판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었다. 1999년 10월 무명이던 이종석씨는 ‘북한전문가 이종석의 실사구시 북한관-이 나라엔 주사파와 극우파밖에 없는가’라는 글을 통해 유명 인사가 되었다. 마광수·김용옥 씨는 ‘문단의 엄숙주의에 의해 마녀사냥을 당한 인물’ ‘철학적 엔터테이너’로 재평가받았다. 무엇보다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최대 수혜자로 꼽을 만하다.

특히 강준만 교수와 노무현 대통령의 인연은 독특하다. 강씨는 1998년 노대통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져 ‘낭인’으로 지낼 때 ‘신뢰의 정치를 추구하는 노무현’(8권)이라는 글을 써서 응원했다. 이후 ‘노무현과 국민사기극-한국 대학 교수들의 정치참여 방식’(19권) ‘비열한 노무현 죽이기 수법을 고발한다’(22권) 등을 통해 강씨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섰다.

“스스로를 퇴출한 것은 불합리한 태도”
그러나 대선 이후 민주당 분당 사태를 보면서 그의 노대통령 평가는 극적으로 반전했다. 이는 결국 정치 칼럼 절필에 이어 <인물과 사상> 종간으로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인물과 사상> 33호에 실은 종간사 성격의 글에서 강씨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게 이른바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 절대 다수의 생각과 충돌할 때엔, 나의 퇴출만이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노무현식 개혁과 노무현 지지자들에 대한 환멸감을 표현했다.

한편 <인물과 사상>의 종간을 보는 시각은 당사자의 처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마광수 교수(연세대)는 “내 처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매체였는데, 뜻을 피우지 못하고 꺾인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유시민 의원은 “강준만 교수에게는 이제 내면의 확신을 가지고 감당할 영역이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다수가 공감한 것이 진리에 가까울 수도 있는데, 이를 비판하며 스스로를 퇴출하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지현 교수는 “이분법적 사고로 국내 지식인 사회를 황폐화한 장본인으로서 결국 그 자신이 이분법의 희생자가 되었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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