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다 찾은 ‘경기 부양’ 카드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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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통위, 콜금리 전격 인하…고유가 행진 겹쳐 물가상승 압력 커질 수도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의기투합해 경기 부양에 나섰다. 재경부와 한은은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거시 경제 정책을 총동원하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고 있다. 재경부는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재정 지출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또 부동산 경기가 오버킬(overkill)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부동산거래세를 내리고 저소득층 소득 증대와 소비 진작을 위해 서민 경제 활성화 대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에 발맞추어 한은 총재가 위원장인 금융통화위원회는 8월5일 전격적으로 은행간 단기차입금리(콜금리)를 0.25% 낮추었다.

이헌재 경제 부총리가 내수 경기 침체를 심각하게 파악하고 경기부양책을 주창했으나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단기 부양책이 안고 있는 부작용을 경계하며 경기부양책을 거부했다. 그러나 박 승 한은총재가 콜금리를 낮추는 조처로 이부총리 진영에 가담하면서 경제정책 주도권 다툼에서 이부총리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발벗고 나서자, 그동안 갈팡질팡하던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는 측면에서 경제 주체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국제 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어 국내 물가상승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재경부는 지난 국회에서 승인한 추가경정예산 1조8천억원과 정부 재량으로 집행할 수 있는 공공부문 지출을 합쳐 총 4조5천억원 가량을 올해 하반기에 집중 편성했다. 내년 예산도 적자 재정을 감수하더라도 정부 지출을 늘릴 계획이다.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정체 상태이므로 정부가 지출을 늘려 시장을 활성화하고 궁극적으로 소비와 투자 증대를 유도하겠다는 뜻이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보는 “과거 한국은행이 특별금융 자금까지 금융기관에 공급해 주식 시장을 부양했던 조처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경제 기초체력(펀더멘털)을 강화하고 정상적으로 경제를 운영하기 위한 거시 경제정책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경기부양책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불안 요인은 물가상승 압력이다. 미국 서부텍사스 중질유 기준으로 배럴당 47 달러에 육박한 국제 유가는 석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공산품 생산 비용을 높여 소비자 물가로 전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금리가 낮아지면 물가상승 압력은 더 커지고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 더욱이 내수 침체는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 침체와 물가상승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앤디 시에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금리가 지나치게 낮은 상태에서 (고유가로 인해) 원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임금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부양 효과, 두 달후 판가름

국내 소비자 물가는 지난 7월 4.4%나 올랐다. 3월 3.1%에 비해 크게 뛴 것이다. 이번 콜금리 인하 조처로 인한 경기 부양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한은이 3.5%까지 떨어진 콜금리를 더 낮추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에 내수가 계속 침체하고 유가 또한 여전히 불안정하고 수출까지 위축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면 콜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수밖에 없다. 재경부와 한은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기 위해 선제 조처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부양책이 적절한 조처였는지는 두 달 후 정책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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