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바보가 아니었다
  • 문정우 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01.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 지식 검색창에 컨셉트란 말을 입력하면 이런 질문이 뜬다. ‘코요테의 김종민이 어리버리한 것은 본래 그런 건가요, 컨셉트인가요?’

이렇듯 요즘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즐겨 쓰는 말이 바로 컨셉트이다. 영어로 컨셉트(concept)는 본래 개념·관념을 뜻하는데 현대 마케팅이나 광고론에서 즐겨 쓰는 용어이다 보니 일반인에게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마케팅 이론에서 컨셉트란 ‘브랜드의 핵심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간단하고 통일된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복잡한 듯하지만 예를 들어 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를테면 에이스침대가 채택해 톡톡히 재미를 본 ‘침대는 과학이다’ 같은 광고 카피가 성공적인 컨셉트이다. 국내의 크고 작은 침대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침대공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던 에이스침대는 ‘우리는 잠자리도 과학적으로 만든다’는 컨셉트로 소비자에게 다가가 업계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세계 샴푸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P&G 팬틴 샴푸의 컨셉트는 ‘프로비타민으로 영양을 공급해 머릿결에 생명력이 넘쳐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컨셉트를 잘못 잡으면 브랜드의 생명은 길 수가 없다. 컨셉트가 왔다갔다하면 수십조원을 투자한 브랜드라도 하루아침에 도태하고 마는 것이 시장의 비정한 생리이다. 요즘에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은 물론이거니와 평범한 직장인도 컨셉트를 잘 가져가야 출세하는 세상이다.

 
변방의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컨셉트는 ‘바보’였다. 약아빠진 이들만이 살아 남는 정치판에서 고집스럽게 지역 감정과 패거리 정치를 거부하며 버텨온 어리숙함에 반해 유권자는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야당이 탄핵안을 통과시켰을 때나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을 때만 해도 그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바보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지난 1월13일 신년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노대통령(사진)은 많이 ‘똑똑해져’ 있었다. 여느 대통령들처럼 2008년에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열리고 2010년에는 선진 경제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칠 줄도 알았다. 얼마 전 과거가 깨끗하지 못하면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된들 뭐하냐고 말하던 그 ‘바보’는 아니었다. 2년 전 취임사에서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던 시대를 끝내자”고 말하던 우직한 그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