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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평]반듯반듯한 도시화 능사 아니다

“도시를 토막토막 내고 도로를 직선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는다. 자연을 잃고 경관을 잃고 정든 장소를 잃는다. 문화 선진국 어디에서도 기존 도시나 취락 구조를 완전히 뒤바꾸는 경우는 없다.?

김진애 (도시건축 PD) ㅣ 승인 1996.10.03(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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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일을 시작할 때 보는 도면이 지적도이다. 땅 모양과 도로가 그려져 있다. 반듯반듯 네모 땅을 보면 ‘거 참, 잘 생겼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웬만큼 큰 땅이라면 ‘해볼만 하네’라는 말도 나온다.

네모 땅이 좋은 이유는 분명하다. 건축은 대개 직선의 조합이다. 직각으로 만나는 직선이 유리하다. 벽과 기둥을 세우기에 좋다. 또 직각으로 짜이면 보와 바닥판 처리하기가 간단하다. 건물이 네모 반듯이 올라가면 외피 면적도 줄어든다. 그만큼 일은 단순해지고 시공비도 싸게 먹힐 수 있다. 큰 땅이 좋은 이유도 분명하다. 어떤 용도냐에 따라 규모의 경제성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클수록 운용의 묘가 좋다. 많이, 또 높이 지을 수 있다. 요새처럼 큰 것 좋아하는 때에 한자락 크게 할 마음을 먹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일하기는 네모 땅, 큰 땅이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움을 인정한다. 일이 단순하다. 계획하기 쉽고 설계하기 편하고 우여곡절 생길 소지가 적어 예측이 가능하다.

꼬부랑 길 그대로 놔두자

그런데 문제는 우리 환경과 여건에서 네모 땅, 큰 땅을 무작정 만들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경우란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우선 우리 땅의 지형 지세에는 굴곡이 많다. 평평 광활한 땅은 어쩌다 있고, 또 대개 논밭으로 귀하게 쓰이기도 한다. 사람 사는 곳은 대개 땅이 만드는 비직선형 지형 위에 있다. 그러다 보니 땅을 나누어 쓰는 방식이나 건물 앉히는 방식이 반듯반듯하지 않다. 하나하나 땅의 규모도 작은 편이다. 길도 직선이 아니다. 그런데도 토목 건축 기술이 아직 인간적이었을 때는 자연을 읽을 줄 알았고, 또 규모에 적절한 도를 지킬 줄 알았다.

땅은 유구한데 땅을 쓰는 인간들이 달라졌다. 기술은 무엇이나 가능케 한다는 환상을 심어 주고, 또 사회는 그 기술을 쉽게 이용하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근에 나는 두 번 당혹스런 경우를 당했다. 한 번은 서울 사대문 안의 도심 재개발지역 사업 계획을 알고 나서다. 종로에서 충무로에 이르는 커다란 지역이 그저 반듯반듯한 네모 땅으로, 필지 하나가 천평에서 2천여 평 규모로 잘려 있었다. 내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서울 사대문 안 지역을 토막토막, 반듯반듯 잘라 놓은 도시 계획도였다. 광복으로 겨우 살아 남았던 사대문 안이 이제 반 세기 지나 우리 자신의 손에 의해 더 큰 규모로 똑같은 짓을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또 한 번은 서울 근교 한 취락의 도시 계획 때문이었다.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생긴 길과 고만고만한 중규모 집들이 어울려 있는 이 아기자기한 취락 위에 반듯반듯한 도로를 새로 낸다는 것이었다. 길이 좀 넓어져야 한다면 왜 이미 있는 길을 조금씩 넓히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도로망을 짤까. 게다가 50여 필지 정도가 산으로 둘러싸인 이 작은 취락에 너비 10m의 도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이 분야에 종사한다는 것이 부끄럽기만 한 순간이었다.

아끼는 정신, 살리는 정신까지 무너뜨려

비단 이 두 사례뿐 아니라, 이러한 일은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는다. 자연을 잃고 경관을 잃고 정든 장소를 잃고 더불어 살던 사람도 잃는다. 더 아쉬운 것은 아끼는 정신, 살리는 정신, 꼼꼼히 일하는 정신까지 잃는다는 사실이다.

문화 선진국 어디에도 기존 도시나 취락 구조를 완전히 뒤바꾸는 경우는 없다. 새로운 땅이 필요하면 새로운 땅에 과감히 혁신적으로 새로 만든다. 새로 만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오랜 시간 속에 이루어진 것을 다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진즉 터득한 덕분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 지혜를 배울 수 있을까.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것들, 예컨대 자연· 물·길·집이 모여 있는 풍경을 없애기는 쉬워도 다시 만들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터득할까.

네모 땅, 큰 땅이 싫어서가 아니다. 네모 땅, 큰 땅은 있을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만들어도 괜찮은 곳에 네모 땅, 큰 땅을 만들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비록 네모가 아니고 크지 않아도, 아무리 일하기 복잡하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있을 만한 건축 환경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자세라야 환경과 역사와 문화가 살아나고, 섬세하고 복합적인 첨단 기술력도, 긴 생명과 역량을 갖춘 경제력도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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