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특집 ‘동물의 왕국’
  • 고미숙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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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텔레비전 보기를 좋아한다. 심각한 정치 토론이나 골프 중계 따위를 제외하고는 드라마에서 시트콤·개그 및 광고에 이르기까지 마구잡이로 즐기는 편이다. 한마디로 ‘무비판적인’ 시청자인 셈인데, 그럼에도 가끔 어떤 대목에선 영 불편할 때가 있다.




예컨대 ‘올 여름엔 우리 아가 무더위에 잠 못드는 날이 하루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에어컨 광고를 접할 때가 그렇다. 녹색 자연을 배경으로 우아한 여배우가 등장하는 광고가 뭐가 문제냐고? 아이 사랑이야 늘상 반복되는 텔레비전의 이념이자 슬로건이라 치더라도, ‘하루도’라는 부사어는 좀 참기가 어렵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렇게 완벽하게 쾌적하려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기나 해?’ 하는 류의 반감이 불끈 치솟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쾌적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광고를 탓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안다. 실제로 사람들은 단 한순간도 더위를 참지 못한다. 지금 당장 버스나 기차, 지하철을 타보라. 시원함을 넘어 냉기를 느낄 정도로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모름지기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야 한다’는 상식을 고집하는 나 같은 경우, 이 여름은 더위와 전쟁이 아니라 에어컨과 전쟁을 치르느라 더 곤혹스럽다.


무더위를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에어컨이 아예 더위라는 감각 자체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이 어이없는 전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이렇게 우리가 에어컨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에어컨이 내뿜는 열기 때문에 ‘외부자들’(사람이든 동물이든)은 그만큼 더 열기에 노출되어 질식된다는 사실을 모른 척해도 괜찮은 것일까?


‘납량 특집! 동물의 왕국.’


사소한 문제에 이렇게 과격한 의분(!)을 느끼게 된 것은 순전히 <동물의 왕국> 덕분이다. 일요일 오후 5시10분에 방영되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고전 <동물의 왕국>은 내가 가장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다. 수시로 방영이 미루어지고, 월드컵 기간에는 내내 중단되었을 정도로 ‘마이너 장르’이지만 그나마 근근히 유지되는 것만도 내게는 감지덕지다.


이 프로그램의 미덕은 무엇보다 가슴을 탁 트이게 해주는 광활한 배경에 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내가 지구의 일부라고 실감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 프로가 유일하지 싶다. 여기에는 아프리카와 북극, 아라비아의 사막 등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들의 ‘대서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코끼리와 말똥구리의 공생법이나 사자와 표범, 하이에나와 자칼 등 맹수들 사이의 사냥감 경쟁, 발트 해의 늑대 무리 등은 어떤 할리우드 영화도 견주기 어려운 스릴과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한참 동물들의 신기한 생존법과 대자연의 스펙터클에 넋을 잃고 있을 즈음, 언제나 반복되는 멘트가 있다. 그 동물들의 생존이 파국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수백만년 동안 온갖 자연 재해와 천적들의 등장에도 생존의 지혜를 터득해온 동물들이 이제 더 이상 벗어나기 어려운 재앙에 마주친 것이다. 그 재앙은 ‘인간’이다.


자연과 최소한 공존할 끈마저 놓쳐버린 ‘문명화한 인간’, 바로 우리 자신! 충격적인 사실은 그것이 밀렵이나 공해, 개발 같은 특정 행위에 한정되는 문제가 더 이상 아니라는 점이다. 100억을 향해 육박해 들어가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동물의 왕국에는 치명적인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말하자면, 우리는 ‘내 아이가 하루도 무더위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바로 그 배경으로 깔리는 녹색의 대지를 무자비하게 파괴해야만 하는 ‘디스토피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내게는 이 프로그램이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강도 높은 납량 특집물로 여겨진다. 그러니, 한여름을 견디기 어려운 분들은 에어컨에 몸을 맡기기보다 <동물의 왕국>을 보심이 어떨지. 더위가 ‘싹’ 가실 뿐 아니라, 존재와 우주에 대한 아주 낯설고도 경이로운 체험을 맛보는 ‘프리미엄’도 누리게 될 터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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