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게릴라, 폐교에 뜨다
  • 경남 밀양·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200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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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시인에서 연출가로 변신한 이윤택씨(48)는, 연극 무대를 난장으로 끌어내렸다. 부산의 ‘연희단 거리패’를 몰고 서울로 진출해 연극의 엄숙함과 정형을 파괴하는 ‘문화 게릴라’로 활동해 온 그가 요즘 경남 밀양시의 한 폐교 부지에 출몰하고 있다.

지난해 폐교한 밀양시 부북면 월산초등학교 자리를 빌려 문을 연 우리극연구소(이사장 손숙)와 밀양연극촌(촌장 하부용)에서 그가 맡은 직함은 총감독. 대학 강의나 공연으로 자리를 비울 때를 제외하고는 이 곳에 머무르며 연극패 ‘두목’ 노릇을 한다.

‘연극 종합합숙훈련 제작소’라는 그의 긴 설명처럼, 우리극연구소는 공연 연습은 물론 소품·의상·무대 등 연극 전반이 제작되는 ‘예술 공장’이다. 70명이 넘는 단원과 비슷한 숫자의 연습생 등 대가족을 이끌고 있지만, 그는 여기서도 점잖은 연출가가 되지는 못한다. 운동장 귀퉁이를 ‘숲의 극장’이라고 이름붙여 가설 무대를 차리고, 동네 주민을 불러모으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부터 매주 토·일 요일 오후 6시, 담배를 피우고 더러는 새참 술이 과해 주정하는 시골 관객들 앞에서 그는 서슴없이 대작을 무대에 올린다. “암전(暗轉)이 불가능해 공연이 끝나면 죽었던 배우들이 일어나 걸어나가는 ‘신기한’ 모습까지 보여준다”라며 낄낄 웃는 그는 “그래도 이게 서울서 공연하면 S석 3만5천원짜리다”라며 생색을 내기도 한다.

이 곳에도 5천원짜리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가 있지만, 순전히 ‘폼’이다. 표를 확인하는 일도, 사방이 트인 공연장을 지키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부터 <산너머 개똥아> <도솔가-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공연한 숲의 극장은 7월에도 <도솔가…>와 인기 강사 정덕희씨의 1인극 <이혼하지 않는 여자>를 올린다. 특히 <도솔가…>는 오는 9월 개막하는 경주 문화엑스포 테마 공연으로 제작한 작품이어서, ‘가설 무대에서 초연(初演)한 대작’이라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도솔가…>는 7월7일부터 22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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