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나체 사진 홈페이지에 올려 기소된 김인규 교사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1.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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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설득할 자신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평생 내 이름 앞에는 나체 교사라는 말이 따라다닐 것이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학생들에게 어른들의 사회가 이 지경이라는 것을 보여주게 되어 낯이 뜨거울 뿐이다."




평생 내 이름 앞에는 나체 교사라는 말이 따라다닐 것이다. 또 이렇게 떠나는 선생을 보고 학생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겠는가."


자신과 부인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기소된 충남 서천 비인중학교 미술 교사 김인규씨(39)는, 기나긴 터널 앞에 선 느낌이다. 재판이 남았고, 교육청의 징계 절차가 남았다. 본 게임은 이제부터인 것이다.


지난 6월21일 만난 김인규씨는 이미 직위 해제 처분을 받아 나흘째 교단으로부터 격리된 상태였다. 자택에 머무르고 있는 김씨는 학생들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었다. "곧 기말 고사다. 한 학기 동안 내가 가르친 아이들을 누가 평가할 수 있을지…."


삭제 요구 받은 지 열흘 만에 철창 신세


서천 지역은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했다. 김씨는 교장으로부터 사진을 삭제하라는 요구를 받은 지 열흘도 되지 않아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5월17∼26일 긴급 체포).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는지, 그는 아직도 어리둥절하다. 특히 학부모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만약 대화를 나눈 뒤에도 대다수 학부모가 삭제를 요구하면 그 판단을 존중했을 것이다."


김씨 부부의 나신을 담은 사진은 홈페이지 갤러리 코너에 게시된 '나체 미학' 시리즈의 일부였다. 몸에 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다룬 연작인데, 문제가 된 사진은 맨 마지막 작품이었다. 현대는 상품성이 있는 몸만 숭배하지만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개인적인 사연도 있다. 5년 전 어려운 상황에서 덜컥 셋째 아이가 들어서자 갈등을 겪었고, 낳기로 결정한 뒤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씨 부부는 사진을 통해 몸과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말하고자 했지만(그 아이가 지금 다섯 살이다), 사진만 달랑 떨어져 나와 구설에 오르다 보니 작품을 전체 맥락에서 파악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김교사가 보기에 이번 사태는 '맨 나중에 와야 할 일이 가장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고약하게 꼬였다. 즉 학부모회장을 비롯한 일부 학부모가 김교사와 단 한 차례 면담한 뒤 곧바로 대검과 도교육청에 김교사를 고발했고, 언론은 고발자측 주장만 일방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논의를 통해 사태를 해결할 기회를 영영 놓쳐 버렸다는 것이다(TJB 방송의 첫 보도를 가리킴).


검찰이 김씨를 긴급 체포하자 사안은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문화 평론가 고길섶씨(〈문화연대〉 편집장)는, 검찰의 놀라운 신속성에 대해 이 사건이 인터넷을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필요했던 검찰 처지와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교육계로서는 진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와 같은 분위기는 직위 해제를 결정한 충남 교육청에서도 여실히 확인되었다. '문화 개혁을 위한 시민 연대'와 그 지역 화가들로 구성된 항의 방문단(단장 김정헌 교수)과 만난 자리에서 김학근 교육국장은 "예술과 외설은 법원이 가릴 문제다. 하지만 이미 물의가 빚어진 이상 가만히 있으면 직무 유기가 될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고발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학부모 박 아무개씨(비인중학교 학부모회장)는 "그동안 너무 시달렸다. 이제 생업에 종사하고 싶다"라며 취재를 거부했다. 이미 박씨는 문화방송 〈생방송 100분 토론〉에서 문제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예술가로서) 실력이 있으면 왜 이런 시골에서 이러고 있느냐. 예술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발언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은 것이다.




김교사는 해명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근거 없는 혐의에 시달렸다. 즉 그런 사진을 찍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학교 홈페이지에 연결했고, 수행 평가를 하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감상문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은 동료 교사와 학생들의 탄원서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다. 비인중학교 학생회장단(회장 조효인)은 김씨가 체포된 이튿날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100장이 넘는 서명을 받았고(전교생은 1백68명), 교사들도 '김씨가 홈페이지를 연결하지 않았으며,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언론에 대서 특필된 이상 엎질러진 물이었다. 김씨는 평소 감정의 앙금 때문에 사태가 악화했다고 짐작하고 있다. 괘씸죄라는 것이다. 전교조 활동 때문에 5년 동안 해직되었다가 1994년 복직한 김씨는 3년 전 비인중학교에 부임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축제를 활성화하고, 학생들과 함께 연극과 영화를 만드는 등 체험 활동을 중시하는 교육을 해왔다. 소소한 마찰이 이어졌고, 급기야 지난해 학교측이 특기 적성 교육에 할당된 시간을 주요 교과목을 보충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겠다고 나서면서 갈등이 격화했다. 학교를 입시 학원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그의 소신이 학교측과 일부 학부모로부터 반발을 산 것이다. 심지어 일부 교사도 김씨를 비웃었다. 김씨는 동료가 '주요 과목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 얘기할 때 아득했다고 말했다.


김교사 체포된 뒤 학부모 대책회의 처음 열려


사태가 감정 싸움으로 치달았다는 혐의는 또 있다. 첫 번째 구속 영장이 기각되자, 고발을 주도했던 학부모들이 대규모 서명운동을 벌인 것이다. 그들이 지역 주민 4백30여 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검찰에 제출하자, 검찰은 재차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사안을 밀착 취재한 주간 신문 〈뉴스 서천〉의 윤승갑 기자는 첫 학부모 대책회의가 김교사가 이미 긴급 체포된 뒤에야 열렸다는 데 주목한다. 일을 내놓고 여론몰이를 했다는 것이다. 바로 그 회의에서 이견을 냈다가 면박을 당한 한 학부모는 무력감을 호소했다. "처음 사진을 보면 누구나 당황할 것이다. 하지만 평소 김선생님이 아이들을 얼마나 성심껏 대했는지 돌아본다면 일을 그렇게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고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학생들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인데 주최측은 나를 심하게 공격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 아내와 학생들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는 일이 이 지경이 될 줄 알았다면 다르게 대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속적부심이 있던 날 동행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담당 판사는 김씨 부부에게 "아이들이 사진을 보았느냐, 그런 걸 이해한다니 참 수준 높은 아이들이다"라고 빈정댔다. 김씨는 더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내에게 미안하고, 학생들에게 어른들의 사회가 이 지경이라는 것을 보여주게 되어 낯이 뜨거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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