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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강나루’서 건져낸 백정 恨

‘진주농민항쟁’복권 그린 정동주 대하소설 <백정>의 무대를 찾아서

사천. 이문재 기자 ㅣ 승인 1991.08.08(Thu) 00:00:00

분강은 진주 남강의 지류였다. 덕유산자락과 지리산의 크낙한 품에서 생겨난 물줄기가 함양 산청 하동 사천의 계곡과 들판을 어루만지면서 남강을 이루는데, 1백년 전만 해도 남강은 진주성을 눈앞에 두고 갈라져 작은 지류를 흘려보냈었다. 그 물줄기가 분강이었다. 진주성을 서북에서 휘감아들어 동남쪽으로 나와, 진주시 동쪽 옥봉 앞에서 다시 남강과 만났던 분강은 그러나 금세기 초에 매립되고 말았다.

최근 전10권으로 완간된 정동주씨(44)의 대하소설 <백정>(우리문학사 펴냄)은 분강나루에서 시작된다. 분강은 이 ‘대하’소설의 들머리일 뿐 아니라 소설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진주농민항쟁’을 상징하는 강이다. 그 분강이 메워지고 그 위에 도시가 들어차 있는 현실은 백정과 진주농민항쟁 역사의 ‘매립’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 정동주씨가 소설<백정>속에서 분강을 복원한 것은 “백정의 역사와 그들이 관계된 진주농민 항쟁의 복권”인 것이다.

분강처럼 매립된 백정과 농민들의 분노
분강과 남강 줄기를 더듬어 소설의 무대를 찾아가는 길은 1백30년 전 진주 일대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진주농민들의 분노와 희망을 확인하는 일이며, 그 봉기에 자금을 대주는 한편 그 봉기를 통해 사회의식에 눈뜨는 백정을 인간의 눈으로 되살리는 작업일 터이다.

진주시 동쪽 옥봉을 뒤로 하고 진주문예 회관을 바라보는 남강 둑이 분강 나루터였다고 작가는 말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진주성 촉석루 앞에서 활처럼 휘어진 남강은 ‘화살처럼’가락지다리(진주철교)를 강 위에 걸어놓고 있었다. 소설의 공간은 분강을 사이에 둔 비인간(백정)과 인간, 농민군과 진주성(양민들), 남명 조식과 조선말엽 양반, 농민봉기와 동학 등의 대립축으로 전반부를 지나 서울과 진주라는 보다 큰 공간으로 확대되면서 백정사회와 기독교와의 만남까지를 그려내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1861년부터 1899년 사이를 서술한 사회사적인 장편소설이다(권영민씨 작품평 참조).

1861년 봄, 지방 관리와 양반 그리고 토호들의 수탈에 짓눌려 참담한 삶을 연명하고 있는 농민들을 바라보며 농민이 농민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던 유계춘은 분강 나루를 건너 백정들이 사는 마을 ‘섭천’으로 들어선다. 물론 소설 속으 그 마을은 지금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백정들은 따로 모여살아야 한다는 제한규정이 1864년에 철폐되자 모두 마을을 떠나버린 것이다.

백정들은 부친상을 당해도 상복을 입지 못하고 상여도 쓰지 못하며 3일장도 치를수 없었다. 결혼식에도 말과 가마를 탈 수 없었다. 그들이 잡는 소는 국가 재산으로 관리되어도 소를 잡는 사람인 그들은 나라의 인구에 포함되지 않아 호적도 없었다. “백정 죽이고 사람 죽였다는 소리 듣는구나”라는 소리가 그 시절에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백정 사회는 철저하게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회의체(승동도가)에 의해 움직였으며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거짓말을 금기시 하는, 그들 나름의 엄격한 문화가 있었다. 백정들에겐 경제적 기반도 없지 않았다. ‘나라 백성이 아닌 탓에’세금을 내지 않았으며 생활필수품까지도 양반?상민들의 것은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돈을 쓸 데가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형편을 알고 있던 유계춘이 백정사회의 최고 지도자 길상구와 가까워진다.

이 소설의 제1부 3권은 오래 전부터 ‘거사’를 준비해온 유계춘과 백정사회의 지도자 길상구를 중심으로 진주농민운동의 전개과정을 치밀하게 따라가고 있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백낙신과 진주목사 홍병원이 부임한 이래 이 지역 탐관 오리와 양반 지주들은 갖은 방법으로 백성들을 수탈했다. 국가재저의 3대 요소인 三政(oooo oo)제도가 전국적으로 문란해졌다는 사회적 배경이 있었지만 이 일대는 그 정도가 극심했다.

유계춘은 길상구로부터 봉기에 필요한 자금지원을 약속받는 한편 인간적으로도 매우 친밀해진다.

전국으로 번진 최초의 조직적 농민봉기
유계춘과 각 마을의 대표 9인이 모여 치밀한 사전 조직과 계획에 의해 1862년 2월18일을 기해 한국 최초의 조직적인 농민운동의 깃발을 추켜 세운다. 농민군들은 현재의 사천군 길평에 모여 수곡장터에서 1차집결, 다시 지리산 동남쪽인 산청군 덕산장에 모여 성내로 향했다. 진주성을 포위하여 백병사와 홍목사의 항복을 받은 뒤 2월23일 농민군들이 귀가하면서 농민운동은 일단 막을 내렸지만, 이 봉기는 삼남지방은 물론 전국의 농민들을 자극한다. 농민군의 ‘진격로’답사에는 작가와 함께 유열규씨(전 창원대 교수?건축사)가 동행했다. 유씨는 유계춘의 증손으로 “증조할아버지가 동학운동과 관련되었다”고만 알고 있다가 4년전 우연한 기회에 증조부에 관한 논문을 접하고 증조부의 ‘대단한 역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유계춘은 남명 조식의 ‘실천학문’(OO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인물로 평민 신분이었지만 탁월한 학문적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유열규씨는 후학들이 남명의 학문과 생애를 기리며 세운 덕천서원 앞에서 “남명의 사상이 소흘히 취급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농민군의 집결지였던 덕산장터는 덕천서원 바로 앞에 있다.

농민항쟁은 병마절도사가 바뀌고 서울에서 안핵사 박규수가 내려옴으로써 철저하게 수사되고 응징된다. 그러나 유계춘과 지휘부 9명은 스스로 성내로 들어가 자수를 한다. 농민과 백정 등 봉기에 참여한 이들을 살려내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바친 것이다. 50여일에 걸친 고문 끝에 그들이 목을 잘린 자리 역시 분강 나루 근처였다.

소설 2부는 동학과 백정사회와의 관계를 새롭게 밝혀내면서 수포로 돌아간 ‘제2차 진주민중항쟁’을 엮어나간다. 수운 최제우의 제자인 주성칠은 농민과 천민들을 은밀하게 끌어들여 스러져가는 조선을 혁파하고 새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길상구와 만난다. 길상구가 유계춘과 농민봉기를 통해 사회의식에 눈떴다면 동학과의 만남으로 ‘나’와 우주를 새삼 각성하는 것이다. 남해농민운동을 일으킨 뒤 남해를 근거지로 군사를 일으켜 서울을 치려던 1871년의 2차 농민봉기의 실패로 길상구는 조직 내부에서 살해당한다.

진주민란의 추진세력은 유계춘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이었지만 백정들이 경제적으로 관여되었고, 동학 또한 ‘민란’이 휩쓸고간 폐허를 어루만지며 32년 동안 번져나갔다고 이 소설은 새롭게 밝히고 있다. 수운이, 진주농민들이 들고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OO로다 호시로다”라고 말했음을 작가는 상기시키면서 “동학혁명(1894년)은 진주농민항쟁이 씨앗”이라고 강조했다.

소설의 무대는 3부에서 서울로 변한다. 길상구의 아들과 상구의 동생 상대 일가가 서울에 자리를 잡으면서 기독교와 만나는 것이다. 최초의 백정선교교회였던 서울의 곤담골교회와 이 교회 미국인 선교사 사무엘 무어가 “제국주의의 이익보다 복음을 우선”했던 까닭에, 백정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에 눈떠가게 되었다. 제4부에서는 일본이 조선 강점을 앞두고 조선의 쇠가죽을 수입하게 되자 백정사회가 다시 일본 상인과 결탁하는 양반들에 의해 피해를 입는다. 그런 한편으로 백정들은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을 통해 각종 토론회에 참가, 사회인으로서의 자각과 훈련을 거치면서, 무어 목사의 도움으로 여러 차례 상소문을 올린 끝에 1899년 마침내 호적을 얻어내면서 <백정>은 끝을 맺는다.

“백정의 역사를 통해 근현대사 재해석”
현재 경남 사천군에서 살고 있는 작가 정동주씨는 장편서사시 <논개>의 자료를 수집하다가 봉기에 필요한 자금의 ‘비밀통로’가 있었다는 단서를 발견하고 82년부터 백정에 관한 자료를 탐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축장에 몇 번 위장취업을 해보고 4백여명 가까운 관련자들을 만나보고, 국내의 각종 자료를 뒤졌지만 쓸 만한 자료가 없었다. 백정의 후손을 알게 돼 그로부터 “일본에 가면 자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일본에 건너가 많은 자료를 구했고 이어 미국 영국 그리고 중굴을 다녀온 뒤 5년만에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 땅의 기록문화 부재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말했다.

<백정>은 10권으로 일단락되었지만 <부산일보>에 연재중인 <일어서는 혼>으로 이어진다. 또한 <백정>은 올 가을에 묶여질 <남북의 조건>(전 7권)과 앞으로 쓰여질 <적도기단>을 합해 모두 45권에 이르는 대하소설의 서곡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소설의 대장정은 “1861년부터 1945년까지의 백정사를 통한 한국근현대사 재조명”혹은 “민중사의 복권”으로 불려질 것 같다. 길상구와 상대의 후손들이 <일어서는 혼>에서 1920년대 한국 최초의 사회운동인 ‘형평운동’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이 운동은 신간회와 조선공산당, 그리고 일제와 맞물리면서 해방공간의 혼란과 분단의 원인까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