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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배수진으로 ‘대마불사’ 재현하나

대한항공 600억원 대여·오너가 사재 합쳐 1100억원 마련…채권단 “청산여부 아직 몰라”

박성의 기자 ㅣ sincerity@sisajournal-e.com | 승인 2016.09.22(Thu) 08: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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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은 21일 오후 긴급 이사회를 열고 한진해운 매출채권을 담보로 600억원을 대여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필요하다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부족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 사진=뉴스1

 

청산 문턱까지 간 한진해운을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당초 한진그룹이 충분한 자구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신규자금 지원은 없다고 못 박았던 채권단이 ‘조건부 지원안’을 다시 말하고 나섰다. 한진이 회생 의지를 보인다면 상황에 따라 부족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단 입장은 한 달 전 한진이 제시한 자구안을 거부했을 때와 다르지 않다. 다만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물류대란이 발생했고, 이를 둘러싼 한진과 정치권, 채권단의 책임공방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결국 한진해운 청산에 부담감을 느낀 채권단이 ‘대마불사’(큰 기업은 죽이지 않는다)를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 “더 이상 내놓을 것 없다”…배수진 친 한진

대한항공은 21일 오후 긴급 이사회를 열고 한진해운 매출채권을 담보로 600억원을 대여하기로 의결했다. 대한항공은 그 동안 한진해운 지원방안을 두고 4차례에 걸쳐 이사회를 열었지만 배임을 우려한 사외이사들 반대로 결론을 내리지 못해왔다.

당초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이 보유한 미국 롱비치터미널 지분과 채권 등을 담보로 잡고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이 이미 담보 대출을 받은 6개 해외 금융기관과 또 다른 대주주인 MSC 동의를 모두 얻어내야 한다는 게 숙제였다.

이에 비해 매출채권 담보 설정 절차는 간단했다. 매출채권 대부분은 화물 운송을 끝낸 뒤 화주에게 받는 운임이다. 일단 한진해운 하역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게 되면 대여한 돈을 회수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대한항공 사외이사들이 롱비치터미널 때와 달리 찬성표를 던진 이유다.

대한항공이 600억원 집행을 완료하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출연한 사재 400억원을 합쳐 한진그룹의 지원액은 1000억원이 된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사재 100억원을 내놓았다. 한진그룹은 주식회사 유한책임 법리 안에서 모든 의무를 다 했다는 입장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물류대란 해소를 위해 그룹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찾고 있다. 부족하겠지만 화주들 피해를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회생의 끈은 놓지 않았다. 다만 법정관리 아래서 할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다. 법원과 채권단 판단을 기다리는 순서만 남았다”고 밝혔다.

◇ “부족자금은 여전한데”…국적선사 침몰 둔 ‘폭탄 돌리기’

지난달 31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이 접수될 당시만 해도 한진해운 청산은 시간문제라는 게 업계 관측이었다. 법정관리에 놓인 해운사는 글로벌 해운동맹에서 즉시 퇴출된다. 동시에 원양 루트 등도 소실된다. 결국 껍데기 회사가 된 한진해운을 법원이 청산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했다.

그러나 법정관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판단은 달랐다. 한진해운 법정관리를 지휘하는 김정만 수석부장판사(사법연수원 18기)는 “회사의 회생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청산보다 회생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파산부는 채권단과 정부에 지속적인 ‘SOS’(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파산부는 한진해운이 청산될 시 극심한 물류대란과 이로 인해 화주들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조 단위의 배상액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즉, 당장 기업 사정이 좋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회생이 청산보다 돈을 ‘덜 잡아먹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치명타를 입게 된 선주 반발도 고조되고 있다. 한국선주협회는 한진해운 청산 시 해운업계에서만 1193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분석을 내놨다. 부산을 지역구로 둔 김무성 의원을 포함한 새누리당 의원들도 한진해운 침몰에 따른 지역경제 붕괴를 경고하고 나섰다.

이에 구조조정 대원칙을 내세웠던 채권단도 부담을 떠안게 됐다. 대주주가 있는 민간기업의 유동성은 '자구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정치권과 재계에서 들려오는 원망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한진그룹 책임론을 강조해 온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채권단 자금 지원 가능성을 내비췄다. 임 위원장은 21일 “필요하다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부족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원론적 입장이지만 임 위원장 발언대로 산업은행이 한진해운 지원에 나설 경우, 한진해운 하역 정상화에 물꼬가 트일 수 있다.

다만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화물을 내리는 데 필요한 하역비가 이미 2800억원까지 불어난 상태다. 한진해운은 내년 말까지 부족자금이 최악에는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채권단이 한진해운에 신규자금 6000억원을 지원하더라도 상거래 채권 연체액(6500억원)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채권단 내부에서는 막판 극적 지원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진해운 정상화에 필요한 지원액보다 물류대란 수습에 따른 비용이 더 커질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회생 ‘골든 타임’을 놓칠 경우 한진해운 정상화 자체가 불가능해 질 수 있다. 산업은행과 정치권이 한진해운 지원을 다시 고려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채권단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국가 기간산업을 좌우하는 매머드급 회사다. 구조조정 원칙이 훼손돼서는 안 되지만 청산에 있어 신중을 기하는 이유기도 하다”며 “물류대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채권단 차원의 담보 지원 등이 논의되고 있다. 법정관리가 진행되고 있지만 청산을 기정사실화로 보지 않는다. 채권단 내에서도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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