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오락’이 몰려온다
  • 토론토·김상현 (자유기고가) ()
  • 승인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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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파드’ 열풍…인터넷 엔터테인먼트 통해 ‘개인 미디어’로 진화
킴벌리 마이어스 부인에게 떨어진 명령에 모호한 구석은 전혀 없다. 그녀의 딸은 웹으로부터 음악을 내려받아 들을 수 있는 MP3 플레이어를 선물로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무 플레이어나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애플의 미니 아이파드(iPod), 그것도 라임 열매 같은 녹색을 원한다.

마이어스 부인의 딸이 유난스러운 컴퓨터광이거나 전자제품 애호가인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그녀의 집안 어디에도 애플의 컴퓨터 제품은 없다. 그녀를 매혹시키는 것은 단 하나, 자기 주머니에 1만 곡의 노래를 넣고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PC 업계의 새로운 시장 창출

미국의 권위 있는 신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최근 애플 아이파드 열풍을 흥미로운 시각으로 조명했다. 애플의 아이파드가 첨단 기술의 중요한 미래상, 곧 모든 것의 오락화, 혹은 엔터테인먼트화 현상을 드러낸다고 분석한 것이다. 신문은 또 컴퓨터 업계가 크리스마스 대목을 겨냥해 내놓은 디지털 카메라·플라즈마 TV·MP3 플레이어 등 오락과 여가에 초점을 맞춘 제품들이 그 흐름을 반영했으며, 그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PC 판매량이 주춤해진 지난 몇 년 동안 이미 컴퓨터 업계는 새로운 시장, 새로운 유행을 애타게 찾아왔다. ‘디지털 오락’이 그 해답인 셈이다. 인터넷이 가세하고 디지털 미디어가 폭발하면서, 모든 사진과 노래, 영화, 텔레비전 등이 단일한 ‘디지털 패키지’로 통합됨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컴퓨터 기업들이, 오랫동안 문서 파일을 쉽고 빠르게 옮기는 수준 이상으로는 아이디어를 확장하지 못했다”라고 기술 분석가 로드 베어는 말한다. “음악 파일이나 영상 파일을 옮기고 퍼뜨리는 게 유달리 더 어렵거나 복잡한 것도 아니다. 이제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할 수 있다는 것을 컴퓨터 회사들은 확실히 이해한 것이다.” 느슨하게 정의된 엔터테인먼트의 우주는, 음악을 비롯한 소리 파일로부터 사진 앨범, 애니메이션, 텔레비전 광고, 리얼리티 쇼의 에피소드 등 거의 모든 부문을 망라한다.

업체 사이의 경계는 더 흐릿해진다. 프린터 시장의 최강자인 휴렛패커드(HP)는 이미 디지털 카메라와 사진 인쇄 시장에 뛰어들어 저돌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몇년 전 엑스박스(Xbox)를 내놓으며 게임기 시장에 뛰어든 마이크로소프트는 텔레비전을 통해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웹TV를 ‘다시’ 선보였다. 컴퓨터 업계의 일인자 델은 일반 PC말고도 MP3 플레이어와 평면형 텔레비전까지 온라인으로 팔고 있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올해 델과 휴렛패커드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미디어 센터’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였다. 여느 컴퓨터와 다름없이 기능하지만, 특히 디지털 음악과 사진을 조작하기 쉽게 디자인한 제품들이다. 이제 막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좀더 진화한 미디어센터는 여기에 텔레비전 기능을 얹었다. 모양까지 VCR와 비슷하다. 리모컨으로 조작할 수 있고, 텔레비전의 특정 프로그램을 녹화할 수 있는가 하면, 무선 인터넷으로 영상을 내려받아 볼 수 있다. MP3는 기본이다.

델의 베난시오 피거로아 대변인은 그것이 대세라며 “PC는 이제 생산성 향상의 수단으로부터 오락과 여가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라고 단언한다. 그와 함께 컴퓨터는 점점 더 이음매가 없이 일상에 밀착해 가고 있다. 현대 생활의 근간이 되어버린 오락과 여가, 개개인의 취향에 맞춘 주문형 문화에서 컴퓨터가 필수 매개체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혁명의 본질은 기술 혁명이 아니라 미디어 혁명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라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미래연구소의 폴 사포 소장은 논평한다. “그것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매스 미디어로부터 개인 미디어로의 이동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흐름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디지털 기술은 너무나 흡인력이 강해서 ‘모든 것’을 유희의 도구로 만들어버릴 위험성이 크다. 로마 제국의 멸망에서 읽을 수 있듯이, 위대한 문명의 몰락은 모든 것을 유희화한 데서 비롯했다”라고 사포는 경고한다.

그는 텔레비전이 매스 미디어 시대의 상징이었음을 상기시킨다. “텔레비전은 세계를 거실로 끌어왔고, 사람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화면에 눈길을 고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에 견주어 개인화 미디어는 그 이용자로부터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컴퓨터로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을 녹화한 다음 짜증 나는 광고를 다 지우고 본다든가, 좋아하는 음악만을 내려받아 자기만의 앨범을 만드는 식이다.

디지털 기술이 각각의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아직도 디지털 문법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틀대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는 더욱 큰 치명타이기도 하다. “이제 디지털 기술은 통제 가능한 지점을 넘어섰다”라고 시장 조사 기관인 가트너 그룹의 마이크 맥과이어는 말한다. “지금 컴퓨터 회사들이 하는 일은 소비자가 완전한 통제권을 갖게 된 현상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뿐이다.”

젊은층에서는 ‘쿨’한 것의 상징

디지털 기술이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집중되면서 애플은 그 흐름의 선두 주자로 각광받고 있다. 거의 모든 잡지·신문·방송의 인기 선물 목록에 예외 없이 들어가는 아이파드와 아이파드 미니는 젊은층에서 ‘쿨’한 것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시장 분석가들은 크리스마스가 낀 4/4분기에만 아이파드가 3백50만 대 팔릴 것으로 전망한다.

아이파드의 인기는 엉뚱한 방향으로도 불거졌다. 조지 매스터스라는 한 교사는 아이파드에 반한 나머지 60초짜리 자작 광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 몇 주 사이에 조회 수 4만 회를 넘길 만큼 네티즌들의 관심도 컸다. 광고 전문가인 스티브 루벨은 “특정 제품을 자발적으로 추천하고 광고하는 이른바 ‘선교적 소비자’들이 앞으로 마케팅에서 더욱 중요한 노릇을 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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