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하늘을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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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 가면 궁중유물전시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역대 임금의 옥새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죠. 한때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기도 했구요. 해방 직후에는 한미공동위원회 사무실로도 쓰였던 유서깊은 곳입니다. 이 궁중유물전시관에 있는 유일한 국보가 바로 국보 228호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입니다. 얼핏 보면 비석처럼 보입니다. 비석 같은 돌에 천문도를 새겼기 때문입니다. 이름도 재미있습니다. 무슨 기차 이름 같기도 하고.
'天象'은 해와 달, 별 등 하늘에서 일어나는 천문 현상을 말합니다.'列'은 차례대로 늘어놓았다라는 뜻이고, '次'는 적도 근방의 별자리들을 12개 구역으로 나눈 것을 말합니다. '分野'는 '次'에 해당하는 땅위의 지역을 의미합니다.결국 '次와 分野에 따라 하늘의 모습을 새긴 그림'이라는 뜻이되죠.
천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낯설기만 한 이 국보는 사실 우리나라 과학사상 기념비적인 유물입니다. 새 왕조가 하늘의 뜻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권위의 상징으로 만들어졌다는 정치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궁중유물 전시관 설명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1395년(태조 4년) 국가와 왕권을 상징하기 위해 오석으로 만든 천문이다. 중국 남송 순우천문도(1241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권근 유방택이 지은 글이 새겨져 있다. 고구려 때도 천문도가 있었다고 적혀 있다. 1687년(숙종 13년)에 이 천문도를 다시 만든 것이 보물 837호이다(참고로 보물 837호는 세종대왕기념관에 있는 '천상분야열차지도'로 숙종 때 태조 때 만들어진 천상분야열차지도를 원본으로 해 대리석에 새긴 천문도입니다. 태조 때 것과 크게 다른 점은 없으나 배열이 조금 다르다) 가로 122.8cm, 세로 200.9cm, 두께 11.8cm이다.'
1464개의 별이 새겨져 있는 이 천문도를 연구한 서울대 박창범 교수에 따르면 천문도 중앙부인 북극 주변은 조선시대초, 그 바깥에 있는 대부분 별들은 서기 1세기경인 고구려 시대 초로 밝혀졌다. 박교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찍이 이만큼 이른 시기의 온 하늘의 별자리를 한 데 모아 그린 별자리그림은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이 그림에 새겨진 별들은 실제 별의 밝기에 맞춰 크기도 각각 다르게 표현되어 있을 정도로 지금 과학적인 기기를 사용해 관측을 해도 정확함이입증되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천문 관측 수준이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천문도에 새겨져 있는 권근의 설명문에 따르면 '천상분야열차지도'의'엄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평양에 있었는데 전란으로 대동강물에 빠졌다. 조선이 개국한 뒤 태조에게 고구려 천문도 그림을 바치는 사람이 있어 서운관에 명을 내려 다시 돌에 새기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통일이 된다면 혹시 이 천문도를 대동강 바닥에 건져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이 천문도는 1985년8월, 국가가 과학문화재를 적극 보호하고 홍보하기 위해 자격루, 혼천의와 함께 국보로 지정했습니다. 얼마 전에 발견된 일본 기라토 고분 천문도가 조사 결과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은 위치에서 관측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문화재 간의 관계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일본 천문도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참고로 만들어졌다는 해석이 다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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