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프로젝트’ 성공할까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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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전 동관 근대미술관으로 활용 추진…문화재 관련단체는 반발

 
이중섭이 1953년에 그린 유채화 <부부>. 그림 속의 봉황 두 마리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가까이 가려 하지만 도무지 힘겨워 보인다. 전쟁통에 일본으로 돌아간 일본인 부인을 그리워하며 그린 이중섭의 대표작이다. 이북 출신 출향자인 그가 남북 분단을 아파하며 그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지난 4월27일 낮,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 직원들이 수장고에 깊숙이 보관되어 있던 <부부>를 조심스럽게 꺼내왔다. 4년 만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중섭·박수근·고희동·장욱진 등 대표적인 국내 근대 작가들의 작품을 5월 한 달간 특별 전시한다. <부부>가 전시를 위해 수장고에서 외출한 것은 지난 8년간 두 차례뿐. 2001년 2월의 <근대명품전>은 덕수궁 분관에서 열렸으니까, 과천 본관에 이 그림이 전시되는 것은 1997년 12월의 <한국근대미술전> 이후 처음이다.

 
고희동의 <자화상>(1915), 안중식의 <산수>(1912), 이종우의 <인형 있는 정물>(1927), 김기창의 <가을>(1934),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1935), 오지호의 <남향집>(1939), 이상범의 <아침>(1954), 권진규의 <지원의 얼굴>(1967),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1960)···. 한국의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들을 포함한 소장품 1백19점의 컬러 도판을 엮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선집>을 최근 출판했다. 하지만 이들 근대회화 대부분은 상설 전시장이 아닌 수장고에 있다. 회화만이 아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대표하던 조각가 김복진의 작품은 한 점을 제외하고 모든 조각이 한국전쟁 때 불탔다. 그의 유일한 작품인 <미륵불>의 소장자는 국립현대미술관. 이 작품도 수장고에 주로 있다.

이들이 수장고 신세를 면치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근대 미술’로 분류되기 때문. 근대 미술이란 주로 19세기 후반부터 1960년대 이전까지 제작된 미술을 일컫는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말 그대로 ‘현대 미술’관이다. 이곳에는 국내외 미술품이 모두 5천4백여 점 있는데, 소장품의 70% 이상이 현대 미술로 채워져 있다. 상설 전시관에도 1960년대 이후 제작된 현대 추상 미술과 팝아트 경향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반면 한국과 달리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근대 미술 중심의 국립미술관 체계를 갖추고 있다. 뉴욕근대미술관(MoMA)을 시작으로 런던의 테이트갤러리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모두 근대 미술관이다. 일본은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을 축으로 국립서양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이 독립 운영되고 있다.

국내의 국립미술관 체계가 철저하게 현대 미술 중심으로 짜인 이유는 근대 미술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좋은 작품을 구입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 주로 국내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1천5백여 점 정도의 근대 미술을 소장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덕수궁 석조전 서관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덕수궁미술관)을 설치한 1998년 이후부터 구입한 것들이다. 하지만 덕수궁미술관은 전시 공간이 3백48평에 불과해 상설 전시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이곳에는 근대 미술 중심의 기획전만 열리고 있다.

“우리도 국립 근대 미술관을 만들자”

“우리도 국립근대미술관을 만들자.” 몇 년 전부터 미술계에서 이런 볼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요구가 올해 들어 한 단계 톤이 높아졌다. 구체적인 목표물이 등장했기 때문. 덕수궁 석조전 동관(본관)을 사용하던 궁중유물전시관이 경북궁 내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로 이전하면서 석조전 동관이 비게 된 것이다. 석조전 동관은 총면적 1천2백여 평, 전시 공간은 6백40평 정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미술관을 이곳까지 넓혀 동관은 상설 전시장으로, 서관은 지금처럼 기획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원로 미술 평론가 이경성씨는 “석조전 자체가 대한제국 시절 완성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근대 미술 작품이면서 미술관으로 쓰였다”라며 석조전 동서관을 합쳐 국립근대미술관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준모 덕수궁미술관장은 “세계적으로 볼 때 근대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닌 인문학 연구의 인프라 구실을 하고 있다. 우리도 상설 전시실과 자료실, 작품 수복실을 갖춘 정식 근대 미술관이 들어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석조전 동관은 1900년에 착공해 1909년에 완공된 국내 유일의 유럽식 궁전 건축물이다. 처음에 고종 황제의 집무실과 침실로 사용되었으나, 조선총독부는 1933년부터 이곳을 ‘이왕가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진열품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일제는 1936년 서관(현재의 덕수궁미술관)을 지어 확장했다. 해방 정국 때는 여기서 미·소 공동위원회가 열렸다. 과천에 미술관을 짓기 전인 1973년부터 1986년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3월24일 문화정책국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궁중유물전시관이 이전한 뒤 석조전 동관을 근대 미술관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회의 결과는 이창동 장관 시절 청와대에 보고된 <새로운 한국의 예술정책-예술의 힘>에도 실려 있다. 회의에는 문화부 도서관박물관과장과 문화재청 동산문화재과장·궁중유물전시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참석했다. 

하지만 올해 1월1일 막상 궁중유물전시관이 이전을 위해 문을 닫은 뒤부터 문제가 생겼다. 문화재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것.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문화재는 원형대로 보존되어야 하며, 덕수궁 석조전은 대한제국 시기의 중요한 역사 사실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대한제국 역사자료관 같은 목적으로 활용되어야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석조전 동관의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문화재청의 움직임도 소극적이다.

이 때문에 미술계에는 미술인 출신으로 미술계의 숙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견해를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유청장이 문화부 회의에서 결정한 합의를 뒤집으려 하면 가만 있지 않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래저래 미술계의  ‘덕수궁 프로젝트’가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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