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핵, 나쁜 핵 따로 없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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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반핵국장 숀 버니 인터뷰/“원자로도 테러 표적 될 수 있어”

 
북한 핵이 문제인가. 미국 핵이 더 문제인가. 미국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 회의에서, 핵확산 금지 방법론을 둘러싸고 핵 보유국과 핵비보유국 사이 공방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핵비보유국의 핵 프로그램이 또 한번 도마에 올랐다.

미국은 차제에 북한·이란 등 일부 핵비보유국이 추진하는 평화적 목적의 핵 프로그램까지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국가들이 겉으로는 ‘핵의 평화적 이용’을 내세워 실제로는 핵무기를 개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 환경운동 단체 그린피스도 미국의 주장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왜 그런가. 때마침 한국을 방문한 그린피스의 반핵 전문가를 만나 그 이유를 들었다.

주인공은 그린피스 국제본부의 반핵국장 숀 버니다. 지난 15년간 그린피스에서 반핵 운동의 중심 활동가로 일해온 그는, 지난 4월 말 환경운동연합과 국회21세기동북아포럼 등이 공동 주최한 ‘핵 확산 국제 세미나’에 참석했다.

계절은 아직 봄인데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 탓에 날씨는 한여름 무더위 뺨치게 더웠던 5월3일 오후, 환경운동연합 뜰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특히 플루토늄 재처리 문제로 여러 차례 한국을 드나들어 환경운동가들에게는 ‘오랜 친구’로 통한다.

최근 뉴욕에서 핵확산금지조약 평가 회의가 열리고 있다. 그 사이 핵 확산을 둘러싼 국제 환경에 큰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의 핵 문제와, 21세기 핵 문제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핵 기술이나 핵 연료 확산은 이미 수십 년 된 문제여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핵 확산 문제는 1990년대 냉전 질서 붕괴를 기준으로 본질적으로 달라졌다. 우선 냉전 붕괴 이전에는 미국과 옛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에 의해 핵 통제가 가능했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환경이 변했다.

특히 동아시아가 그렇다. 정치·군사적으로 안보 위기가 증대했고, 불확실성이 증가했다. 좀더 극적인 사태는 경제적·군사적으로 중국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기술 측면에서도 20세기와 21세기는 다르다. 1957년 국제원자력기구가 출범한 이래, 핵 확산의 기본 기조는 핵무기 개발은 핵 보유국(핵 클럽)이 통제하는 대신, 핵의 평화적 이용, 즉 핵 에너지 개발을 위한 핵 기술 개발은 촉진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동안 핵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같은 구도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평화적인 목적의 핵 기술이라도 얼마든지 핵무기 기술로 전용할 수 있다.

핵 문제를 토론하는 마당이니 아무래도 북핵 문제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북핵 문제는 이란 핵 프로그램과 더불어 세계적인 핵 확산 위험의 2대 난제로 거론되고 있다. 북한 핵의 본질은 무엇이며, 해결책은 무엇인가?

북한 핵이 자꾸 문제가 되는 근본 이유는 미국이 개입해 있다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핵은 안보 문제이다. 그런데 북한이 포함된 동아시아에는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공동 안보 기구가 없으며, 신뢰 구축 망도 없다. 한마디로 동아시아 지역에는 안보 인프라가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 핵은 항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 핵 문제는 단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미국과 북한의 직접 대화다. 둘째, 현재 교착 상태에 빠진 6자 회담의 틀도 중요하다. 이 외에 한·중, 한·일, 중·일 대화도 중요하다. 미국은 북한 핵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고 해서 야단이지만, 사실 과거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라도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옛 소련 또는 중국의 핵무기였다. 그런 위협이 어느 정도 해소된 지금, 북한 핵 문제가 크게 불거지는 데에는 미국 군산복합체에 의한 ‘위협을 창출할 필요성’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의 햇볕정책은 위협을 줄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했다. 미국도 그렇게 가야 한다.

미국은 상호 이해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위협을 줄여가, 궁극적으로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서 손을 떼야 한다(disengagement). 상호 이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핵무기의 선제 사용 포기(no first use of nuclear weapons)를 약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의 경우는, 과거의 전쟁 경험 탓에 정부든 민간이든 언론이든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실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생존과 관련해서는 북한 핵보다 한국의 핵발전소 자체가 지극히 더 위험하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려면 핵무기가 따로 필요 없이 미사일 한방이면 족하다. 고리·울진·영광 원자력 발전소는 미사일 공격만으로도 매우 가공할 목표물이 된다.

미국은 부시 정부 들어서서 북한 등 이른바 ‘불량 국가’에 대해, 비확산(nonproliferation) 정책을 강화한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을 표방하고 있다.

불행한 얘기이지만, 미국의 반확산 정책은 이미 클린턴 시절에 나온 것이다. 미국은, 특히 부시 정부는 핵 기술·핵 물질의 전세계 확산은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확산을 막는 유일한 길은 핵 개발국을 유럽연합·일본과 같은 좋은 나라(good guy)와 이란·북한과 같은 나쁜 나라(bad guy)로 나누어, 나쁜 나라의 핵은 강제로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같은 전략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효과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좋은 핵’과 ‘나쁜 핵’을 구분하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하다.

 
구체적인 실례를 든다면?

대표적으로 일본을 들 수 있다. 일본은 현재 국내에만 플루토늄을 5,000kg이나 보유하고 있다. 로카쇼무라의 대규모 재처리 시설이 가동되면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2020년까지 5만~15만5천kg으로 늘어난다, 미국의 현재 플루토늄 보유량은 9만kg이다. 이 플루토늄은 모두 핵탄두 제조에 전용될 수 있다.

문제는 일본이 핵 옵션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반 방위청 장관 재직 시절 방위 백서를 통해서 핵물질과 (핵탄두) 발사체(즉 미사일) 개발을 언급한 이래, 일본은 ‘평화적 이용’을 내세워 핵 물질 생산과 발사체 개발에 주력해왔다. 

발사체의 경우는 로켓 개발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어 왔으며, 여기에는 군사적 옵션이 깔려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이처럼 군사적 옵션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일본의 핵 물질 생산 및 로켓 개발을 지원해 왔다는 것이다. 부시 정부도 이를 용인하겠다는 신호를 여러 번 보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실험은 이같은 일본의 의향을 현실화하는 데 좋은 구실이다.

북한 핵은 미국과 일본에 이용당하고 있다. 비록 북한은 자구책이라는 이름으로 핵에 매달리고 있지만, 북한 핵 개발은 또 다른 비극을 초래할 것이다. 일본은 북한 핵과 납치 문제를 내세워, 자국 국민에게 자기네가 위협받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또 그 위협을 구실로 재무장을 정당화하면서 선제 공격 논리를 펴고 있다. 사실 미국과 일본의 주된 관심사는 중국이다. 북한은 대용물일 뿐이다.

한국은 북한 핵이라는 문제말고도,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서도 난제에 직면해 있다. 현재 전체 전력 생산의 40% 이상을 핵 발전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로 핵은 한국에 현실적으로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중국 인도 등이 에너지 대국으로 나서면서, 핵발전 연료값도 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는가?

해답은 명백하다. 수요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 수요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며, 공공 교통 수단을 혁신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여기서 핵 산업은 문제가 많다. 현재 추세로 보면 핵 발전 수요는 늘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핵 발전 연료는 한정된 자원이다. 핵산업 분야에서는 기술 발전을 통해 이같은 취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이 추세로 가면 24세기쯤 큰 위기가 닥칠 것이다. 게다가 핵 연료는 그 자체가 핵무기 물질이다. 핵 발전 사고는 단 한번으로도 큰 재앙을 초래한다. 환경 문제도 크다.

현재 뉴욕에서 핵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번 NPT 평가 회의의 쟁점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의 핵 정책으로서, 이는 다시 핵 군축 문제와 미국의 신형 핵무기 개발 문제로 나뉜다. 또 하나는 플루토늄·우라늄 농축 등 핵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해 일부 국가에 기술 제공을 막자는 것이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이미 2003년 일부 국가에 새 핵 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며 기술 제공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보편적이지 못하며,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당장 일본과 한국을 보자. 일본은 핵 기술에 관한 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한국은 제한되어 있다. 여기서 안보 문제가 작용하면, 왜 일본은 되고 한국은 안되나 하는 모순이 빚어진다.

이제 핵 문제에 관한 당신의 생각을 정리하자. 당신은 핵무기뿐만 아니라 핵의 평화적 이용도 안전을 담보해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핵은 기술과 물질 그 자체가 위험이 크다. 국제원자력기구 엘 바라데이 사무총장은 지난 3월 ‘핵무기 사용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핵물질 주기’를 주장한 바 있지만, 이는 당초부터 불가능한 개념이다. 꼭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핵은 그 자체로 안보·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내 생각을 말해보겠다. 다시 일본의 로카쇼무라 재처리 시설로 돌아가 보자. 이 재처리 시설은, 분말 형태의 핵 폐기물 1t을 재처리해 약 100kg의 플루토늄을 얻는다. 나머지 900kg은 사라진다. 이 사라진 핵 폐기물이 어디로 갈 것인지 생각해보라. 모두 하늘로 올라가거나 땅으로 스며들거나, 물체에 달라붙어 환경을 오염시킨다.

게다가 오늘날은 테러의 시대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원자로가 테러 집단의 좋은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핵은 꼭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없어져야 할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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