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빙하기 이후와 닮은꼴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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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평균 기온 가파르게 상승…폭염 등 기상이변, 건강에도 큰 위협
 
히포크라테스는 일찍이 질병과 기후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의사는 환자가 사는 지역의 기후에 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미 오래 전에 기상이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이다.
 
봄이 사라졌다. 5월 초순인데도 ‘덥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온난한 겨울에 이어 곧바로 여름이 등장하는 패턴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기상 이변의 원인으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바로 지구 온난화이다. 녹지를 파괴하면서 산업화에 열을 올리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나 메탄가스 같은 온실가스가 지구의 체온을 기존의 15℃보다 높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에 관한 우려는 환경론자들의 가설에 불과하다며 무시당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제 사회의 분위기는 기후변화협약을 만들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나라를 제재할 정도로, 온실 가스에 대해 결연해졌다. 그렇다면 장기간 기상(weather)의 평균값을 의미하는 기후(climate)는 그동안 어떻게 변화했을까? 

우선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했다. 특히 폭염이 출현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지구의 평균 기온은 1850년에 측정이 시작된 이래 0.6℃ 정도 올랐고, 지구 전체로 보았을 때 1990년대, 특히 1998년이 가장 더운 해로 조사되었다. 21세기에는 1.8~5.8℃ 기온이 올라갈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 정도면 마지막 빙하기 이후에 일어난 기온 변화와 맞먹는다. 

또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지구의 표면이 모두 같은 속도로 더워지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온대 지방이 열대 지방보다 더 빨리 더워진다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 기상청이 이번 달에 발표한 자료를 보아도 과거 30년간 한반도 기온이 1.2℃ 정도 상승했고, 1980년대 후반부터 기온 상승 추세가 두드러진다. 이미 우리 나라는 온대 기후에서 아열대 기후로 변화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폭염과 같은 기상 이변은 그 무엇보다 위력적인 살상 무기이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를 덮친 기록적인 무더위는 5백14명의 사망자를 만들었고, 2003년 프랑스와 유럽에 들이닥친 폭염은 1만5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뿐만 아니다. 기온이 상승하면 할수록 모기가 기승을 부려, 말라리아나 뎅기열 같은 전염병도 더욱 기승을 부린다.     

 둘째, 남극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평균 10~20cm 높아졌다. 이집트의 카이로처럼 삼각주에 형성된 도시나 해안가 저지대가 침수해 인명과 재산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맨해튼 풍경이 충격적이었던 영화 <투모로우>는, 지구 온난화로 녹은 남극 빙하가 다시 기온을 떨어뜨리고, 바다로 흘러들어간 빙하가 바닷물의 염분 농도를 바꾸어 해류가 변하면서 다시 빙하기로 되돌아가는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로 기록될 날이 멀지 않은 것으로 전망한다.

셋째, 홍수와 가뭄이 잦아졌다. 중위도 이상의 국가에서는 강우량이 증가했고, 중앙아메리카와 유럽, 남아시아, 중국에는 홍수 발생이 잦아졌다. 수인성 전염병이 퍼지고 농작물 생산에도 악영향을 끼쳐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남부와 동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일부 지역, 중앙아시아는 가뭄 때문에 기아와 영양 실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넷째, 1970년대 중반 이후 부쩍 늘어난 엘니뇨 현상도 지구 온난화가 일으킨 기후 변화와 관련해 많이 지적된다. 페루와 에콰도르의 홍수, 남부아프리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가뭄, 인도 펀잡 지방의 말라리아와 방글라데시의 콜레라가 엘니뇨의 여파로 생긴 자연 재해로 꼽힌다. 

 기후 변화는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대책도 지구적인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1988년에 설립된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회(IPCC)’와 1997년의 ‘교토의정서’등이 국제적인 고민의 결과물이다. 

IPCC는 2001년에 내놓은 3차 보고서에서 ‘지난 50년간 관찰된 온난화가 인간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새롭고도 더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기록했다. 온난화가 인간 활동에 끼친 영향이 대개 부정적인 것들이고, 특히 건강에 심각하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넓은 지역의 전반적인 보건 문제에서 좀더 범위를 좁혀 개인의 건강 차원을 살펴보아도 기상과 건강의 관계는 뚜렷이 드러난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기상 요소로는 기온·습도·기압을 꼽을 수 있다. 고온에 노출되면 신체는 36.5~38℃ 사이의 정상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피부 혈관을 확장하고 혈액 순환을 더 원활히 하며 피부 온도를 높여 복사 현상으로 체열을 방출한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땀을 내서 체온을 낮추지만 이런 자체 체온 조절 메커니즘으로 열기를 감당하지 못할 때 열탈진이나 열사병이 생긴다. 열사병은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응급 질환이다. 더운 날에는 격한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시원한 물을 마시거나 그늘을 찾아나서는 등의 예방이 필수이다.   

 
 심장 질환이나 뇌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특히 기온 변화에 주의해야 한다. 날씨가 더워지면 체열을 방출하기 위해 혈액 순환을 빨리 하면서 심박출량도 증가하고 맥박도 빨라져서 심장에 무리가 간다.

반대로 추워지면 피가 진해지고 혈액 순환이 느려져 고혈압·뇌졸중이 올 수 있다. 또한 여름에는 오존과 같은 광화학 스모그 물질이 많이 생성되어 천식을 비롯한 호흡기 질환이 심해진다. 

습도가 높아지면 곰팡이가 쉽게 증식하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 기압은 우울증이나 정서 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인 동시에 급격한 대기 순환을 일으켜 지표면에 대기 오염 물질이나 꽃가루를 확산하는 기상 요소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이 기상의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주거 환경, 나이, 공중 보건 수준, 의료 시설의 접근성 등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진다. 기상 변화에 따른 사망률은 나이·성별·인종에 따라 다르다고 조사되었지만, 대체로 기상의 피해를 보기 쉬운 그룹은 노약자와 어린이들이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노인은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심혈관계 기능도 저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체의 항상성을 방해하는 의약품을 복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밖에 고혈압 약이나 이뇨제를 복용하는 사람, 고온 현상이 지속되는 기간에 탈수 증세가 있거나 설사, 감염성 질환에 걸린 사람, 정신 질환이나 비만, 당뇨병, 고혈압 환자인 경우 더위의 피해를 보기 쉽다.  

온실 가스 배출을 규제하고 청정 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등의 대책으로 환경 오염을 줄이고 더 이상의 온난화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기상 이변을 피할 수 없다면  피해가 덜 나도록 대비하는 것이 상책이다. 세계보건기구·세계기상기구·유엔환경계획 같은 국제기구와 각국 기상 전문가가 참여해 만든 ‘고온-건강 조기경고 시스템(Heat/Health Watch Warning System)’이 좋은 예다. 

이미 미국의 10여 주와 캐나다·유럽·중국 등에서 이러한 시스템을 가동해 톡톡한 효과를 보고 있다. 우리 나라도 기상 변화에 따른 건강 예보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여 조만간 대국민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제 ‘기상정보=건강정보’는 부인할 수 없는 공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100년 만의 무더위가 찾아온다는 소문도 들린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들이 폭염 발생 시 대피할 수 있는 피난 시설을 미리 마련해 두고, 환자 급증에 대비해 의료 시설을 점검해야 한다. 또 국민들에게 기상 이변을 신속히 알릴 수 있는 홍보 시스템을 미리 구축해 놓아야 한다. 기상 이변에 대처하는 능력은 이제 그 나라의 국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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