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핵 연구실 로스앨러모스 팔린다
  • 정문호 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05.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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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텔·록히드 마틴 등 ‘눈독’…대학들도 각축

 
미국 핵무기 개발과 연구의 산파역을 해온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 미국 중서부 뉴 멕시코 주에 있는 이 연구소는 핵 과학자를 비롯한 직원 1만2천명을 두고, 연간 예산이 22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최대의 핵 복합 연구단지다. 지난 1943년 캘리포니아 대학의 물리학자였던 로버트 오펜하이머 교수가 일단의 핵과학자와 함께 핵무기 개발을 위해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한 지 2년만인 1945년 7월16일, 마침내 세계 최초의 원자탄을 만들어낸 곳이 바로 이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출범 당시부터 소유주는 국가였지만 운영이나 연구 등 관리 업무는 민간 기관인 캘리포니아 대학이 도맡아왔다.

그런데 지난 62년간 미국은 물론 세계 최고의 핵무기 연구소로 명성을 굳혀온 로스 알라모스의 관리권이 자칫하면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갈 상황에 처했다. 이 연구소에서 핵 기밀이 누출되고 수백만 달러의 연구소 공금이 부정으로 남용되는 등 잇따라 ‘관리 사고’가 발생하자, 지난 2003년 4월 에너지부가 이 연구소에 대한 관리권을 공개입찰에 붙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기에 지난 60년 이상 철석같이 믿고 맡겨온 캘리포니아 대학을 내치려 하는가.

로스 알라모스의 관리 사고가 맨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1997년 중국계 핵과학자인 리웬호 박사가 핵 기밀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직후였다. 나중에 그의 혐의는 대부분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이를 계기로 연구소 내 보안 관리의 허술함이 큰 문제가 되었다.

실제로 핵무기 기밀을 다루는 이 연구소에서는 비밀 정보가 전자우편을 통해 외부로 유출되는가 하면, 핵 기밀 자료가 담긴 전자 저장 장치가 분실되었다는 보고가 접수돼 연구활동이 일시 중단된 적도 있다. 그 뿐 아니다. 지난 2003년 미국 에너지부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이 연구소는 계약서에도 나와 있지 않은 직원들의 출장비와 식사비 명목으로 수백만 달러를 허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에너지부가 이같은 비리를 적발하기 바로 전 해에도 사고가 있었다. 캘리포니아 대학측이 연구소 직원들의 비리를 공개한 글렌 왈프, 스티브 도란 씨 등 2명의 조사관에 대해 보복성 해고 조처를 단행해 물의를 일으켰던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관리 부실에 대한 전면 조사를 촉발한 데는 이들의 비리 공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나중에 잘못을 인정한 대학은 왈프와, 도란 두 사람을 복직시키기도 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서 미국 연방 의회도 발끈했다. 민주당의 바트 스투파크 의원은 최근 하원 청문회에서 “이제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에 대한 관리권 주체를 바꾸지 않고는 납세자들의 돈을 낭비하는 것은 물론이요, 나라의 안보까지 위태롭게 할 지경에 이르렀다”라며 거듭 관리권 교체를 요구했다.

2년 전부터 시작된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에 대한 관리권 공개 입찰은 현재 두 곳이 최종 경합 상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19일은 공개 입찰 마감일이었다. 이 때 최종 경합자는 지난 60년 이상 지켜온 이 연구소에 대한 관리권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며 기세가 등등한 캘리포니아 대학과 텍사스 주지사 출신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뒷배’를 염두에 두고 도전장을 내민 텍사스 대학이다.

두 대학 모두 쟁쟁한 군수 기업은 물론, 다른 협력 대학과 손잡고 입찰에 나선 상태다. 특히 최종 낙찰된 대학은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종전에 비해 최고 9배나 많은 연간 7천9백만 달러의 관리비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어느 쪽도 질 수 없는 게임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8월 중 핵통제위원회 등 관련 심사 기관과 합동으로 집중적인 심사를 거친 뒤, 늦어도 연말까지 낙찰자를 발표할 계획이다. 낙찰자는 최초 7년간 관리권을 갖게 되며 계약이 만료된 뒤에도 에너지부의 승인을 얻으면 13년간 연장할 수 있다.

최종 낙찰 결정권은 부시 대통령 손에?

우선 캘리포니아 대학부터 살펴보자. 이 대학은 전세계 140개국에 2만2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종합 엔지니어링 회사인 벡텔 사와 손잡았다. 벡텔은 도로와 철도, 공항, 핵발전소, 군수 공장 건설에서 정보통신, 유전 개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업망을 가진 초대형 회사로 지난해 수주 총액이 1백56억 달러에 달했다.

현재 입찰팀을 이끌고 있는 책임자는 현직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 소장인 마이클 아나스타시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과 벡텔 그룹과의 연대는 환상의 콤비”라면서 경영 관리에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벡텔을 끌어들인 데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에 맞서는 텍사스 대학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텍사스 대학은 미국 유수의 군수 업체인 록히드 마틴과 손잡았다. 록히드 마틴 사는  전세계에 무려 13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초대형 군수 회사다. 지난해 전투기와 미사일을 포함한 각종 무기 시스템을 판매한 총액이 3백50억 달러에 달했다. 록히드 마틴은 로스 알라모스처럼 국립 연구소이면서, 지난 1993년 이후 핵무기 연구 개발에 종사하는 산디아 국립연구소 관리권을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이번 입찰에서 승리할 경우 록히드 마틴은 핵 무기 개발의 최강자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록히드 마틴 사의 입찰전을 주도하고 있는 폴 로빈슨 전 산디아 국립연구소 소장은 “우리가 에너지부에 제출한 심사 자료만 해도 사과 상자로 30~40 개는 족히 될 것이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록히드 마틴은 주 협력 대학인 텍사스 대학 말고도 존스 홉킨스 대학과 조지아 공과대학을 포함해 30개 대학과 연대를 맺은 상태이며 현재 MIT 대학과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 대해서도 참가를 설득 중이다.
 
그렇다면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캘리포니아 대학과 이에 도전하는 텍사스 대학 중 어느 쪽이 최종 승리자가 될까. 독립적인 핵감시 기구인 로스 알라모스 연구 그룹의 그레그 멜로 소장은 “이번 입찰에 세간이 주목하는 까닭은 엄청난 관리 수익과 정치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며 오랜 관리 경험과 평판을 쌓은 캘리포니아 대학이 적격이라고 보고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이번 최종 낙찰 결정이 다소 정치적으로 흐를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 우선 현직인 부시 대통령의 연고지가 텍사스주인데다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 등 국립연구소와 관련된 상임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공화당의 조우 바튼 의원 또한 텍사스 주 출신이라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만일 이런 요인 때문에 낙찰이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면 텍사스 대학이 승리자가 될 수밖에 없다. 마크 유도프 텍사스 대학 총장이 기자 회견을 통해 “최종 낙찰을 자신하지 않았다면 이번 입찰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사실도 주목된다.

 관련 전문가들은 어느 쪽으로 낙찰되든 내년부터는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의 연구 행위가 종전에 비해 위축될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순수 학구 기관인 캘리포니아 대학이 도맡으면서 연구원들에게 100% 재량을 부여했지만, 앞으로는 주주들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록히드 마틴이나 벡텔이 연구자 입장보다는 기업의 이해에 치우쳐 업무를 처리할까 염려해서다.

그럴 경우, 핵무기는 또 다른 성격의 문제를 제기한다. 핵무기는 수지타산이 맞는 장사가 될까. 핵무기 관리권이 민간 기업으로 넘어갈 경우, 국가 통제권은 과연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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