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하게 드러낸 성장통의 그늘
  • 고영직(문학 평론가) ()
  • 승인 2005.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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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은 소설집 <프레시 피시맨>, 경쾌한 문체에 청소년의 절망 녹여

 
1974년생 작가 김종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폐의 기억을 부여안고 살아간다. 결락된 가족사의 체험을 공유하고 있는 청년 화자들은 유폐된 공간에서 성장통을 앓아야 했던 소년 시절의 꿈과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작가는 “그때, 우리는 나무 궤짝에 담겨 있었다”라는 진술로 시작되는 <프레시 피시맨>이라는 작품에서 소년 화자들의 좌절된 꿈과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날것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작중 화자인 나와 불치병을 앓는 고교 동창은 ‘나무 궤짝’과 다를 바 없는 세상에서 뭔가 의미 있는 존재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 자들이다. 고작해야 ‘흔하디흔한 생선들’이 되는 길밖에 없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늙은 소년’ 특유의 냉소를 일찍 깨우쳤다고 해야 할까. 작가는 이러한 소년들의 냉소와 절망을 액자 소설 형식을 통해 출구 없는 청춘들에 대한 암장(暗葬) 상황을 매우 매혹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리운 박중배…>에서는 ‘현실 진입’ 시도

꿈의 좌절과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다른 작품에도 편재되어 있다. <쎄일즈맨의 하루는> <스물다섯의 그래피티> <미확인비행물체> 같은 작품들이 거기에 해당한다. 작가는 이들 작품에서 짝패형 인물 배치를 통해 일종의 분열된 정체성의 균열 양상을 드러내는 미적 효과를 의도하고자 한다. 청년 김과 세일즈맨 정씨(<쎄일즈맨의 하루는>), 나와 현수(<스물다섯의 그래피티>), 나와 준희(<미확인비행물체>)들이란 결국 자기 바깥의 질서와 소통하지 못하는 단독자 특유의 자폐 증상을 파편적으로 드러내는 표상들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집 밖의 세상 어디에 이들을 위한 오롯한 ‘나만의 공간’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이들은 여전히 성장통을 앓는다고 보아야 할 터이다.

 
김종은 소설은 침통한 묘사를 하는 순간에도 발랄한 개성의 문체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분명 기성 세대와 차별성을 지닌다. 예컨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임영태의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1994년)의 ‘칙칙한 어둠’의 세계와는 그 색조가 다르다. <서울특별시>(2003년)라는 작품에서 선보인 날렵하고 경쾌한 문장은 이번 소설집의 <그리운 박중배 아저씨>와 <길> 같은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도시 청소년 특유의 위악과 과장의 제스처를 표현한 이들 작품은 문체뿐만 아니라 작가의 글쓰기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들 작품에 나오는 짝패 인물들은 영화 <펄프 픽션>과 베르베르의 소설에 열광하는가 하면, 국내 작가 장정일과 백민석의 소설을 자기 세대의 문장(紋章)으로 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종은은 문단의 윗세대에 속하는 김연수·박민규의 글쓰기와 맥락을 함께한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종은은 좌절된 꿈에서 깨어나 비루한 현실의 악몽의 세계로 이동하려는 듯하다. 경쾌한 우울의 문체로 어느 전동차 기관사의 일화를 감동적으로 묘사한 <그리운 박중배 아저씨>라는 작품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작가는 ‘글’이란 투정도 아니며 시비도 아닐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진술에서 김종은 문학이 꿈과 현실이 결합된 날렵한 문체로 문학적 리얼리티를 얻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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