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백작은 싫어요”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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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절반 이상이 부정교합…충치 잘 생기고 정신건강에도 유해

 
기자는 요즘 딸의 치아 때문에 고민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는 윗니와 아랫니가 딱 맞물려 있는 상태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고, 아이도 불편함을 호소하지 않아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의 치아 상태를 본 의사는 ‘부정교합(치아나 턱뼈의 위와 아래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은 상태)’이라며 교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래 턱이 앞으로 나오게 마련인데, 지금 상태에서 아래 턱이 더 나오면 부정교합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의사는 충고했다. 당장은 큰 불편이 없는 데도 적잖은 돈과 시간을 들여 딸아이의 치아를 교정해야 하는 것일까. 

기자처럼 초등학생 자녀의 치아 교정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부모가 한둘이 아니다. 초등학생 두 명 중 한 명 이상(63.1%)이 부정교합 상태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치주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지오치과가 최근 수원지역 초등학생 6백28명을 대상으로 구강검진을 실시한 결과다.

부정교합이 나타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신체의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턱뼈와 치열의 모양, 크기 등도 부모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물론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혀를 내밀거나 손을 빨면 앞니 사이에 공간이 생길 수 있고, 위턱과 아래턱의 이상 성장을 초래한다. 젖니가 너무 일찍 빠지거나, 치아를 가는 시기에 제대로 젖니를 뽑아 주지 않아 영구치가 나올 공간이 부족할 경우에도 덧니가 생긴다.

 
 
치의학계에는 부정교합이 백 명 중 한 명 꼴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으나, 식습관이 바뀌면서 증가 속도가 눈에 띄게 불어나고 있다. 연세치대 최광철 교수(교정과학교실)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가 부드러운 음식을 선호하면서 부정교합이 늘었다는 가설이 있다. 딱딱하고 질긴 음식을 먹던 과거에는 부정교합이 많지 않았는데 부드러운 음식에 익숙해지면서 얼굴이 갸름해지고 부정교합도 늘었다고 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부정교합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지오치과 이계복 원장은 “치아가 고르지 못하거나 제대로 맞물리지 못하면 칫솔질이 어려워 각종 구강 질환에 쉽게 걸린다. 또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못해 위장 장애가 잘 일어나고 턱 관절에도 문제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지오치과의 이번 조사에서도 치아가 부정교합일 때 충치가 더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정교합 초등학생의 경우 1인당 평균 충치 개수는 5.5개로 정상 학생의 충치 개수(3.4개)보다 1.6배 이상 많았다. 부정교합 학생 중에는 충치가 10개 이상인 학생도 14.6%(58명)에 달했다.

부정교합은 치과 질환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부정교합이 심한 아이는 친구들로부터 ‘드라큐라 백작’이나 ‘아수라백작’ 같은 별명으로 불리며 ‘왕따’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세계적인 교정학술지인 <미국교정학회지>에서도 ‘아이들을 괴롭히는 요인 가운데 치아 모양은 키, 몸무게, 머리색보다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문의들은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치과 검진을 받아보라고 권한다. 대한치과교정학회와 미국교정협회에서는 만 7세에 교정치료를 위한 첫 검진을 받아보라고 권한다. 7세 때부터 치료를 시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때 검진을 받아 잇몸 속의 과잉치와 결손치 여부를 확인하고 얼굴 골격 성장에 부조화가 있는지 검사해 보라는 이야기다. 부정교합은 골격성 부정교합과 치아성 부정교합으로 나뉘는데, 골격성 부정교합의 경우 어릴 때 치료하면 수술하지 않고도 바로잡을 확률이 높다.

이지나치과의원 이지나 원장은 “성장기 아이들은 얼굴을 구성하는 뼈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고 성장이 남아 있어서 얼굴에 ‘칼’을 대지 않고도 골격을 교정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예컨대 위턱이 너무 튀어나와 보이면 헤드기어를 사용해 위턱 성장을 억제할 수 있고, 아래턱이 튀어나온 주걱턱은 페이스마스크나 친캡(턱 모자)을 이용해 턱 성장을 조절할 수 있다. 입천장 넓이가 좁아서 어금니가 반대로 맞물릴 때에는 RPE라는 장치를 사용해 입천장 뼈를 넓힐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얼굴을 구성하는 뼈들이 굳어지고 성장이 완료되어 성장 조절 치료가 어렵다. 결국 ‘칼’을 들이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옆에서 봤을 때 송곳니끼리 닿고, 위 아래 앞니 네 개가 닿는 이 모양이 보기에도 좋고 건강에도 가장 좋은 치아 상태다. 그러나 위턱이 현저하게 나와 보이거나 아래턱이 위턱보다 더 나와 보일 때는 교정 치료를 생각해 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앞니가 반대로 물리거나 어금니 부위가 반대로 맞물릴 때, 앞니가 많이 튀어나와 외상의 위험이 있을 때, 비뚤어진 치아로 콤플렉스를 가져 자신감이 결여될 때도 교정 치료를 권한다.

조기 치료를 놓쳤다고 치아 교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0대는 물론 30, 40대에 치아 교정도 가능하다. 서울치대 백승학 교수(치과교정학교실)는 “지난 2002년에 서울대 병원을 찾은 교정 치료 환자 수 통계를 보면 10년 전인 1992년에 비해 4배나 늘었다. 그만큼 성인 교정 치료가 증가하는 추세다. 골격성 부정교합은 어릴 때 하는 것이 좋지만 치아성 부정교합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또 성인의 골격성 부정교합 역시 수술과 교정 치료를 병행하면 바로잡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치료 기간은 나이와 치아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8~30개월 정도 걸린다.

일반적으로 치아 교정은 치아 표면에 금속이나 세라믹으로 된 브라켓이라는 고정물을 부착한 뒤 철사로 연결해서 치아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대개는 치아 겉 표면에 부착하지만 만약 이런 것이 싫다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치아 안쪽에 부착할 수도 있고, 뺐다꼈다 하는 마우스피스 형태의 투명 장치를 사용할 수도 있다.

스프린트 끼면 이갈이도 ‘뚝’

옆에 누운 남편 또는 아내가 밤마다 이를 간다면? 과거에는 솜으로 귀를 막거나 방을 따로 쓰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갈이도 교정으로 치료한다.
이갈이는 옆 사람의 수면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본인의 치아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치아 표면이 닳아 없어지게 할 뿐 아니라, 치아 보철물의 수면을 단축시키고 잇몸 질환을 악화 시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갈이는 악안면 근육 장애로 인해 나타난다. 이 경우에는 ‘스프린트’라는 장치를 이용해 치료한다. 이 장치는 이를 갈거나 꽉 물더라도 턱관절에 가하는 부담을 줄여주고 주위 근육을 안정시켜 턱관절 기능 장애를 개선해준다. 이 장치는 밤에만 착용하면 된다. 만약 이갈이에 의해 악관절과 근육에 통증을 느낀다면 스프린트를 음식물 먹을 때만 제외하고 초기 6~8주간은 항상 착용해야 한다.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이갈이를 하는 사람에게는 항우울제나 근이완제, 신경안정제 등을 투여해 병행 치료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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