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지키는 사람들
  • 문정우 전문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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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취재팀은 10월7일부터 5박6일 동안 해경 독도 경비 함정 5001함, 독도 경비대원들과 숙식을 함께 했다. 우리 땅을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칠흑 같은 밤. 구름이 잔뜩 끼어 별빛조차 찾아볼 수 없는 두터운 어둠 속에 적의(敵意)가 도사리고 있다. 그 적의는 밖의 불빛을 식별하기 쉽도록 전등을 모두 꺼놓은 조타실 안 레이더 망에서 노란 불빛을 뿜으며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원을 그리고 있다. 계기판을 응시하는 당직자들의 온몸에서는 긴장감이 배어 나온다. 

10월7일 밤 11시께 동해해양경찰서 소속 독도 순시선 5001함은 독도 북서쪽 24km 지점에 있었다. 같은 날 오후 4시40분께 5001함과 임무 교대를 하고 귀환하던 해경 소속 함정이 일본 순시선을 발견하고 연락해 추적하는 중이었다. 일본 순시선은 독도에서 27km 정도 떨어진 곳을 원을 그리며 돌고, 5001함은 그 안쪽으로 함께 돌았다.
 
올해 2월22일 일본 시마네 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한 이후 일본 순시선은 기상이 좋으면 이틀에 한 번꼴로 독도 해역에 출현한다. 아직 독도 영해인 12마일(22.2km) 안쪽까지 침범한 적은 없지만 항상 독도에서 15마일(27.7km) 정도 떨어진 지점을 시계 방향이나 그 반대 방향으로 돌곤 한다. 일본 순시함이 나타나는 시간이나, 도는 방향에는 어떤 일정한 규칙이 없어 보인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나타나 그저 내키는 대로 독도 주변을 선회하는 것이다. 일본 순시선은 울릉도-독도간 유람선 왕래가 정례화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듯 울릉도-독도 유람선이 다니는 항로에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5001함은 울릉도-독도간 유람선이 취항할 때는 항상 항로 부근에서 호위한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본 쾌속정

일본 순시선은 예전에는 500t급이나 1000t급이 주로 출현했는데 5월 이후에는 3000t급이나 200t급도 출몰한다. 특히 200t급은 최고 속도가 시속 40 노트(74km)에 달하는 쾌속정이다. 200t급 순시선은 마치 성능을 자랑이라도 하듯 5001함 주변으로 순식간에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5001함은 독도 경비 전담 함정이다. 독도는 암섬인 동도와 수섬인 서도, 그리고 가운데 있는 탄금바위를 합쳐 삼봉도라고도 불렸는데, 5001함의 또 다른 이름이 삼봉호이다.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오가는 관광선의 이름도 삼봉호여서, 독도 해역에서는 삼봉호가 삼봉호를 지킨다.
  
5001함의 한 해경 관계자 말을 빌리자면 “국회가 오랜만에 쓸 만한 일을 해서” 지어진 배이다. 여야가 일본 순시선보다 더 큰 배를 짓자고 합의해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켜 만든 배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1999년 9월14일부터 건조하기 시작해 2002년 3월29일 완공했으며, 취역한 것은 그로부터 1년 이상 시운전을 거친 뒤인 2003년 7월4일이었다. 5000t급이라고 불리지만 실톤수는 6000t이 넘으며, 그 덩지에도 최고 속도가 시속 40km 넘게 나간다. 연료는 하와이를 왕복할 수 있을 정도인 100만 ℓ를 싣고 다닌다. 배를 짓는 데 5백억원이나 들었으며, 100억원짜리 헬기와 대당 1억원씩 하는 초고속 단정(짧은 배, 시속 83km)를 4대나 싣고 있다. 덩지나 성능이 일본의 3천t급 순시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사실 7일 밤은 운수가 좋은 경우에 속한다. 미리 다른 해경 선박이 일본 순시선의 존재를 확인하고 알려주어 추적하기가 수월했다. 일본 순시선은 곧잘 여러 척의 상선이나 어선 사이에 묻혀서 독도 해역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레이다에서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무전으로 불러내도 좀처럼 응답하는 법이 없다. 서치라이트를 켜고 한바탕 소동을 겪은 다음에야 일본 순시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해경 선박이 북한측 협조를 얻어 종종 북한 해역에도 들어가 우리 선박의 구난 활동을 할 정도로 해상에서의 남북관계가 부드러워졌기 때문에 동해에서의 ‘주적’은 어느 틈엔가 일본으로 바뀐 상태이다.
 
만약 일본 순시선이 독도 영해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5001함 김기수 함장은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그에 대비한 매뉴얼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동안 5001함은 모두 4단계인 독도 방어 훈련을 거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는 일본 순시선을 5001함의 몸으로 영해 밖으로 밀어내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나포해 동해항으로 끌고 오는 시나리오까지 포함되어 있다. 10월11일 이종석 사무차장 등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 4명은 비밀리에 5001함을 직접 방문해 독도방어지침을 정확하게 지키고 있는지 점검했다.
 

한·일 어업협정에 따라 독도 해역은 공동어로 구역이 되었으나 일본 어선들이 독도 근처로 오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5001함은 확인되지 않은 민간 배가 나타나면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운다. 일본 우익이 언제 배를 타고 와 독도 상륙을 시도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해경 관계자들은 “만약 일본 우익이 독도에 상륙해 일장기라도 휘두르는 사태가 벌어지면 독도 경비 책임자들은 목이 10개라도 모자랄 것이다”라며 일본 우익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라고 호소한다. 경비책임자들이 옷을 벗어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일본 우익이 독도에 상륙해 국제 사회의 눈길을 모은다면 독도 지역을 영토 분쟁 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 위험성이 있다. 
 

 

10월8일 오후 5001함 당직자들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독도 동북단 수평선에 걸려 있는 민간 선박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전으로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 조타실 오른 쪽에 달려 있는 대형 망원경 덮개를 벗기고 노련한 부함장이 망원경에 매달렸다.  비상 대기 상태에 들어간 지 30분쯤 지나서야 괴선박의 정체는 울릉도에서 온 오징어잡이 채낚기 어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끔 무전으로 불러내도 응답하지 않고 속을 썩이는 어선들이 있다. 당직자들은 채낚기 어선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잔뜩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동해에 특공대원 증강 배치 

5001함에는 이번 출항 때부터 특공대원 3명이 상주하게 되었다. 주로 일본 우익의 해상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특공대는 중국 어선의 불법 어로가 극성을 부리는 서해에 집중 배치되었으나 9월부터 동해에도 증강 배치되었다. 동해의 특공대는 5001함과 1천5백t급 함정에 각각 3명씩 상주하며, 육상에서 11명이 헬기로 투입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다. 해경 특공대원들은 모두 군 특수부대에서 3년 이상 복무한 경력을 가진 베테랑들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문제의 선박에 접근해 제압해야 하므로 잠수에 능해야 한다.   
  

 

“일본 우익 선박을 제압하는 것과 같은 긴박한 현장에서는 순간의 판단과 팀워크가 중요한데, 그것은 고된 훈련에서만 나올 수 있다.”
  서해에서 칼이나 낫을 들고 달려드는 중국 불법 어선의 무법자들과 스무 번이 넘게 전쟁을 치러 보았다는 5001함 특공대장 김상진 경사의 말이다. 특공대원들은 5001함이 순시를 도는 동안 끊임 없이 체력 단련과 팀워크 쌓기 훈련을 반복한다.  5001함의 특공대원과 요원들은 일본 우익 선박을 발견했을 경우 3단봉과 전기 충격기 등을 사용해 제압하고 그들의 행태를 비디오 카메라에 낱낱이 담는 훈련을 반복해왔다. 일본 우익을 신속하게 제압하고, 그들이 국제 사회에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고 억지 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연료 절감 위해 엔진 끄고 표류

001함은 전투보다는 해상 구조를 목적으로 건조한 배이다. 작은 배는 침몰시켜 버릴 수도 있는 강력한 소화포(바닷물을 끌어올려 불을 끄는 물대포)와 60000t급 배도 견인할 수 있는 1만2천 마력 엔진 2개, 로프와 체인을 싣고 있다.
 
10월9일 아침 5001함은 시속 22노트(40.7km)로 달려가고 있었다. 연료 절감을 위해 수시로 엔진을 끄고 최소한의 조명과 통신을 위한 발전기만 돌리며 해류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곤 하던 5001함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새벽 5시께 울릉도 남서쪽 30km 지점에서 조업을 하던 어선 한 척에 배전판 과열로 불이 났다는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변에 어선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인명은 모두 구조한 상태였다. 

 

5001함은 독도 해역의 경비를 잠시 미루고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현장에 도착하기 15분 전에 멀리서 연기를 뿜으며 불타고 있던 선박은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매캐한 연료 냄새와 몇몇 부유물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예전에 목선이나 철선은 불이 나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으나 요즘의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 배는 불만 났다 하면 오그라들어 순식간에 가라앉아 버린다고 한다. 5001함은 해난 사고가 나면 독도 경비에 잠시 구멍이 뚫리더라도 현장으로 즉시 달려간다.
 
5001함에는 해경 직원 54명과 전경 34명 등 모두 88명이 근무한다. 5001함과 교대로 근무하는 다른 배 두 척의 인원까지 합치면 2백명 조금 안 되는 인원이 독도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물론 해상 구조나 밀수선 검문 검색 같은 일도 한다). 이들은 한번 작전에 나가면 길게는 8박9일, 짧게는 6박7일 정도 바다에 머무른다. 배 한 척이 수리라도 들어가게 되면 육지에서 1주일 정도만 머무른 뒤에 막바로 다시 바다로 나가야 한다. 배가 독도와 울릉도 사이의 항로에 들어섰을 때만 휴대전화가 터지기 때문에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휴대전화 연락이 되지 않는 직장에 다닌다.
 
오랜 동안의 고립감과 때로는 5000t급의 거함마저도 가랑잎처럼 흔들어대는 동해의 거친 파도는 이들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겨울에 파고가 높을 때는 바다에서 늙은 베테랑들도 기운도, 밥맛도 없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다. 계기판에서 읽을 수 있는 일본의 욕심이 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도는 우리가 지킨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들은 농 반, 진 반으로 말한다. 대한해협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벌어질 임진왜란에 대비했던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알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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