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논란
  • 이윤삼 편집국장 (yslee@sisapress.com)
  • 승인 2005.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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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한한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은 <Made in USA>라는 책에서 미국의 팝 가수 재닛 잭슨의 공연 도중 가슴 노출 사건을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잭슨의 가슴은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거실에 모인 백인 가족은 나체, 흑인의 성, 혼혈에 대한 강박관념, 젊은 문화라는 '폭력‘들에 노출되었다.

결국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잭슨은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그 해 음반상 시상 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공중파 텔레비전를 규제하는 연방통신위원회의 검열권을 케이블 채널로까지 확대하자고 주장했다. 선정적이라고 판단되었던 방송 프로그램들이 유탄을 맞았다. CBS를 소유하고 있는 비아콤 사는 결국 55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미국에서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간의 전선은 넓고 구체적이고 아주 세분화 되어 있다. 동성 결혼, 이라크 전쟁, 낙태 합법화, 사형제도, 진화론 교육, 인종 차별, 총기 소지 문제 등등.

전선은 박물관에까지 넓게 퍼져 있다. 1982년 워싱턴에 자유주의적 발상에 따른 베트남 전쟁 사망자 기념비가 세워지자 참전용사 단체들은 참전용사들의 영광을 기리는 기념물 건립을 요구해 관철했다. 흑인 한 사람이 포함된, 중무장 군인들 조각이었다. 자유주의자들 역시 똑같이 반격했다. 여기에 한 명의 흑인 여성이 포함된, 죽어가는 병사를 치료한 군인 간호사 조각품이 추가되었다.

국보 논란이 한창이다. 감사원이 국보 1호 숭례문의 상징성과 정당성을 문제 삼고 나섰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거들고 나서면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유청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 교체를 주장해 논란을 부른 적이 있다. 나중에 그는 이번 일이 일제 잔재 청산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시사저널>이 이번 호에서 다룬 국민.전문가 상대 여론조사는 이들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결과는 모두 국보 1호를 숭례문에서 다른 문화재로 바꾸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또 정치적 목적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를 정부가 일정한 목적에 따라 끌고 가려는 것에 대한 반발인지 모른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국보에 대한 논의는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정부는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지를 더 고민하라는 ‘아우성’으로 들린다.

국가보안법이나 뉴라이트 출범, 교육 이념을 비롯한 진보-보수 논쟁들은 공론장을 통해 더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거대담론이든, 세밀한 주제이든. 하지만 국보 논쟁은 다른 맥락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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