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큰소리 ‘뻥뻥’
  • 워싱턴 · 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5.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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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미군 조기 철수 불가” 외치지만 속내는 달라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군의 이라크 철수 논란에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정치인들이 정하는 인위적인 철군 일정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11월30일(미국 시각) 미국 해군사관학교 연설에서 이같이 천명했다. 미국에서 철수론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2년 반이 넘도록 이라크 반군이 기승을 부려, 최근 미군 사망자가 2천명을 넘어서자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이번 부시 대통령 연설은 이같은 철군론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

사실 부시의 이 날 연설이 나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는 현재 16만여명에 달하는 미군 가운데 일부가 철군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미국 국방부에서조차 내년 중 미군 2만명을 철수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또 미국 민주당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은 지난 11월26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내년에 이라크 주둔 미군이 대규모로 철수할 것으로 내다보고 아예 구체적인 철군 규모로 ‘5만명 선’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또 2007년에는 잔여 미군 병력 10만 가운데 상당수가 철수하고 일부 상징적인 숫자만 남아 테러 단체 소탕 작업을 맡게 될 것으로 단언했다.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는 바이든 의원의 철군계획안에 대해 “우리측 안과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라고 맞장구를 쳐, 내년 중 미군 철군이 기정 사실화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정작 미군 최고 통수권자인 부시의 입에서 떨어진 핵심 메시지는 ‘인위적인 철군 불가’였다. 부시는 이 연설에서 “목적을 완수하기도 전에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은 필승 계획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부시가 현단계에서 철군론에 이처럼 쐐기를 박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철군의 여지를 모두 없앤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이번 연설에서 인위적인 철군은 배제하면서도 “앞으로 미군의 임무를 반군에 대한 작전으로부터 가장 위험한 테러 집단에 대한 전문 활동으로 전환할 것이다. 철군은 이라크 현지 상황과 미군 지휘관들의 판단을 고려해 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즉 이라크 치안 상황이 호전된다면 철군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도 아울러 시사한 것이다.

내년 중간 선거 앞두고 철군 감행할 수도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미군이 현재 이라크에서 관할하고 있는 1백10개 군 기지 가운데 이라크 병력이 임무를 떠맡은 곳은 29개에 불과하다. 이라크 전체 치안 병력은 최근 들어 21만 여명으로까지 늘었지만, 미국 국방부는 그 중 약 3분의 1 정도가 실제 반군 소탕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미군 도움 없이 반군과 맞설 수 있는 이라크 병력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조지 케이시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은 미군 지원 없이 반군 수만 명에 맞설 만한 이라크 병력은 고작 1개 대대뿐이라고 밝혀 충격을 던졌다. 미국 국방부는 현재 이라크에 주둔한 16만여 명의 미군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달 60억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이 앞으로 상황 전개에 따라 철군을 위한 명분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은 내년 11월 의회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다. 게다가 국민 여론도 갈수록 부시 행정부에 불리가게 돌아가고 있다. 이 모두가 철군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공화당의 경우, 존 매케인 상원의원처럼 ‘임무 완수 전 철군 불가’론이 아직은 절대 다수이지만 내부에서 중간 선거의 악영향을 우려해 미군 철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공화당 소속인 존 머서 하원의원은 지난 11월25일 하원에 철군 결의안을 내기도 했다. 물론 이 결의안은 반대 4백3표 대 찬성 3표로 보기 좋게 부결되었지만, 공화당 기류도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부시의 이번 연설도 이런 측면에서 ‘집안 단속’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미군 사망자 증가로 인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여론을 누구보다 잘 의식하고 있는 부시가 철군 불가 입장을 언제까지나 고수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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