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가른 ‘난자의 벽’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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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지지 카페 ‘성녀’ 줄이어…한쪽에선 “여성 인권 착취”
 
문화방송(MBC)이 <뉴스 데스크>를 통해 황우석 교수 논문 진위 의혹을 정면으로 제기하고 나선 12월1일, 황우석 교수 팬 카페인 ‘아이러브 황우석’에는 무궁화 8백 송이가 활짝 피었다. 섀튼 교수의 결별 선언이 있은 직후인 11월14일  ‘사이버 난자기증운동본부’를 발족한 이 카페는 난자 기증 신청자가 한 사람씩 늘 때마다 대문 화면에 올라 있는 황교수 사진 주변에 무궁화를 한 송이씩 심어 왔다. 그것이 보름 만에 8백 송이로 불어난 것이다.

본부 발족에 앞장선 이 카페 회원 김이현씨(47·아이디 ‘중전’)는 “MBC가 세게 나갈수록 기증 의사를 밝히는 여성이 더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본인 또한 미혼인 두 딸과 함께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밝힌 김씨는 혹시나 싶어 산부인과에서 미리 검사를 받아 보았는데, 자신의 생물학적 나이와 달리 난자가 젊고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아 기쁘다고 덧붙였다. 이 카페에서는 김씨 같은 여성들을 ‘성녀(聖女)’라고 지칭하고 있다.
 
사이버 상에서뿐만이 아니다. 이수영(아이콜스 사장), 김미화·백지연(방송인), 장향숙·진수희(국회의원) 등 여성 명망가가 중심이 되어 11월21일 발족한 ‘연구ㆍ치료 목적을 위한 난자 기증을 지원하기 위한 모임’에도 난자 기증 의사를 밝혀 오는 신청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열기를 더해 가는 난자 기증 운동에 비례해 이를 우려하는 여성계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난자 기증 운동에 대해 여성계가 비판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난자 채취가 여성의 몸에 미칠 영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난자 채취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다량의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과배란을 유도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난자 기증자는 열흘 이상 매일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하며, 질을 통한 초음파 검사를 여러 차례 받아야 한다. 난자를 채취할 때는 난소에 바늘을 삽입하는 고통스러운 처치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난소 크기 증대, 복통, 부종, 복수, 혈액 응고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의학계에 보고되어 있다.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합병증에 걸려 불임에 이르는 여성도 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편집장인 조이여울씨는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들이 이런 부작용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전달받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라고 지적했다.
 
“난자 모으고 보자는 식의 여론몰이도 문제”

난자를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일천한 상태에서 ‘싱싱한’ 난자부터 모으고 보자는 식의 여론몰이가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여성계는 비판적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정은지 팀장은 “불임 시술을 하고 남은 잉여 난자·배아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난자 제공자에게 실비 차원의 보상을 합법화하자는 둥 난자 제공에 걸림돌이 되는 법 조항을 정비하자는 움직임은 너무 성급한 측면이 있다고 국가생명윤리위원회 명진숙 위원(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팀장)은 지적했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난자 기증자들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행 법·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난자 기증 운동을 최대한 신중하게 진행하겠다는 김원철씨(난자기증모임 홍보 담당)는 “현재 난자 기증 의사를 밝힌 여성들은 전문 의료진으로부터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 들은 뒤 각종 검사를 거쳐 난자를 채취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찜찜하면 언제라도 기증 의사를 철회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난자 기증 운동은 애국 내지 과학 발전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여성의 몸과 인권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 여성계의 우려이다. 1970년대 가족계획운동이 상징하듯 ‘국익’을 내세워 여성의 몸을 함부로 다루어온 역사가 반복 재생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를 위한 일인데 할래, 말래’ 다그치는 앞에서 태연할 강심장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정은지 팀장은  “난자 매매 파동 등으로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가 여성임이 드러났는데도, 한국 사회가 또다시 여성을 희생양 삼아 위기를 탈출하려 있다”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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