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애매한 일본’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5.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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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50주년 ‘국회 不戰 결의’ 싸고 찬밥 대립… ‘애매한 표현’으로 타협될 가능성

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大江健三郞)는 스톡홀름 기념 강연에서 “현재의 일본은 근본적으로 ‘아이마이사’(애매 모호함)의 2극으로 분단되어 있다”고 갈파했다. 그가 말하는 일본의 아이마이사란 서구를 모방해 왔으면서도 정작 서구로부터는 이해가 불가능한 나라로 간주되고 있는 현실, 패전후 부전(不戰)을 강조해 왔으면서도 그것이 개헌 움직임 등에 의해 끊임없이 도전 받고 있는 현실 등을 가리킨다.
 
이 기념 강연 내용이 알려지자 일본의 우파 논객들은 일제히 그를 비난하는 포문을 열고, “전후 50년을 맞는 지금이야말로 그가 말하는 ‘애매한 일본’을 시정할 절호의 기회”라고 반격했다. 예를 들어 보수․우익 성향이 짙은 <산케이 신문>은 즉각 ‘의문이 남는 오에 기념 강연’이란 사설을 싣고, ‘오에씨가 말하는 아이마이사를 시정하기 위해서도 즉각 미 점령군에 강요 당해 제정한 현행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일본의 국론을 갈라놓고 있는 이른바 ‘국회 부전 결의’를 둘러싼 대립도 따지고 보면 이 ‘애매한 일본’을 둘러싼 갈등이다.

 일본의 연립여당인 자민․사회․사키가케 3당은 지난달 7일 ‘전후 50주년 문제 프로젝트’를 열고 국회에서 결의할 부전․사죄 문제를 협의했다. 사회당은 이 자리에서 국회 결의 문제에 대한 여당의 결론을 3월중으로 매듭짓자고 제의했다.

사회당 “부전 결의 무산되면 연립정권 탈퇴”

 사회당은 또 부전 결의문에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대한 경위를 명확히 함과 동시에 2차대전의 침략 행위를 검증하고 △희생자와 그 유족에 대한 사죄를 표명한다는 내용을 삽입하자고 제의했다. 사회당은 이와 더불어 국회 결의가 새로운 보상 문제와는 별개 문제라는 점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옛 소련의 북방 영토 점령 및 일본인 포로의 시베리아 억류 행위도 결의문에 함께 명시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사회당이 이처럼 부전 결의에 적극적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사회당은 5년 전부터 국회에서 부전 및 사죄 결의를 채택하자는 운동을 벌여 왔다.

 당시 도이 다카코 위원장(현 중의원 의장)은 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 방일을 앞두고 ‘식민지 지배 청산과 침략 전쟁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는 국회 결의’를 제안했다. 그러나 자민당이 외교 문제는 행정부의 전관 사항이라고 반대하여 이 제안은 빛을 보지 못했다.

 또 진주만 공격 50주년이 되는 91년 12월 사회당은 ‘전쟁의 반성과 평화에의 결의’를 국회에서 채택하자는 안을 내놓아 공명당의 찬성을 얻었으나, 자민당 매파 의원들이 ‘미국이 원폭 투하에 대해 한마디 사죄도 없는데 왜 일본만이 과거를 사죄해야 하느냐’고 들고 일어나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그후 작년 6월 사회당은 이 문제를 자민․사키가케와의 3당 정책 합의 사항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회당은 이 합의 사항을 들어 자민당의 반대로 이 부전 결의가 무산될 경우 3당 연립 정권 이탈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오는 4월부터 일제히 지방자치 선거가 시작된다. 또 7월에는 참의원 선거가 있을 예정이고, 중의원 총선거도 연내에 치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선거철을 맞이해 사회당은 그동안의 약세를 만회하려는 방편으로 부전 결의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자민당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은 편이다. 자민당은 최근 열린 3당 대표자 회의에서 무라야마 정권 발족 때의 합의에 따라 부전 결의를 채택하고, 3월중에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연립정권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는 집행부에 대한 견제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의 절반 가량이 가입돼 있는 ‘종전 50주년 국회의원 연맹’ (1백61명)은 ‘국회가 과거 역사를 단죄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부전 결의 채택 움직임에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제1 야당 신진당 역시 내부 사정이 복잡하다. 작년 4월 하타 총리는 정권 발족 직후 도이 중의원 의장과 부전 결의를 적극 추진하자는 데 의견을 모은 바 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신진당 내에서 큰 영향력을 미칠만한 처지가 아니다.

 신진당은 작년 “남경 대학살은 날조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가 법무장관을 사임한 나가노 사게토(永野武門) 의원을 중심으로 ‘바른 역사를 전하는 국회의원 연맹’(28명)을 결성하고 부전결의 채택을 적극 저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회가 일본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 반대 이유다.

 부전 결의는 각 당의 이런 사정으로 표현이 대폭 완화되어 참의원 선거가 끝난 7월 이후의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3당 연립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길이 최선의 대안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리 당략에 의해 부전 결의의 내용이 일본인 특유의 ‘애매한 표현’에 그친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초래할 것이 뻔하다.

 이번 부전 결의에서도 이와 유사한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애매한 표현으로 과거 역사를 청산하려고 한다면 한국․중국 등의 반발만 초래할 것이라고 일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말을 바꾸면, 일본의 아이마이사, 즉 애매한 태도를 청산하려다 오히려 ‘애매한 일본’을 강조하는 꼴이 된다는 얘기다.

 일본은 패전 직후 제정한 헌법에서 ‘전쟁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부전 선언은 그후 자위대 창설 및 전력 증강과 함께 점차 유명무실해졌고, 일본은 끝내 해외 파병이라는 금기조차 깨뜨렸다.

무라야마 총리, 여론 의식해 방미 꺼려

 또 일왕이나 역대 일본 총리는 간헐적으로 한국․중국 등에 과거사를 반성한다는 외교적 수사를 늘어놓은 바 있다. 그러나 그 뒷전에서는 교과서에 기재된 과거 역사를 개찬하려는 교과서 파동과 각료들의 역사왜곡 발언이 꼬리를 물었다.

 부전 결의 지지파들은 헌법에 부전을 명기해 놓고도 이처럼 그 정신을 짓밟아온 그동안의 아이마이사를 바로잡기 위해 패전 50주년이 되는 올해 새로운 결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반대파들은, 그같은 결의가 일본의 아이마이사, 즉 ‘얼굴 없는 일본’이나 ‘특수 국가 일본’의 이미지만 더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부전 결의가 ‘애매한 표현’으로 국회를 통과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결의가 과연 일본인 전체의 역사관을 반영한 결의냐 하는 점이다.

 태평양 전쟁 종결 50주년을 맞는 올해 미국에서는 각종 기념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 달 14일 이오지마(유황도) 상륙 기념 행사가 현지에서 개최된다. 그런데 지난 1월 미국을 방문한 무라야마 총리는 국내 여론이 반발한다는 이유로 미국측에 ‘VJ데이’행사에 자신을 초대하지 말라고 은근히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부전 결의로 일본의 과거 침략사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부전 결의의 뒷전에서는 일본의 또 다른 목소리가 꿈틀거리고 있다. 그런 ‘애매한 일본’이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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