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남쪽에 활짝 열린 광활한 ‘비밀의 정원’
  • 김재태 기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05.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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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즐길 서호주 여행, 돌고래 관광 등 ‘오감 만족’ 체험 가득

 
인도양의 물과 하늘은 그곳에서 한 몸이다. 서로의 경계를 다투지 않으며 빛깔의 위세를 겨루지도 않는다.

가도 가도 끝없는 초원과 끝없는 사막과 끝없는 덤불과 끝없는 원시림, 그 모든 것을 다 끌어안고도 성이 차지 않는 듯 한없이 광활한 대륙 호주에서 시간과 공간은 통속적인 규격으로 재단되지 않는다. 관목 숲 사이를 겸손하게 가로지른 포장도로나 빽빽이 우거진 나무들 위로 우뚝 솟은 첨단 건물의 스카이라인이 마치 오래 전부터 한 묶음이었던 듯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태고의 신비와 현대의 풍요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 대륙에서 가장 호주다운 얼굴을 한 곳은 서호주이다. 시드니나 멜버른을 중심으로 한 동남부 지역이 세련된 치장과 도회적 풍모를 지닌데 견주어 서호주의 모습은 맨얼굴 자체로 아름다운 순수 미인에 가깝다.

한반도와 영국 그리고 미국의 텍사스 주를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땅덩어리를 지닌 서호주는 호주의 여섯 개 주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은 곳(호주 전체의 3분의 1 크기)이지만 인구는 고작 1백90만에 불과하다. 그조차도 대도시에 주로 몰려 있어 거의 모든 땅이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채 야생의 표정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고 산이 적은 대륙이며 원시 덤불(호주인들은 이를 부시라고 부른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호주에서도 가장 넓고 풍성한 ‘부시’를 끌어안고 있는 곳이 서호주이다.

서호주는 날씨조차 그 풍경에 어울리게 환상적이다. 지중해성 기후의 특성을 띠고 있어 연평균 기온이 섭씨 18도로 더없이 온화하다. 연중 무휴로 녹음방초가 우거지고 호주 대륙에서만 볼 수 있는 갖가지 꽃들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이같은 기후 덕분이다. 특히 여름철(호주는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이다)은 기온이 그다지 높지 않고 습기도 거의 없어 여행하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계절이다. 이 기간에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노란 양초 모양의 꽃이 핀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관을 덤으로 즐길 수도 있다.

이처럼 ‘땅은 넓고 할 일은 많은’ 서호주는 신비한 볼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숱한 야생 체험의 공간을 갖추고 있어 ‘오감 만족’의 여행이 가능하다.

인도양의 진주, 퍼스- 서호주 여행은 호주 서부의 최대 관문이자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주도 퍼스로부터 시작된다. 퍼스는 호주 연방정부 재정의 40%를 지탱해줄 만큼 부유한 주의 수도답게 현대적이면서도 생태 보존이 잘되어 있는 도시이다. 특히 도심 번화가와 스완 강의 정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킹스 파크는 이 도시가 ‘자연의 은총’을 얼마나 넉넉하게 누리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4백ha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에 1만2천여 종의 야생 식물이 자라고 있는 킹스 파크는 약 1백30년 전에 세워진 생태 공원으로 호주의 대표 수목인 유칼립투스를 비롯해 풀인지 나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그라스트리와 꽃 생김새가 캥거루 발톱을 닮은 캥거루 포 등 진기한 식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야생의 보고이다. 이 초목들을 더 많이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마련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온갖 향기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순도 100%의 삼림욕을 즐기는 ‘부시 워킹(호주 사람들은 숲길 산책을 이렇게 부른다)’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킹스 파크와 함께 퍼스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명물은 스완 강변에 세워진 ‘스완 벨타워’이다. 1999년 영국 성공회 재단이 기증한 종들을 갖춘 높이 82.2m의 이 종탑에는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 탐험을 마치고 돌아온 후 런던에서 울렸다는 종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벨타워 관람을 마친 뒤에는 인근에 위치한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첨단과 자연이 절묘하게 어울린 도심의 풍경과 강가에 정박한 호화로운 요트들의 군무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퍼스는 또 인구보다 레스토랑 수가 더 많다는 말이 있을 만큼 다양한 먹을거리를 갖춘, 음식 문화의 용광로이기도 하다. 특히 음식점이 밀집해 있는 노스 브리지 거리에서는 세계 각지의 전통 음식들을 취향에 따라 골고루 경험할 수 있다. 퍼스에는 이밖에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옛 런던 시내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런던 코트’ 등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자연의 축복을 넘치도록 받은 수혜자들답게 퍼스의 시민들은 호주 내 어느 지역 거주자들보다 여유로워 보인다. 그 넓은 미개척지를 지척에 두고도 개발 욕심 따위에는 아랑곳없어 보이는 주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미 가꾸어놓은 도시를 어떻게 하면 좀더 청결하게 유지할 것인가에 골몰한다. 시내 거리를 오가는 세 가지 색깔의 무료 버스도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일반 차량의 도심 진입을 좀더 막아보겠다는 친환경적인 발상이 거기 담겨 있다. 이런 노력들이 있기에 미국의 한 관광 잡지가 퍼스를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도시로 첫손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돌고래와 함께 춤을 -퍼스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두 시간쯤 내려가면 인도양과 맞닿은 아름다운 해변 도시 번버리가 나온다. 이곳은 야생 돌고래와 접선이 이루어지는 거점이다. 현지에 있는 돌고래 센터에 문의해 전용 관광선을 이용하면 무리지어 다니는 돌고래떼와의 조우가 가능하다. 관광선에는 스노클링 장비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어 바다에 몸을 맡긴 채 가까운 거리에서 돌고래의 날렵한 유영을 감상할 수 있다.

전설의 강 마가렛 리버- 번버리 남쪽에는 서호주 남서부의 꼭지점을 완성하는 거대한 곶이 펼쳐져 있다. 해안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어느 곳 하나 빠짐없이 절경의 연속선을 이루고 있는 명승지다. 그 중간쯤에 태고의 시간을 실어나르는 마가렛 리버가 자리 잡고 있다. 강의 하구와 잇닿은 바다는 일년 내내 높은 파도가 몰아쳐 호주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서핑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바다에서 파도가 성난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든 말든 아무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한껏 여유롭고 편안하게 흐르는 이 마가렛 강에는 두 가지 특별한 즐거움이 예비되어 있다. 그 하나는 카누 체험이다. 현지 관광 센터에 문의하면 카누를 빌려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며 강안의 절벽과 원시림을 한눈에 조감할 수 있다. 카누를 저어 2백m쯤 올라가면 ‘소리 아일랜드’라는 이름을 가진 자그마한 섬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만나는 전설 속의 이야기가 두 번째 즐거움이다. 비련으로 사랑을 마감한 원주민 남녀 가운데 여자가 남자에게 미안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는 사연에서 ‘소리(Sorry)’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이 섬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도 표피에 물이 흘러 껍질이 온통 벗겨 나간 채 하얀 속살을 드러낸 ‘눈물의 나무’가 그득하다. 그 형상이 마치 서로 부둥켜 안고 흐느껴 우는 듯한 모습이어서 태고 시절의 전설이 금세라도 되살아날 듯한 느낌을 준다.

마가렛 강 주변에는 이밖에도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들의 자취를 담은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소리 아일랜드’ 맞은편 절벽에 올라 그 옛날 애보리진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동굴들을 둘러보며 원시 생활의 단면을 엿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마가렛 강 유역은 또 호주에서 손꼽히는 와인 생산지이기도 하다. 남반구에서 가장 큰 와인 저장고를 두고 있다고 자랑하는 ‘보이저’나 ‘드리프트’ 포도 농장에 들러 맛이 깔끔한 호주 와인과 함께 캥거루 스테이크 등 특선 요리들을 체험할 수 있다.
또 인근의 메리부룩에는 그림 엽서에 나올 법한 환상적인 정취를 지닌 펜션형 숙박 시설 ‘메리부룩 덧지’가 자리 잡고 있어 신혼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전원주택형 단지를 이룬 이 덧지의 하루 숙박료는 23만원으로, 부가되는 서비스에 비하면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다.

 
자연이 만든 설치 예술, 피나클스, 샌드 듄, 웨이브 락 -퍼스에서 북쪽으로 2백km쯤 떨어진 남붕 국립공원에는 호주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피나클스가 있다. 3만6천여년 전의 조개 껍질로 이루어진 사막에 우뚝 솟아오른 만여 개의 석회암 기둥은 마치 지상 최대의 돌무덤을 연상시킬 만큼 웅장하고 화려하다. 돌기둥의 모양과 높이가 각각 다를 뿐 아니라 배열도 기하학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CF 촬영 장소로 특히 각광을 받는 곳이다. 사람의 키보다 높이 솟은 돌기둥 사이에 서면 자연의 거침 없는 마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피나클스에서 돌의 위력에 압도되었다면 구릉 위에 흰눈을 얹고 있는 듯한 ‘샌드 듄’에는 모래가 펼치는 눈부신 백색 파노라마가 기다리고 있다. 피나클스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 샌드 듄에는 깎아지른 모래 비탈을 전륜 구동 자동차나 보드를 타고 내려오면서 롤러코스터에 버금가는 스릴을 맛볼 수 있는 이색 체험 코스도 마련되어 있다.

퍼스에서 동쪽으로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나타나는 웨이브 락도 자연이 빚어낸 또 하나의 걸작이자 호주의 대표적인 명승지이다. 단 하나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거대한 바위는 마치 역동적으로 굽이치는 파도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모을 뿐 아니라 CF의 배경으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밖에 놓칠 수 없는 볼거리들- 피나클스로 가는 도중에 있는 얀켑 동물원에서는 코알라와 캥거루 등 호주의 명물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마가렛 강과 번버리 사이에 위치한 부셀톤에서는 남반구에서 가장 긴 해상 목재 다리인 부셀톤 제티가 장관을 연출한다. 2km에 이르는 다리를 건너면 바다 한가운데 설치된 해저 관람실에서 바닷속을 한가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산호초를 구경하는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서호주에서 퍼스 다음으로 큰 도시이자 영국의 호주 개척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프리맨틀에서는 영국이 만든 옛 형무소 건물 등 고풍스러운 고전 건축물 감상과 함께 시내 중심가 카푸치노 거리에서 향기로운 커피와 그만큼의 오롯한 여유를 만낄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하고 신비스러운 볼거리를 갖추었음에도 대도시들이 밀집된 동부에 비해 관광객의 눈길에서 상대적으로 비켜서 있던 서호주가 지금 세계를 향해 힘찬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호주 정부 관광청(www.westernaustralia.com)도 지난 10월 한국 사무소를 개설하고 한국인들에게 서호주의 진면목을 알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서호주 정부가 내세우는 관광 키워드는 ‘리얼 오스트레일리아’. 그만큼 풍부한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이 응축된 말이다.

한국에서 서호주의 주도 퍼스로 가는 길은 아직 가깝지 않다. 직항편이 없어 캐세이 퍼시픽 항공(02-311-2800) 등을 이용, 홍콩을 경유해 가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최상이다. 하지만 그 먼 길을 돌아가도 후회스럽지 않을 만큼 화려한 볼거리와 놀거리, 먹을거리가 서호주에는 충만하다.

지구 저 남쪽, 인도양의 물과 하늘이 한 빛깔로 어우러진 그곳에서 여행 이상의 무엇을 듬뿍 안겨줄 ‘비밀의 화원’이 활짝 열리고 있다.

퍼스 여행 상품을 운영하는 여행사들
내일여행(02-777-3900) 이오스 (02-546-7532) 투어닷코리아(02-723-0094) 워너투어(02-3477-7555) 타임투어(02-720-0898) 넥스투어(02-2222-6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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