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땅 친 이해찬 퇴출되고 마는가
  • 고제규 · 차형석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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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의 골프 사랑. 2005년 4월5일 강원도 대형 산불 때도 골프, 2005년 7월 남부 지역 호우 피해 때도 골프, 2006년 3월1일 철도노조 파업 때도 골프.

 
사임이냐, 유임이냐. 선택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결정은 쉽지 않다. 이해찬 총리의 진퇴에 담긴 정치적 함의 때문이다.

이해찬 총리의 골프 파문에서 시작된 이번진퇴 논란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총리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사퇴론이 기정사실화하더니 청와대가 진화에 나서면서 유임론으로, 그러다가 ‘내기 골프’ 파문이 일면서 다시 사퇴론으로 오락가락하는 형국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예측불허 상황이라고 말한다.

지난 3월2일자 <부산일보>가 이총리의 3·1절 골프를 첫 번째로 보도할 때만 해도, 파문은 골프를 한 부적절한 시점에 모아졌다. 지난해 4월5일 강원도에 산불이 크게 났을 때처럼,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는 첫날에 골프를 한다는 ‘시점’이 문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주가 조작(류원기 회장), 불법 대선 자금 제공(강병중·박원양 회장) 등으로 처벌을 받은 부적절한 인사들과 골프 회동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문은 커졌다. 게다가 내기 골프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부적절한 시점에 부적절한 사람과 부적절한 방법으로 골프를 했다는 점 때문에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언론에는 ‘골프 게이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파문이 커질수록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선뜻 사임 카드를 꺼내지도 못한다. 파문의 당사자가 이해찬 총리이기 때문이다.

당·청이 사퇴 카드를 밀어붙이는 게 부담스러운 첫 번째 이유는 이해찬 총리가 사퇴할 경우, ‘분권형 협치’라는 참여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 ‘총리 사임=레임덕’ 우려

이해찬 총리는 사실상 내치를 담당해왔다. 이총리는 노대통령으로부터 ‘일 잘하는 총리’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역대 국무총리 36명 가운데 가장 힘이 막강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실세 총리’임은 총리실 규모로도 입증된다. 이 총리 취임 당시 4백62명이던 총리실 직원은 각 부처 파견 인력을 포함해 5백90여 명으로 불어났다. 청와대 직원(5백68명)보다 많은 것이다. 골프 파문이 불거진 뒤, “당에서는 선거를 고려할 수밖에 없겠지만 대통령은 국정 운영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라는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의 말에는 이런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다.

후임자가 마땅하지 않은 것도 청와대로서는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분권형 협치는 이해찬 총리였기에 가능했다. 노대통령이 이총리를 지명한 이유에서 유추할 수 있다. 2004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 의원을 내정하면서 한 말이 이랬다. “이의원은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자기 할 일을 알아서 다 하는 것 같다.” 이런 노대통령의 구상은 딱 맞아 떨어졌다. 일을 잘할 뿐 아니라, 대권이라는 다른 뜻도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총리가 낙마할 경우 새 총리 카드가 마땅치 않다. 일각에서는 김혁규 의원, 이의근 지사 등이 차기 총리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총리가 했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것이냐는 차치하더라도, 이들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적 논란의 한가운데 서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치면서 집중 표적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은 열린우리당이든 청와대든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총리 사임 이후  인사 청문회 정국으로 이전될 경우, 그 비판은 고스란히 노대통령에게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후임자 인선도 인선이지만, 정치 공세로 이총리가 사임할 경우, 곧바로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청와대 참모진은 걱정한다. 청와대가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대목이다. 지난 3월10일부터 청와대가 직접 골프 모임을 조사하는 것을 두고, 청와대가 통상적인 조사라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교과서대로 대응할 것이다. 언론 보도대로 부적절한 로비가 있었다면 (이총리를) 사임시키겠지만, 조사 결과 단순히 골프를 한 것만으로 드러나면 이총리를 사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처지에서는 지방선거를 중심에 놓고 이해찬 총리의 사임 여부에 따른 득실을 계산하고 있다. 계파 간 차이는 있지만 당과 청와대가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분명하다.

 
3·1절 골프 파문이 처음 불거질 때만 해도,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낙마론이 대세였다. 주로 당권을 가진 정동영계 쪽에서 ‘사임 불가피론’이 제기되었다. 정동영 의장도 처음에는 이총리 낙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정의장은 이총리의 사의 표명이 포함된 사과를 두고 “국민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결정한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의식해 조기 진화를 시도한 것이다. 염동연 사무총장도 “축구에 비유한다면 정부는 수비 처지인데, 너무 수비를 과격하게 하다 보니까 ‘페널티킥’을 먹은 게 아니겠느냐”라며 이총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렇듯 열린우리당 최대 계파인 정동영계에서는 이번 파문을 지방선거판 자체를 뒤흔들 대형 악재로 보고 있다.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라는 호재를 지방선거까지 끌고 갈 수 있었는데, 이총리가 자살골을 넣어버렸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이번 지방선거는 어느 쪽이 실수를 적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실수를 했다면 조기 수습이 차선책이다”라고 말했다. 이총리 사퇴로 골프 파문을 털고, 의원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최연희 의원에 대한 역공을 편다면, 전화위복을 꾀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골프 파문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이 ‘최의원이 위장 탈당했다’고 줄기차게 공격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런 복안은 주로 정동영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4년차 대통령의 레임덕까지 고려하기에는 정동영 의장이나 열린우리당이 처한 상황이 너무 다급하기 때문이다. 선거 패배는 곧장 지도부 책임론을 불러올 것이고, 그 인책론 한 가운데 정의장이 있다. 지방선거에서 맥없이 패배하게 되면  정동영 의장으로서는 ‘대선 가도’에 적신호가 켜지게 된다.

열린우리당 형편에서도 지방선거는 중요하다. 지방선거 패배는 열린우리당에 원심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 고 건 변수, 개헌 변수 등 정치판 자체를 흔드는 외풍이 지방선거 이후에 거세지면, 분당은 아니더라도 탈당파들이 대거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전에 열린우리당이 올인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렇게 중차대한 지방선거를 앞둔 ‘전시’ 상황이라는 점 때문에 정동영계에서는 이번 파문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앞뒤 잴 필요 없이 이총리가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이총리가 유임되는 순간, 지방선거는 하나마나다. 노무현 심판론을 들고 나온 한나라당 전략에 말려든다”라고 말했다. 정동영계에 속한 한 의원은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의원들의 분위기를 전하자면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총리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라고 전했다.
김근태·친노 직계가 총리 유임 바라는 까닭

그런데 열린우리당 안에도 계파 간 시각 차가 있다. 김근태 의원이나 유시민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은 유임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들은 이총리가 사임해도, 지방선거에서 특별히 유리할 게 없다고 보는 것이다. 오히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판단한다.

사실 이해찬 총리는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재야파와 가까웠다. 2004년 5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천정배 의원과 이해찬 의원이 맞붙었을 때, 정동영계는 천정배 의원을, 재야파는 이총리를 지원한 바 있다. 김근태계는 ‘잠재적 우군’인 이총리가 낙마하면 세력 균형이 무너지는데, 그것이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셈법이다.

친노 직계도 비슷한 생각이다. 이총리가 낙마할 경우, 권력의 중심이 청와대에서 당으로 급속히 이동할 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정동영계의 일방통행이 쉬워질 것이기 때문에 김근태계나 친노 직계로서는 둘 다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내기 골프 파문이 터지기 전만 해도 여권이 보기에 국민 여론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한 의원은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해찬 총리가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지 않았다. 조·중·동이 연일 의혹을 제기하고 몰아쳤는데도 이 정도면 국민들은 사퇴할 사안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월8일 리서치앤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해찬 총리가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52.8%가 나온 것으로 두고 한 발언이다. 이 조사에서 최연희 의원에 대한 사퇴 여론은 78.3%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조사는 ‘내기 골프’ 파문이 일기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라는 한계가 있다.

3월10일 100만원짜리 내기 골프 의혹이 일자, 이총리와 한 조를 이루어 골프를 친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 정순택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이 보도 자료를 냈다. ‘강병중 회장이 40만원을 상금 명목으로 내놓았고,  2인 1조로 1홀당 2만원의 상금을 걸고 운동했다. 총리는 상금을 받지 않았다.’ 100만원짜리 내기 골프 액수가 40만원으로 줄기는 했지만, 당초 내기 골프가 없었다는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대목을 민심이 어떻게 해석할지가 관건이다.

3월14일 아프리카 순방에서 돌아오는 노대통령은 이총리의 사임과 유임을 두고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귀국한다고 해서 바로 어떤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 여론을 지켜본 뒤 결단을 내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선택은 이제 여론의 추이에 달려 있다.
적임자였다. 국무회의장에 들어서며 둘은 대화를 잘 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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