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이윤삼 편집국장 (yslee@sisapress.com)
  • 승인 2006.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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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나는 그녀의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내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박현욱씨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가 화제다. 책을 펴낸 지 2주일 만에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2위에 올랐다.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을 옆에 두고, 또 다른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파격이 사람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만교씨의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나 혼전 동거를 다룬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보다 몇 걸음 더 떼었다. 

이 책의 아내는 반란을 꿈꾼다. 연애할 때부터 한 남자에게 매이는 사랑을 거부했다. 남편은 아내의 사생활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결혼할 수 있었다. 예언처럼 아내는 또 다른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아내의 두 집 살림과 두 시댁 모시기와 임신·출산 이야기가 이어진다. 남편은 이 모든 상황에 몹시 혼란스러워하지만 결국 이혼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도 조금씩 ‘쿨한’ 남편으로 변해간다.

소설은 기존의 결혼 제도 틀로 볼 때 판타지에 가깝다.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가상 현실은 본질을 은폐한다. 작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안 찾기에 나선 듯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황이 나타날 때마다 남편과 아내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끈질기게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다.

이 소설은 독일의 진보적인 잡지 <매거진>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던 마르티나 렐린의 <나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다>를 연상케 한다. 그녀는 애인을 둔 기혼 여성의 이야기를 취재해 <매거진>에 소개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지닌 여성들에게 제보를 바란다는 광고를 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녀는 기혼 여성 23명을 인터뷰했고 그들의 ‘익명 고백록’을 책으로 펴냈다. 책 속에는 불륜·배신·복수의 장면 대신 애인과의 삶을 자신감 있게 이끌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렐린의 이야기도 우리에게는 판타지에 속한다. 여성들의 경제 활동 참여 정도나 68 학생운동 세대의 개방적 성의식, 자녀 없는 가정의 증가 같은 독일의 상황과 한국의 사회 경제적 맥락은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녀의 책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사회적으로 새로운 부부 관계에 대한 논의를 광범위하게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일부일처제’를 무너뜨릴 확실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모델은 아직 없지만 전통적인 부부 관계는 오래 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와중에서 구성원들은 많은 고통을 겪는다. 이 때문에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와 연습이 아쉽다. 청와대 행정관의 부인 살해 사건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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