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경제’ 지킬 균형 금리의 묘수
  • 홍성국 ()
  • 승인 2006.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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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경제통신]

 
최근 대부분의 나라가 금리를 올리면서 세계 금융 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은 2004년 6월에 1%이던 정책 금리를 올 3월29일 4.75%까지 끌어올렸는데 오는 5월 한차례 더 금리를 올리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미국이 4.50~4.75% 수준에서 금리 인상의 행보를 멈추리라고 보았다. 그러나 예상보다 미국 경기가 좋아지면서 일각에서는 5%를 넘기리라는 예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뿐만도 아니다. 다른 선진국들도 잇달아 금리를 올리면서 국제금융 시장은 새로운 불안정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경제는 저물가·저성장 구도의 디플레이션 경향이 두드러졌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공급 과잉 현상을 보이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투자가 감소했지만, 세계화 조류와 생산성 증대로 말미암아 공산품 가격은 오히려 안정세를 나타내 디플레이션이 세계 경제를 강타한 것이다. 이 결과 지난 4~5년간 각국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2004년 이후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아 물가가 오름에 따라 일시적으로 세계는 인플레이션 위협에 놓였다. 그러자 일본은 ‘제로(0)’ 금리를 인상하려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고, 유럽도 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시대에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자금 수요가 많아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최근의 금리 상승은 그만큼 세계 경기가 좋아지면서 디플레이션 위협에서 다소 벗어나고 있다는 긍정적 증거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의 세계 경기가 기본적으로 부채 구조에 의존해 회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금리 상승은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 축인 미국 경제는 전적으로 부채에 기대고 있다. 나라만 빚더미에 올라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재정 적자 3천억 달러, 경상수지 적자 7천억 달러뿐 아니라 미국 국민들의 부채 규모도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낮은 금리 탓에 모기지 대출이 크게 늘어나 부동산과 민간 소비에 거품을 형성시켰다. 

한편 9.11 테러 이후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으로 단기 고수익을 추구하는 헤지 펀드들도 많이 생겼다. 헤지 펀드들은 평균적으로 원금의 2~3배에 해당하는 자금을 차입해서 주식·환율·원자재 등에 투자해 왔다. 특히 금리가 매우 낮은 일본에서 엔화를 빌리는(엔 캐리 트레이드) 경우가 아주 잦았다. 따라서 일본의 금리가 오르게 되면 엔화를 차입해서 투자했던 투자가 처지에서는 빚 독촉을 받게 되는 것과 다름없어진다.

국제 금리가 올라가면 국가 간, 그리고 상품 간 자산 이동이 금리 부담 때문에 둔해진다. 특히 미국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저금리에 기반한 미국의 ‘부채 경제’가 흔들리면서 주가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소비 심리도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소비가 줄어들면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동아시아 경제는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일본이 본격적인 금리 상승 국면에 접어들 때도 엔화를 빌려 투자했던 펀드들은 사들인 자산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금리 위험 때문에 최근 국제 금융 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고, 한국도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일본의 금리 상승으로 약 9천억 달러(약 8백67조 원)로 추정되는(2004년 말 기준) 일본의 해외 투자 자금 가운데 일부가 일본으로 회귀할 경우 이 과정에서 국제 자금 시장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위기가 가시화한다면 미국도 달러 방어를 위해 추가적으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릴 경우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선진국들은 국제 공조 차원에서 금리가 지나치게 올라 부동산·주식 같은 자산 가격이 하락하거나, 반대로 적정 수준 아래에서 금리가 결정되어 자산 시장이 투기장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균형 금리를 찾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들이 달러 가치와 자산 가격, 그리고 물가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성장률을 추구하면서 이에 걸맞은 금리 수준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 완전 경쟁 그리고 공급 과잉이 유발한 세계적 차원의 부채 경제 구조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차선책이지만, 부채 경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균형 금리’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결국 올 상반기에 형성되는 금리 수준은 세계 경제의 생존을 좌우할만큼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공포의 균형 금리’의 중요성을 각국의 정책 당국자나 투자가들이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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