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밀착 고까운 미국과 일본
  • 김승웅 편집국장대리 ()
  • 승인 199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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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후 방한시 ‘우려의 念’ 표할지도…미국 조야도 “어디서 돈벌고 어디서 푸나”
 3년 넘게 추진돼온 ‘북방외교’가 새해를 맞아 ‘전방위 외교’로 바뀔 공산이 짙다. 지난 6일 로가초프 소련외무차관이 새해들어 방한 테이프를 처음 끊은 데 이어 9일에는 가이후도시키(海部俊樹) 일본총리 내외가 서울을 찾았다.

 2월에는 아키히도(明仁) 일본 국왕이 방한할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 3월이면 부시 미대통령의 방한도 가능할 성싶고, 잘하면 4월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얼굴도 서울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확실치 않으나, 盧泰愚 대통령의 외교수첩에는 금년 하반기쯤 盧·金日成회담의 개최일정도 잡혀 있는 것 같다.

 한반도의 핵심 이권세력인 미·일·소의 국가원수는 물론 북한의 김일성 주석까지도 올 새해를 기해 서울로 달려올 낌새가 역연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로 넘기기에는 상황이 너무 역동적이다. 그렇다고 사전 약속하게 진행되는 강대국 지도자들의 방한러시로 볼 수도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1백여년 전 구한말 당시의 상황, 다시 말해 한반도의 독점을 놓고 美·日·中·蘇 4개 열강이 벌인 각축전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점이다.

 1880년 ‘수신사’ 자격으로 일본을 찾아간 金弘集한테 駐日 청국참찬관(참사관) 黃遵憲이 써준 ≪似擬朝鮮策略≫에는 “러시아의 대한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은) 미·일·청국과 연합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정확히 1백10년 전의 일이다.

 한반도문제에 정통한 몇몇 서울 주재 서방외교관들은 지금과 그때 상황이 비슷하다고 본다. 한 관계국 중진외교관은 “가이후 총리나 부시 대통령의 가방속을 유심히 살펴야 할 것”이라고 귀띔하고 있다.

 서울을 찾는 두나라 원수의 의중엔 한·소간의 급속한 접근에 대한 우려가 담겨져 있음이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가이후 총리의 이번 방한은 형식적으로는 지난해 5월 노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답방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한일간의 해묵은 난제가 돼온 재일교포의 지문날인 철폐와 사회생활상의 지위향상 문제를 완전 매듭짓는 선물을 건네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소련과의 접근을 놓고 한·일 두나라가 묘한 경쟁관계에 놓여 있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정상은 이 문제를 “매우 조심스럽게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한 외교실무 당국자의 솔질한 표현이다.

 가이후 총리는 지난해 5월말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이 폐막되기 무섭게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소정상회담이 열리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노대통령으로부터 한마디의 사전 귀띔도 받지 못한 채, 급작스런 한·소밀착을 ‘어깨너머로’ 지켜봐야만 했던 가이후 총리로서는 샌프란시스코 한·소정상회담이야말로 두고두고 반추할 ‘痛惜의 念’이었다는 것이 서울에 주재하는 한 일본특파원의 표현이다.

 약체내각이라는 끈질긴 비난속에 북방 4개열도의 반환을 놓고 가뜩이나 힘든 대소교섭에 허덕여온 가이후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한·소밀착을 계기로 더욱 좁아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일 두나라의 ‘불편’은 구체적으로 소련에 대한 경제원조 분야로 압축된다. 일본의 대소 경제원조가 식량 생필품 등 ‘인도적’ 차원의 지원인 데 반해, 한국의 지원방식은 상당부분 ‘경제성’을 띰으로써 일본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의 대소 및 대북한접촉 방식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스크바를 거쳐 이제 막 평양을 노크하려는 한국의 북방외교가 일본의 외교적 생색과 容喙로 자칫 빛이 바랜다고 여기고 있는 탓이다.

 부시 미대통령의 방한도 비슷하게 풀이할 수 있다. 워싱턴에 주재하는 ≪시사저널≫ 안재훈 객원편집위원은 미국의 조야가 지금 한국에 대해 “어디서 벌어, 누구한테 뿌리는 거냐”며 거친 비난을 퍼붓고 있다고 알려왔다. 수입개방 요구에 대해 ‘계속 고집을 펴온’ 한국정부가 유독 소련에 대해서만은 ‘엄청난’ 규모의 원조를 아끼지 않는 데 대해 분통을 터뜨린다는 것.

 심지어는 지난번 12·27개각과 관련, “상공장관은 미국이 경질시켰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만큼 한국에 대한 불만이 고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지금 한창 국내의 정치 이슈가 되고 있는 군의료진의 페르시아만 파병도 알고보면 미국을 무마하기 위한 한국측의 유화조처의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의 국제질서는 재편되고 있다. 1백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실리를 바탕으로 한 재편이라는 것, 그리고 소련의 일방적 접근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한·소 양국간의 보합관계에 기초를 둔 재편이라는 것이다. 이 점 우리에게는 낙관적인 요소로 평가되며, 북방만을 대상으로 해온 외교방향을 전방위로 전환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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