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액기준 5%는 제3자 개입”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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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밀어붙이기’에 근로자측 반격…사용자도 “달갑잖은 일”

  총액임금제 5%. 이것은 노동부가 올해 임금교섭의 바다에 새로 띄운 배의 이름이다. ‘강성’ 이미지 때문에 노동단체로부터 일명 ‘최틀러’라 불리는 崔秉烈 노동부장관이 임금협상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기 위해 애써 만든 작품이다. 장관 재임기간중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총액임금제號’가 본격적인 항해를 앞두고 벌써부터 거센 풍랑에 부딪히고 있다. 근로자들 대부분이 총액임금제를 두고 “임금체계 개선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운 신종 임금 억제정책”이라며 반대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노총 전노협 업종회의 등 노동단체들마다 총액임금제 반대투쟁의 결의를 불태우고 있어 4~5월 임투에서의 노·정간 한판 대결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부터 총액임금제를 강력히 추진해왔던 노동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노동부의 주장은 선진국이나 경쟁국에 비해 매우 복잡한 임금체계로 인해 임금관리와 노사교섭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 부문의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각종수당과 복리후생비의 신설 등으로 실질인상률이 높아지면서 정부의 임금억제 방침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며 “물가앙등·기업 경쟁력 악화의 주된 요인이었던 임금상승은 그 원인이 잘못된 임금체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92년 노동통계’에 따르면 91년 현재 총급여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60.3%. 특히 공무원의 경우 임금 왜곡현상은 더욱 두드러져 기본급의 비중이 최근 몇 년 사이 50%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총액임금제 실시의 불가피함을 설득하기 위해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또 하나의 논리는 기업규모간·부문간 임금격차 해소론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서비스업체와 제조업체간의 임금격차 확대가 해당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기업들에겐 인력난과 경쟁력 상실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2월 고임금을 주도했던 상시 근로자수 5백명 이상 대기업 8백68개(대상종업원 90만6천명)와 3백명이상 서비스업체 3백42개(대상종업원 16만5천명)를 총액임금제 5%적용 중점관리 사업장에 포함시켰다.

  총액임금제는 지금까지 통상임금(기본급·통상적 수당)을 중심으로 인상률을 결정했던 임금교섭 방식과는 달리 통상임금에 ‘기타수당’·상여금까지 한데 묶은 급여총액으로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기본급을 적게 올리는 대신 각종 수당을 대폭 올려왔던 임금협상 관행을 뿌리뽑자는 것이다.

  노동부의 세부지침이 나온 것은 지난해 12월27일. 내용은 총액임금제를 실시하되 임금수준에 따라 인상률을 다르게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2월17일엔 총액임금제 적용사업장이 확정됐으며, 최근 중점관리대상업체의 명단이 공개됐다. 노동부는 세부지침을 각 사업장에 내려보내면서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관계부처 합동으로 해당기업의 관련자료를 검토한 뒤 제재를 가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근로자측 “노조운동 위축시키려는 의도”

  총액임금제가 무작정 반대할 수 없는 확실한 명분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근로자들은 총액임금제의 저의에 대해 크게 의심하고 있다. 비록 노동단체측의 자료이긴 하지만 지난 1월 서울지역노동자협의회가 소속조합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총액임금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는 노동부측에서 볼 때 ‘매우 우려할 만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60.8%가 “총액임금제는 임금인상 억제정책”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그 자체는 좋지만 노조운동을 위축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개입돼 있다”는 대답도 전체 응답의 24.3%나 되었다. 그러나 실제 노동현장에서 터져나오는 반대 목소리는 이와 같은 설문조사 결과의 강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특히 그동안 ‘한 자리수 임금 인상률’ 방침의 직접적인 희생양이 돼왔던 정부출연기관 등 공기업체나 저임금 업체임에도 불구, 중점관리 대상이 된 일부섬유·전자업체 근로자들의 경우 정부 방침에 대한 반발은 더욱 심하다. “임금수준이나 사업장의 영세성을 고려하지 않고 종업원 수만을 기준으로 마구잡이로 대상업체를 선정하는가 하면, 공무원 월급은 16% 이상 올리면서 중점관리 대상업체의 임금인상엔 총액기준 5%를 강요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같은 반발에 부딪혀 중점관리대상업체로 지정된 업체 가운데 섬유업체 등 일부 사업체를 관리대상에서 빼겠다고 발표했으나 반발은 여전하다. 정부출연기관의 한 곳인 서울대병원의 경우를 살펴보자.

  서울대병원이 정부출연기관으로 지정돼 정부의 임금억제 방침에 직접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78년부터이다. 현재 서울대병원의 전체 평균월급은 78만원으로 올해 확정된 공무원 전체 평균월급보다 30만원이 적은 수준이다. 노조측에선 이를 가리켜 “대학병원 가운데 최하위권”이라며 자조하고 있다. 노조측은 그동안 정부측 임금억제 방침의 입김을 상대적으로 덜 받아왔던 각종 수당과 가계보조비 급식비 교통보조비 체력단련비 등에서 ‘최소한의 인상’을 관철해 숨통을 터왔다. 그러나 노조원들은 이제 더 이상 그와 같은 이득을 바라볼 수 없게 됐다. 비교적 자율적인 교섭대상이었던 각종 수당이 총액임금에 포함돼 총액기준 5% 억제선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병원특과 단체협약안 협상을 진행중인 노조에서는 “도저히 받아들 수 없다”며 버티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병원측은 “정부 방침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의 宋補淳 조사기획부장은 “임금인상률을 5% 제한하는 것은 노동법상 명시된 ‘제3자 개입’ 금지조항의 사실상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정부측을 비난하고 있다.


사용자측, 단체교섭 미룬 채 눈치만 살펴

  이와 같은 사정은 다른 공기업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수당을 포함, 전체 10% 이상 임금인상 성과를 얻어냈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노조 許榮九 위원장은 “올해부터 이들 수당의 신설이나 증액이 전부 총액임금 5%선에 걸리게 됐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동안 각종 수당의 재원으로 사용된 사업비와 운영비에 대해 감사원이 ‘예산 전용’이라고 지적하자 정부가 ‘기본급 외 수당 완전동결’을 외치고 있어 직원들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의 의욕적인 총액임금제 도입 움직임과는 달리 사용자측은 그리 달가워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총액임금제 중점관리 대상으로 선정된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총액임금제가 올해 임투에서 노사관계를 악화시킬 것을 우려,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들 대기업 사용자측은 예정대로라면 이미 진행돼야 할 단체교섭도 미룬 채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는 상태이다.

  임금협상이 5월로 예정된 대우전자 홍보실의 한 간부는 “이미 대상업체로 지정된 이상 정부방침에 따르지 않을 수 없으나 현재로선 구체적인 협상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라고 밝힌다. 올해초 극심한 노사분쟁을 겪었던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노조측 집행부가 구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협상을 피하고 있는 중이다. 경남 옥포 대우조선 노조의 한 간부는 이처럼 노사협상이 미뤄지고 있는 데 대해 “총액임금제 철회투쟁을 위한 대기업 노조들의 공동보조를 막으려는 사용자측의 술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전노협의 가칭 ‘총액임금제 저지를 위한 전국노동조합 대책위원회’ 구성, 한국노총의 임금교섭 전면중단 계획 등 노동단체들의 엄포가 쏟아지는 가운데 총액임금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총액임금제가 제대로 실시되기 위해서는 기업별로 된 현행 임금교섭체계를 산업별로 바꾸고, 임금인상분을 제품가격으로 전가해 물가를 부추기는 독과점부터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정책연구실의 이정식 연구위원은 “총액임금제가 실시되려면 최소한 경제위기의 책임이 근로자들에게 있다는 정부 주장이 객관적으로 입증되고 정부가 임금협상에서 중립을 지킬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득정책의 측면에서 총액임금제에 원론적인 찬성입장을 보이고 있는 한양대 金在源 교수(경제학)도 “사용자에 대한 벌점주의를 지양하고 노조측에 대해서도 일정한 명분을 주지 않는 한 올 임투에서 한 차례 파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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