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관계 격상 바란다”
  • 피터 헤이즈 / 노틸러스 퍼시픽 연구소 대표 (sisa@sisapress.com)
  • 승인 199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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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비서, 뉴욕회담 앞서 미국측에 밝혀∙∙∙소득 없으면 핵문제 강경 선회할 듯

최근 유엔이 북한에 대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미국의 입지는 6월2일의 미∙북한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크게 강화됐다.  미∙북한 고위급회담은 북한과의 핵 교착 상태를 타개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5월9일~10일 이틀에 걸쳐 필자는 노동당대남사업담당비서 金容淳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북한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이 제시할 주요입장을 피력했다. 

 우선 고위급 회담과 관련해 김용순은 “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직접 회담을 통해 풀 수 있으며 그럴 가망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우리에게 의심을 품는다면 우리도 그에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의심을 품고 있다.  회담과 토의야말로 이러한 의심을 푸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용순은 미∙북한 고위급 회담에서는 핵 문제 뿐만아니라 미∙북한 관계개선 문제도 토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은 자국 회사들이 북한의 자유무역 지대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해 그곳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동북아 시장에 수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용순은 “미국이 우선 우리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영국이나 프랑스를 믿으면서 왜 북한은 못 믿는가.  신뢰를 쌓고 불신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팀스피리트 훈련중지, 남한내 미군기지 사찰,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 핵공격 금지 선언, 남한의 핵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않는다’는 정책 포기만으로는 미국의 대북한 핵 위협이 제거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신뢰를 쌓는 것이다.  한반도를 비핵화하고 핵 문제를 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임을 굳게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김용순은 이어 “우리는 어떤 부분은 의견일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순조롭게 합의를 보려면 기본적으로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  우리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웃고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의 문제는 단순히 핵 문제뿐 아니라 관계 개선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신뢰를 쌓으면 문제 해결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나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점을 되풀이 강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대화, 한번으로 끝내면 설득 실패
 필자는 만일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어느수준까지 격상할 용의가 없으면 북한은 이를 지속적인 핵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미∙북한 고위급회담은 북한 지도부가 생존책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김용순과 같은 사람들은 북한 경제가 유엔의 제재를 받아도 끄떡없으며, 김정일 체제 덕분에 ‘지도자-당-인민’간의 일체감이 더없이 튼튼하다고 떠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 정치 경제 및 안보면에서 모순에 빠져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북한은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에서 다음 두가지 전략 중 하나를 추구할 것 같다.  첫째 보수파와 강경파들이 핵 문제를 주도할 경우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국내적으로는 실용개혁 정책을 중단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사찰팀이 최근 북한에 입국했는데도 북한측이 핵재처리공장건설을 재개했다는 점은 강경파가 고의적으로 미국에 보낸 신호임에 틀림없다.  둘째, 김용순과 연계한 실용주의자들이 핵 문제를 주도할 경우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번복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제한적인 사찰을 받아들일지 모른다.  북한은 사찰에서 나타난 상위점과 기타 문제들을 국제원자력기구와 미국이 만족하는 선에서 해결하기 위한 ‘체면치례용’협상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미.북한 고위급 회담을 단 한차례만 연다면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 노동당 고위 인사들과 단계적으로 회담을 갖는다면 결과는 훨씬 생산적일 수 있다. 

 만일 미. 북한 고위급 회담이 핵 문제를 풀지 못하면 미국은 제재를 택하기 쉽다.  우선 미국은 대공산권수출규제(COCOM)조항을 들어 북한에 대한 기술이전을 규제하고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려 할 것이다.  그 다음 조처로는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막기 위한 해상 봉쇄도 예상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주요 외화 획득원을 차단하는 동시에 북한의 안보 당국에 미국의 분명한 결의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북한도 뚜렷한 반대급부를 얻지 않는 한 핵 선택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핵 문제는 6월12일 전에 풀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해결할 길도 요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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