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과소비에 중국‘新모순'갈등
  • 북경. 이욱연(자유기고가) ()
  • 승인 199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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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열매 편중 … 농민 · 저소득층 불만 고조

로데오 거리는 서울 압구정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하이나 광주(光州) 심천(深?) 등 개방을 상징하는 도시들은 접어두고, 도시 규모나 소득 수준 면에서 이들 도시보다 좀 떨어지는 사천성 성도(成都)의 경우를 보자.

 이 도시의 번화가인 춘지로 부근에는 고급 수입품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들이 60여 곳 줄지어있다. 이른바 귀족복장가다. 거리 이름에 걸맞게 상품은 모두 귀족스러운 것 일색이다. 라꼬스떼 양복 한 벌이 2천3백元(한화 23만원. 중국 돈과 우리 돈의 환율은 1:100이다), 이탈리아제 구두가 6백80위안(元), 2백위안짜리 여자 내의, 3백위안짜리 스웨터, 1백위안짜리 브래지어, 3백위안 이상인 프랑스제 넥타이 등등.

 넥타이 하나, 여자 속옷이나 스웨터 한 벌 값이 고수와 노동자 한달 월급과 맞먹고, 양복 한 벌 값은 북경의 택시 운전사들이 하루 12시간씩, 그것도 휴일 없이 한달을 뛰어야 겨우 만질 수 있는 돈에 버금 가는 셈이다.

 이런 고급 외제품을 사는 귀족 고객은 주로 유명 연예인과 개체호(個體戶)들이다. 연예인이야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개체호가 주요 고객이란 사실은 개혁 개방을 상징하는 현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개체호, 뱀요리 즐기며 밍크코트 과시
 개체호란 개혁 개방 이후 생겨난 계층으로 개인 상공업자를 지칭한다. 중국 공상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작년말 현재 개인 상공업체는 총 1천5백33만개 가량이다. 대기업에서부터 조그만 음식점을 경영하는 사람까지 모두 포함한 것으로, 개혁 개방 이래 최고의 수치다.92년말 현재 연수입 3만위안(3백만원)이상인 고수입자 4백30여만명 가운데 대부분을 이 개체호 계층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신자본가라 할 이들 계층은 소득이나 소비면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

 개체호의 소비 수준을 보면 이들의 수입이 얼마쯤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한 통계에 따르면 북경 지역 일반 개체호의 경우 매월 1인당 약 2백50위안(2만5천원)을 식비로 지출하고 있다. 이보다 수입이 많은 사람의 경우 약 4백위안(4만원)을 지출한다. 1인당 식비에 이 만큼 쓸 정도면 월 수입이 최소한 2천위안(20만원) 이상이라야 가능하다. 이들은 2만위안 하는 핸드폰을 부의 상징으로 들고다니며, 고급 백화점에서 1만위안(1백만원)을 호가하는 밍크코트를 사고, 6백위안(6만원), 7백위안(7만원) 하는 고급 뱀요리를 먹기 위해 줄을 선다.

 지난 8월21일 <人民日報> 독자투고란에는 한중학교 2학년 학생의 짤막하지만, 간곡한 투고가 실렸다. 내용을 간추리면‘최근 몇몇 학우들이 학비가 너무 비싸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학교 학비는 1학년은 1학기가 200위안 2학기가 90위안입니다. 3학년은 1학기가 1백10위안 2학기가 1백20위안입니다. 친구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학비를 내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다. 현재 중국의 문맹 인구는 약 2억명, 세계 문맹자 4명 가운데 1명이 중국인이다. 그러나 이 문맹 인구는 줄어들 기미가 안보인다. 해마다 최소한 약 1백만 명의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채 문맹 대열에 합류하기 때문이다.

 우리 돈으로 1만원이 없어 해마다 우리 나라 직할시 인구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1백만원짜리 밍크코트가 날개돋친 듯 팔린다.얼마전 중국 공산당 중앙당학교 철학과 왕위광(王偉光)교수가 현재 중국 인민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 요소가 존재한다면서 들고 나온‘중국 인민 내부 모순론??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인민 내부 모순??이란 말은 많은 중국인에게 비정한 계급 투쟁,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진다. 반우파 투쟁과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진 참혹한??좌경 20년??에 불을 당긴 것이 다름 아닌 모택동의 인민 내부 모순론이었기 때문이다.

‘신시기 인민 내부 모순을 저확히 처리하자??라는, 모택동이 57년 반우파투쟁을 시작하면서 발표했던 논설 제목에??신시기??만 추가한 이 논설의 골자는 이렇다. 현재 중국 인민사이에 이익 모순, 즉 소득 격차로 인한 인민상호의 모순과 갈등이 심각하며, 이를 정확히 처리하지 않을 경우 적대적 모순으로 변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이 논설은 5월17일자 <光明日報>에 실렸다. 그의 논설이 농촌간, 계층간 소득 격차에 중국 정부와 언론, 학자들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던 시점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 논설이 발표되기 전, 중국사회과학원 사회학연구소가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중국 경제 발전의 가장 큰 장애를 둘 택하라는 질문에??인구가 너무 많다??(56.2%)에 이어??사회 분배의 불공정??(43.3%)과??도?농 간의 소득 격차가 지나치게 크다??(25.41%)를 택했다.

개방 찬성하나 소득 격차에 소외감
 중국에서 개혁 개방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한 채 소외되어 있는 저소득층은 지식인과 노동자·농민이다. 특히 지식인 계층은 개혁 개방의 주창자이면서도 그 경제적 과실을 전혀 누리지 못해 경제적 불만과 소외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또 사상의 시대에서 돈의 시대로, 관념의 시대에서 물질의 시대로 급격하게 옮겨가면서 정신적 가치가 무시당하는 데서 오는 정신적 위기감이 크다. 북경사범대학 철학과 진진개(57·陳振開) 교수는“머리에 아무리 고사한 지식이 들어 있어도 무슨 소용인가. 누가 밥벌이도 안되는 문화와 학문에 종사하려 하고, 돈 없는 지식인을 안중에 두며, 지식인의 길을 가려 하겠는가. 요즘 대학생들의 가장 뜨거운 화제는 돈을 벌 것인가, 공부를 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한다.

 지식인들이 가난과 사회적 지위 하락에 강한 불만을 갖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개혁 개방자체에 불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낙후된 중국의 부흥을 위해서는 개혁 개방이 필연적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대부분의 지식인은 등소평이 좀더 오래 살기를 바란다. 문제는 지식인들이 당분간은 개방에 대한 공감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천안문 사태의 주역인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이다.

 지식인들이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개혁 그 자체에는 동의한다는 점, 그리고 대다수 지식인은 상대적으로 더 입고 있는 도시에 산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중국 사회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은 도시와 농촌의 빈부 격차이다. 올 봄에 일어난 사천성 농민폭등은 농민들이 갖고 있는 분노의 일단이 드러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돈이 없어 학교에 못 다니는 학생들도 거의 농촌지역 아이들이다. 7월20일에 발표된 국가통계국 통게에 따르면, 올 1/4분기 10개 주요 도시의 1인당 생활비 수입은 심천이 1천5백39위안으로 가장 높고, 북경이 7백83위안으로 그 절반이다. 조사 대상 도시 가운데 가장 수입이 낮은 하얼빈은 북경의 절반 가량인 4백90위안이다. 심천과는 무려 1천위안이 넘게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 통계는 도시 지역, 그것도 규모가 큰 도식 간의 1인당 소득 격차를 조사한 것이다. 내륙 농촌 지역의 주민 소득을 비교하면 이 정도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北京靑年報>에 따르면 92년 도시 지역 평균 GNP는 4천위안 가량이었지만 총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민의 평균 GNP는 7백위안으로, 5.7배 차이가 난다. 이 가운데 2백위안 이하가 약 6천만 명이나 된다.

지역 불균형, 민족 분쟁 씨앗 될 수도
 올해 들어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경기가 과열해 인플레 조짐을 보인 올 상반기 도시 주민 평균 소득은 1천1백16위안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8% 증가했다. 도·농간 소득 격차는 약 2.7배이고, 더구나 농촌 지역은 소득 증가율에서도 도시의 절반밖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올 상반기 통계에 나타난 도·농 간의 소득 격차는 개혁 개방 이래 최고로 높은 수치다.
 사실 도·농간 소득 격차는 근대화 과정에서 어느 나라나 겪기 마련인 일종의 통과 의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의 경우가 특별히 사회불안 요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소득이 극히 낮은 농촌 지역이 대부분 소수민족 거주지라는 점 때문이다. 빈부격차 문제가 민족 문제와 결합되어 상승할 여지가 다분한 것이다. 사회과학원 사회연구소가 낸 92, 93년도 정책보고서는, 정부가 이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면서‘경제 차이가 지나치게 커져 민족 관계에 나쁜 영향을 가져오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이후 특별히 중시할 문제??라고 건의하고 있다.

 분쟁의 소지가 가장 많은 지역은 개발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신강(新講) 영하(?夏) 감숙(甘肅) 등 서부 내륙의 소수 민족 거주 지역이다. 특히 신강이 가장 위험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얼마전 국제인권위원회에서도 거론된 바 있는 이 지역은, 민족주의자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데다 개방이후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회학연구소 주경방(朱慶芳) 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개방이 시작되던 해인 78년 신강의 임금은 상하이?운남(蕓南) 귀주(貴州) 등지보다 높았다. 그런데 91년에는 감숙?신강?영하의 소득이 상하이보다 24~29%가량 낮다. 그런데 이 차이가 개선되기는커녕오히려 더 벌어지는 추세다. 이들 지역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92년 등소평의 남순(南巡) 이후 중국 개혁 개방은 고속으로 전진하고 있다. 그 속도감은 다른 나라들이 두려움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파란불과 빨간불 사이에 서 있다. 중국 정부가 중국인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제가 올 들어 불안을 드러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실시한 거시통제 조처도 아직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고 기업들은 자금이 마라 애가 탄다. 올 가을 경제 파탄과 그로 인한 위기설이 중국 기업가들 입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경제혼란이 엄습하고 빈부 격차로 인해 발생한 인민 내부 모순이 적대적 모순으로 전화되어 폭발할 때, 이는 중국의 미래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이는 미국 등 중국 사회주의의 붕괴를 염원하는 나라들이 그리고 있는 설계도이기도 하다.

 이와 반대로 현재로서는 등소평이 사망한 다거나 하는 돌발 사태만 없다면 그 확률은 높지 않다는 견해도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개혁 개방만이 중국의 살길이라는 대의에다, 다시 한번 중화를 일으켜 세우자는 특유의 중화의식에서 거의 모든 중국인들이 합의하고 있고‘이게 무슨 사회주의야??라며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있는 보수파들을 통제할 능력이 지금 개혁파에게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경제 혼란과 심각한 빈부 차이로 인한 갈등이 중국 사회 지층에서 용암처럼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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