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휴전선’ 없애야 한다
  • 이성남 기자 ()
  • 승인 199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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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신설을 계기로 본 남북문화교류

 문화부 신설과 함께 남북한 문화교류 문제가 본격적으로 토의될 전망이다.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 통일에 기여한다는 문화교류의 당위성은 이미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본지는 그간의 남북문화교류 현황과 함께 북한이 우리의 예술을 보는 시각 그리고 우리가 보는 북한의 예술을 살펴보면서 남북문화교류를 전망해본다.

 조류학자 원병오교수(경희대 · 생물학)는 90년 새해를 맞아 그 어느 때보다 기대에 부풀어 있다.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올 봄 북녘 고향땅을 밟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북한의 새들을 연구하기 위해 11월에 방북하겠다는 신청서를 정부 당국에 제출했으나, 10월말에야 승인이 나는 바람에 부득이 방북계획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서 초청장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간접적으로 들은 얘기지만 북한측에서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라고 원교수는 말했다.

 89년을 전후해서 일기 시작한 남북문화교류 논의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으나 88년 여름, 윤이상씨의 남북음악축전 제의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남북작가회담 제안, 그리고 89년의 문익환목사와 황석영씨, 임수경양의 방북 등 일련의 충격들은 결과적으로 남북문화교류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지난해 동유럽에서 개혁의 뉴스가 잇따라 들려오자 남북교류 논의는 각분야에서 ‘붐’처럼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번져나갔다. 그러나 남북문화교류가 간단히 실현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남북적십자회담 7차접촉에서 곧 실현될 듯하던 고향방문단 상호방문이 북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서울공연과 텔레비전 생중계 문제로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적십자 차원의 문화교류마저 벽에 부딪힌 것이다.

 90년 벽두, 문화부가 신설되면서 그간 논의 · 연구되어오던 남북문화교류 문제가 적십자 차원을 떠나, 문화예술계와 학계에서 90년대의 본격적 과제로 떠올랐다. ‘문화의 휴전선을 없애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 민족통일에 기여한다’는 내용으로 요약되는 남북문화교류의 당위성은 그 공감대를 폭넓게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오는 1월 하순 이어령 문화부장관이 통일원과 함께 남북문화교류의 방향과 원칙을 발표하는 것을 계기로 그간 ‘북측에 제의, 정부 당국의 승인’이란 소극적 단계에 머물러 있던 교류가 한걸음 나아가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등 민간단체들의 교류사업이 본격화되면 남북문화교류는 새로운 양상을 띨 전망이다.


학술분야가 문화교류 물꼬 틀 듯
 실제로 남북한 문화교류의 경험은 85년 남북 고향방문단의 교환에 따른 남북한 예술단의평양과 서울에서의 공연이 분단 이후 지금까지 유일한 것이었다.

 남북문화교류 움직임 가운데 가장 먼저 실현될 것으로 보이는 학술분야는 원병오교수에 의해 물꼬가 터질 것 같다. 경희대 사학과의 학술답사팀이 1월 초순 현재 통일원으로부터 북한접촉 승인을 받아놓고 있으면 고려대가 추진중인 북한의 김책공업대학과 김일성대학과의 학생교류 계획도 고대 출신의 재미교포가 평양을 방문하면서 눈앞의 현실로 드러날 전망이다.

 남북문화교류 추진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문학분야는 80년대 중반 ‘민족문학’ 개념이 등장, 통일에 기여하는 문학운동과 연결되면서 사회적으로 그 활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한편 문학계 내부에서는 납 · 월북 문인들 작품의 해금에 따른 ‘반쪽 문학사’의 극복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북한 원전소설 출판으로 북한문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김승균 일월서각 대표 등 출판인들이 주축이 되어 89년 3월 발족한 민간기구 ‘남북문화 교류 협의회’는 “문화교류를 통한 단계적인 민족동질성 회복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통일에 접근하는 첩경”이라는 창립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의욕적인 출발을 했으나 89년 봄 이후의 이른바 ‘공안정국’과 ‘창구 일원화’ 정책 때문에 민간문화교류운동은 큰 성과를 나타낼 수가 없었다.


북경아시안게임에 큰 기대
 문학이나 학술분야의 활발한 교류추진 움직임에 비해 미술 · 연극 · 음악계 등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실정이다. 88년, ‘남북합동음악제’ ‘범민족미술대전’ 제의가 있은 뒤로는 뚜렷한 움직임은 드러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연극계에서는 지난해 연말, 민중극단(대표 정진수)이 송년 특별공연 작품이었던 <게사니>의 평양 공연을 신청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편 대중 문화 분야에선 처음으로 가수 이선희양이 지난 연말 평양공연을 신청했다.

 서울대 작곡과 이건용교수는 “현재 우리의 음악상황이 분단의 결과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또한 남한의 음악을 확장시키는 것이 곧 통일 이후의 우리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라고 말한다. 이교수의 “인식의 대전환이 없는 교류는 오히려 문제를 낳을 것”이란 지적 역시 남북문화교류 추진에 있어 반드시 음미하지 않으면 안될 대목일 듯하다.

 북한 현대문학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서울대 권영민교수는 “북한의 남학문학에 대한 시각이 부분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면서 “서로 우월성만을 강조해서는 안되며 서로를 인정하고 공감대를 찾는 순서를 밟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본지 89년 12월31일자 참조).

 이와같은 원론적인 교류방안이 무성한 반면 사회과학 서적 출판계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 김태경회장은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김회장은 남북 자유왕래를 실현하겠다는 지난 1월10일의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 대하여 “정치권의 천명과는 달리 출판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텔레비전 중계에서 경험한 것처럼 적어도 우리 국민들은 스포츠에서는 이제 북한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 지난 신년초 KBS가 실시한 국민의식 조사에서도 우리 국민들의 대북한 시각 변화를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북한과 미국이 축구시합을 벌인다면 8할이 북한을 응원하겠다”는 앙케트 결과는 남북문화교류 추진에 하나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모든 문화예술이 ‘당과 주체사상의 기치’ 아래서 창작되는 북한의 현실과 개인 혹은 개인이 주도하는 단체가 이끄는 우리 문화현장과의 차이를 지나치게 단순한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보다 적극적이고 대승적인 자세와 북한정책의 변화, 즉 대남접촉에서 정치 · 군사적 현안을 우선하는 기존 정책의 변화 여부에 따라 남북문화교류 실현의 기상도가 달라질 것이다.

 올 상반기 중으로 남북총리회담이 열리고, 남북체육회담을 통해 남북한이 단일팀으로 올가을 북경아시안게임에 참가한다면, 그래서 각종 문화행사에 남북한의 문화예술인 · 학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악수를 나눈다면 남북문화교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서울예술단공연에 대한 북한 ‘관평’
다음은 지난 85년 평양에서 있었던 서울예술단 공연에 대한 북한 평론가의 글로《조선문학》86년 1월호에 실린것이다. 북한의 문화예술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는 이때. 정작 남한에 대한 북한의 시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실정이다. 본지는 최근 남북교류의 걸림돌 가운데 하나였던 <꽃파는 처녀>에 대한 우리 전문가의 평론을 싣는 것과 함께. 한국예술에 대한 북한측의 시각을 발췌한다.

 분단의 장벽을 뚫고 40년만에 마련된 평양예술단과 서울예술단의 호상 방문공연! 민족사에 대서특필할 력사적인 그 시간 온 겨레는 오고가는 그 길우에 5천년을 이어온 민족의 혈맥이 다시금 뜨겁게 흐르고 맥박치기를 절절히 바랐다. 그러나 우리가 괴뢰 서울예술단의 공연을 통해 목격한 것은 놀랍게도 한 겨레의 피줄을 이은 민족의 모습이 아니라 매국배족의 검은 독물이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우리 당은 민족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서 항상 부르죠아반동문화를 반대하는 동시에 복고주의를 반대하여 투쟁하여 왔습니다. 민족예술을 발전시킨다고 하여 결코 복고주의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복고주의를 철저히 극복하여야 우리의 민족예술을 현대적 이감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 침투로 하여 민족의 고유한 모든 것이 여지없이 짓밟히고 유린당하여 양풍, 왜색왜풍에 물젖고 복고주의의 진흙탕 속에 빠져 있는 남조선의 ‘예술’은 말세의 풍조가 짙게 드리워 단발마의 모지름을 쓰며 허우적거리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그들이 이른바 ‘전통문화’의 대표작이라고 하면서 내놓은 종교무용<승무>와 궁중무용 <태평성대> 그리고 <전통음악>이라는 것을 통해 꿰뚫어볼 수 있었다. 장삼을 걸친 녀승이 음침한 절간의 불탑을 향해 절을 하는가 하면 뒤이어 따분한 목탁소리에 맞추어 무엇을 덮칠 듯 말 듯 목을 움츠리고 느릿느릿 돌아가는 꼬락서니…이처럼 종교적인 신비세계를 추구하는 이 무용은 우리 민족의 생활감정이라고 할 수 없는 거칠고 위압적인 춤가락과 률동을 취하고 있으며 무용반주도 목탁소리를 그대로 리용하고 있다.

 특히 불탑앞에 무릎을 꿇고 맹목적으로 례배하는 녀승의 모습에는 ‘전세’에서 이미 정해진 운명에 순종하여 ‘현세’의 고통을 ‘착한 행동’으로 참아내면 ‘래세’에는 ‘극락세계’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반동적인 불교의 교리가 그대로 체현되여 있었다.

 분명히 상전의 사대매국정책을 도와나서야 했던 괴뢰 서울예술단에 있어서는 이렇게 착취사회의 불합리성을 가리워주고 계급투쟁을 무마시켜주는 <승무>의 이러한 사상주제적 내용이 필요했을 것이다.(중략)

 보다싶이 괴뢰 서울예술단은 민족의 ‘얼’과 ‘겨레의 민족적 정서’가 깃든 작품들을 보여준다고 횡설수설하였으나 실지에 있어서는 이미 력사의 오물로 되여버린 반동적인 유산만을 복고찬미함으로써 사람들을 자기의 계급적 처지도 모르고 오직 미제와 전두환괴뢰도당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노예로 길들이려고 책동하였다. 그들은 감히 민족의 ‘전통문화’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지껄이기전에 민족적인 것이란 그 어떤 경우에 있어서나 인민적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워낙 인민을 등진자들이니 이 진리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또 리해하려고 하랴?(중략)

 그런가 하면 ‘순수예술’의 견지에서 새롭게 창작한 ‘성과작’이라는 무용 <꽃보라>와 <2000년대를 향하여> 그리고 그 무슨 <서울찬가>라는 것을 무대 우에 올렸다. 우의 작품들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꽃보라>는 내용과 형식이 분리된 얼치기무용으로서 우리민족의 미풍량속을 철면피하게 외곡모독하고 있다. 상투를 틀고 비녀를 지른 남녀 무용수들의 모습을 보면 봉건사회의 청춘남녀가 분명한데 꽃피는 봄날 사랑을 주고받는 그들의 춤동작은 꼭 양키식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서로 넘보며 빙빙돌다가 그럴 만한 전제도 없는데 덥석 포옹하군 하였다. 더구나 남자 무용수가 공중에 들어올렸던 여자 무용수를 무릎 우에 눕히고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키스까지 하는데는 실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전날 ‘정든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눈만 방긋’하던 고상한 우리 조선녀성들을 이처럼 더러운 갈보년으로 모독하는 자들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는가. (중략)

 우리는 이 하나만으로도 양킹문화에 오염되고 중독된 퇴폐한 남조선 예술의 일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중략)

 괴뢰 서울예술단은 이따위 ‘예술’을 통해 인민들의 이목을 민족적 대립과 계급적 갈등이 첨예화된 남조선 현실에서 떼내여 극단한 개인 리기주의를 추구하는 데로 이끌어감으로써 그들의 혁명정신과 투쟁의욕을 짓밟아 뭉개려고 획책하였던 것이다. 결국 괴뢰 서울예술단은 이번에 온겨레를 향해 저들이 민족화합과 신뢰를 이룩하기 위한 ‘대의명분’을 지녔다면서 ‘전통문화’가 어떻고 ‘현대예술’이 어떻다고 별의별 너스레를 다 떨었지만 그 막뒤에는 음흉하게도 우리 인민의 민족자주의식과 민족적 존엄을 말살하고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반동적 목적을 실현해주기 위해 날뛰였던 것이다. (중략)

 력사는 민족자주의식과 자부심이 강한 인민은 필승불패이고 그 넋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신성한 조국 땅에 민족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그 소중한 넋을 더럽히는 예술아닌 ‘예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민족의 수치이고 비극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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