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에 펼쳐지는 저 편의 삶
  • 유지나 (영화평론가)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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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한령의 세 처녀

제작 : 조선예술영화 촬영소
       삼지연 창작단
제작연도 : 1985년


 지난 4월27일, 통일원 산하 ‘공산권 정보자료센터’ 주최로 상영된 <설한령의 세 처녀>는 분단된 저 편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필름에 대한 구체적 해석, 비평에 앞서 일반적인 북한영화의 상황을 거칠게나마 들여다 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남한에서는 허구적 이야기를 다룬 필름을 ‘극영화’로 통칭하는 반면, 북한에서는 지어낸 이야기를 다룬 필름을 ‘예술영화’라고 부른다. 예술영화란 명칭하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필름이 예술영화가 될 수 있는가를 가리기 전에, 북한 또는 공산주의식의 예술영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정의하는 ‘예술’은 사회주의적 혁명에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어야 하며 사회주의적 인간형을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북한에서 말하는 ‘영화예술’은 주체사상과 혁명투쟁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그 방법론과 의의를 설명한 것으로는 김정일의 ‘영화예술론’이 최고봉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북한영화는 제작에서 평론에 이르기까지 김정일의 ‘영화예술론’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런 영화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적 기준에서 북한영화를 영화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것이 이 글의 또 다른 한계이다.

 이 영화는 안개 낀 백두산 천지를 보여주는 화면으로 시작해서 험난한 백두산 준령을 오르내리며 벌목꾼들에게 공산당기관지를 배달하는 세 여성(순정, 명숙, 옥난)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장면들로 이어진다.

 주인공 순정의 백두산에 대한 사랑과 당에 봉사하는 열성이 묘사되면서, 통신대 출신의 장래가 유망한 청년 벌목원인 석진이 등장한다. 안일한 삶에 젖어 있는 명숙은 좀더 편하게 살기 위해 열성분자인 순정을 도회지(평양)로 보내려고 석진과의 관계를 도와주는 척하면서 순정과 석진의 사랑을 방해한다. 석진과의 사랑에서 상처를 받은 순정은 도회지로 갈 생각을 하지만 개인적 사랑보다 당과 백두산에 대한 사랑이 앞선다는 사실을 깨닫고 설한령의 배달원으로 남기로 결심한다. 순정의 진심을 뒤늦게 깨달은 석진은 다시 순정을 사랑하게 되며, 이 두 사람은 백두산에 남기로 결심한다. 해피엔딩으로 약간의 멜러드라마적 톤 속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순정이 세 번씩 거듭 되뇌이는 백두산에 대한 시(‘아, 내 한 생, 어디서나 백두산에 오르리라./내가 죽어 꽃이 되면, 백두산에 피리라’)는 결국 당과 김일성에 대한 사랑을 백두산에 비유해서 표현한 것이며, 이 영화 속의 모든 갈등은 결국 백두산과 당에 대한 사랑으로 해결된다.

 여러 차례 나타나는 백두산의 장엄한 모습과 빽빽이 들어선 거목들이 우리에게도 저런 자원이 있었구나 하는 감개무량한 느낌을 갖게 할 정도로 영상미가 관심을 끈다. 반면에 인물에 대한 촬영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카메라와 정해진 길이의 커트편집 때문에 영화의 형식적 재미나 실험적 영상을 시도한 흔적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북한영화를 우리의 자로 재는 것도 무리지만, 이 영화 속에 나타난 그들의 당에 대한 희생적 사랑이 감동적이라기보다 억지처럼 보이는 것은 북한영화가 기법상 갖는 도식성에 기인하는 것이지도 모른다.

 북한영화의 서울 상영은 부인할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 우선 북한사람들의 생활방식에도 최소한의 인간적 면모가 있다는 점(예를 들어 가까운 친지 사이에는 ‘동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북한을 이해하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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