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보’분규 가닥 잡힐까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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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 사 팽팽한 대립 “노조 파괴 공작”“노조 내부 주도권 다툼”


 동부그룹 산하 (주)한국자동차보험(이하 자보)에게는 올 한 해가 가장 고통스러운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지난 봄 노동부가 ‘그룹 총수 구속’이라는 충격적인 카드를 들고서 적극 중재에 나서 5월3일 극적으로 진화에 성공했던 이 회사 노사 분쟁이 7개월 만에 새로운 불씨로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보 노조(위원장 김철호)측은 12월9일 ‘회사측이 5 · 3 합의 사항을 어기고 노조 파괴 기도를 다시 시작했다’고 주장하며 감준기 그룹 회장, 김택기 사장을 포함한 회사 임원 33명과 보직자들을 ‘부당노동행위’혐의로 노동부에 고소했다. 이에 앞서 노조 집행부 소속간부 39명은 12월1일부터 노조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노조사무실에 모여 20여일째 농성을 진행중이다. 이에 따라 노동부 서울지방노동청은 고소가 접수된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 협의에 대한 재조사 작업에 들어간 상태이다.

 이번 사태에 직접적인 발단은 지난 11월 노조 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실시한 대의원 선출 과정을 둘러싸고 비롯되었다. 노조측은, 이 기간에 회사가 개입해 이미 직접 · 비밀 무기명 투표로 선출된 분회장 및 대의원들 가운데 ‘강성’이라고 점찍은 사람들은 사퇴시키거나 불신임시키고, 회사측이 미는 인물로 교체시키는 방식의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이 때 김준기 회장을 포함한 피고소인 33명이 적극 개입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있었다는 발언 수십가지를 부당노동해위 증거로 고소장을 적었다. “회장의 사고가 바뀌지 않았으니 지금의 노조 집행부는 존립할 수 없다. 스스로 사퇴하면 과거는 불문에 부치마.” 주로 이런 종류의 발언들을 부당노동행위 증거로 제시한 노조축은, 이를 이유로 12월4일로 일정이 잡혔던 대의원대회를 무기 연기한 채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이번 사태는 노조 내부의 주도권 다툼일 뿐 회사는 노조 일에 일절 개입한 바 없다”라고 맞서고 있다. 노조의 노선 갈등에서 비롯된 내부 문제를 회사측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해 노조 집행부의 책임을 희석하려는 의도라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회사 내부 문제를 계속 외부로 확산해 해결하려고 하는 현 노조 집행부의 자세 때문에 회사의 공신력이 실추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고소 시점이 김회장의 대통령 면담 다음날이어서 회사측이 더욱 불쾌해한다.

노동부 “특별 근로감독 검토하겠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번에 다시 볼거져 나온 자보 노사분쟁은 형식 면에서는 지난 3월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분규 상황과는 양상을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노동부가 이례적으로 김준기 그룹회장까지 직접 소환해 조사를 벌이며 강경 대처했던 부당노동행위의 핵심은 사용자가 직접 지시한 ‘노조 파괴’문제였다. 김준기 회장의 지시로 3월16일부터 1주일 동안 무려 1천52명의 조합원이 집단 탈퇴함으로써 발단이 됐던 당시 자보 분규는, 노동부가 강경 개입해 탈퇴자를 모두 원상복귀시키고, 이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는다는 데 노사 양측이 합의함으로써 일단락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새롭게 쟁점이 된 문제는 노골적인 노조 파괴가 아니라 ‘노조 집행부 교체’이다. 노조측은 이 문제를 ‘회사가 개입해 집행부를 교체시킨 뒤 합법적으로 노조 해산을 선언하려는 공작’이라고 간주하고 그같은 기도를 중지하라고 나선것이다. 이에 반해 회사측은 노조 집행부의 지도력 저하에 따른 내부 분열 문제를 회사측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다.

 이번 사태로 노동부가 개입해 마련한 ‘5 · 3 합의안’이 파국 위기를 맞고 있지만, 자보 분규는 5 · 3 합의 직후부터 불안정한 항로를 달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회사측은 5 · 3 합의 직후 경영합리화 조처로 1백7명에 이르는 간부 사원에게 퇴직을 종용함으로써 합의서 이행을 둘러싸고 노조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노조는 관리직 사원들에 대한 대규모 퇴직 종용과 관련해 5 · 3 합의서 제8항 ‘회사는 고용 안정에 최대한 노력하며 기구 축소 및 인원 감축이 경영상 불가피한 경우 노조와 사전 협의한다’는 항목을 들어 약속 위반이니 중지하라고 몇차례 촉구했다고 말한다.

 이들 정리해고 대상자 중 40여 명은 사직을 거부한 채 버티다 7월12일자로 사직원을 낸 채 임시 사무실을 차리고 현재 회사측을 상대로 해고 무효를 다투는 소송을 진행중이다.(《시사저널》 제213호 커버 스토리 참조). 결국 회사측은 5 · 3 합의 이후 그 이행을 돌러싼 내부 분규에 휘말려 서로 다른 두가지 소송으로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 전개로 지난 5월 자보 노사분쟁에 개입해 ‘대타협’을 이끌어낸 노동부의 체면은 말이 아니다. 이를 반증하듯 이인제 노동부장관은 지난 12월10일 긴급 소집된 국회 노동위원회에 참석해 자보 분규가 노동계의 현안으로 떠올랐음을 강조하면서 노동부의 대응 방침을 이렇게 밝혔다.

 “자보의 노사관계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구릅에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있는데 동부그룹에 대해서도 노사관계에 대한 전문적 진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고소된 사항은 철저히 조사해 법에 따라 엄중히 조사할 것이며 특별 근로감독 필요성을 적극 검토하겠다.”

김대통령도 김회장 면담 때 특별 언급
 그는 이어 자보 노사 문제는 해를 넘기지 않고 해결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보다 이틀 앞선 12월 8일에는 김영삼 대통령도 자보 노사 문제를 특별히 언급했다. 30대 그룹 총수 개별면담의 일환으로 이 날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을 청와대로 부른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노사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해 분규가 발생치 않도록 해달라”는 주문을 빠뜨리지 않았던 것이다.

 미묘한 식에 잇달아 나온 정부측의 ‘관심’과 때마침 겹친 노조의 농성으로 회사측은 몹시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게다가 한국노총마저 이례적으로 이 문제를 내녀도 노 · 사 · 정 협력을 내다보는 시금석으로 연결지을 태세로 보임에 따라 자보 분규는 단위사업장 차원을 넘어서는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게 한다. 한국노총의 한 간부는 “노 · 사 · 정 3자 협력으로 경제를 살리자는 분위기를 만드는 단계에서 한국자보와 같은 사용자 자세가 남아 있다면 굳이 노동계가 노사협력 정책에 집착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심각한 내부 논의가 있다”라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12월18일 노총 산하 보험노련이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기로 한 ‘자보노조 탄압중지 촉구 결의대회’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측은 감정적 대응을 피하고 노사 간의 자율적인 문제 해결 원칙을 내세우며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이 문제가 이미 ‘부당노동 행위’차원을 넘어섰다고 주장하며 5 · 3 합의 당시 책임의 한 당사자인 정부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야만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보는 처지에 따라 ‘새로운 노조 파괴 공작’‘노 · 노간 대립’‘노 · 사 · 정 협력의 시금석’등으로 달리 해석되고 있는 자보 노사분쟁은 현재 진행중인 노둥부의 조사가 끝나는 연말쯤에야 그 성격과 해결의 가닥이 잡힐 것 같다.
丁喜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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