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내몰린 “전교조 같은 행동”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1.08.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여자상업학교, 직위해제 · 구교협 교사간 갈등 심화

 서울 중구 만리동 구 양정고(현 손기정 기념공원) 옆 언덕에는 요즘 들어 유명해진 학교가 있다. 운동장도 교문도 없이 건물만 서 있어 얼핏 보면 입시학원이나 회사로 착각하기 쉽다. 여기가 교육부 고교학력 인정 서울여자상업학교이다. 정규 고등학교가 아닌 ‘각종학교’로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서울여자정보상업고등학교(서울여상)와는 다르다.

 교사들에 따르면 3천여 명의 학생 가운데는 연합고사에서 탈락한 학생 등이 많으나 성적이 괜찮은 지방 출신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이 학교가 지난달부터 간간이 매스컴을 타게 된 것은 직위해제된 교사6명이 출근투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학교설립자가 민자당 金一潤 의원(경주 · 월성)이란 거도 관심을 끌 만한 요인이었다.

 김의원은 현재 학교 일에 관계하고 있진 않지만 재단인 학교법인 경흥학원 이사장직을 인척관계인 김일환씨에게 맡기고 있으며 교장 김성호씨와는 고향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71년 문교부 설립인가를 받아 역시 각종학교인 연회여자상업학교까지 신하에 두고 있는 경흥학원은 올해로 17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부에서는 김의원이 여당의원이고 12대 국회 당신 문교채육위 간사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가 아직까지 각종학교로 남아 있는 이유가 의문이라며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교육부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각종학교의 유리한 점을 이용, “교비를 착복하는 등 돈벌기 위한 목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게 아니냐 하는 것이다.
 
학교측 조처 비판해온 교사 6명 직위해제
 박익환(36 · 상업영어) 송석헌(35 · 상법) 교사 등 직위해제된 교사들은 학교의 이러한 문제점을 계속 비판 · 폭로해오다 지난 6월 이른바 ‘교복사건’을 계기로 학교측으로부터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박교사는 또 김교장 등이 명예회손혐의로 고소하는 바람에 7월31일 경찰에 구속됐다. 이들 교사는 학교측의 사표제출 요구에 맞서 교육부에 직위해제에 대한 재심청구를 내놓고 있다.

 이들은 바른 말을 하는 자기들을 내쫓았다고 주장하는데, 학교측은 직위해제교사들과는 상당히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그들이 오히려 문제”라는 것이다. 김교장 등 일부 교사들은 박교사 등 6명에 대해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사사건건 문제를 삼아 종내에는 학교를 뒤집어엎으려는 교사들로서, 하는 짓이 꼭 전교조와 같다”고 비난한다.

 박교사 등은 전교조에 가입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학교측은 “전교조에서 그들 중 일부에게 은행지로용지(후원회비 송금용)를 보낸 사실로 보아 전교조후원회 가입 등 어떤 식으로든 전교조와 연계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찌됐든 김교장과 일부 ‘반전교조’ 교사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전교조 같은 짓’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동안 서로간의 갈등이 심상치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많은 학교에서 이러한 종류의 시각 대립이 있어 왔고 학교 밖에서도 끊임없는 논란의 제기돼왔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여자상업학교 사건은 문제를 지적하는 쪽과 문제를 일으키는 게 문제라는 쪽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일반인들이 어렴풋이나마 판단해볼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학교 안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일면 사소하게 보이기도 하는 그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꽃값징수. 지난 4월8일 할교는 교내미화를 이유로 교사가 당시 부당성을 제기해 학교측과 상당한 불화를 빚었다.

 김교장은 “꽃값은 학생회가 자체 결정한 것으로 그 교사들은 다 해봐야 1백만 원도 안되는 꽃값이 교장의 자동차 사는 데 들었으며 그래서 차가 여러 대 있다고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송석헌 교사는 “그렇게 말한 적은 없으며 잡부금을 걷는 일이 부당함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후 5월 중순, 스승의 날 선물을 위해 학교측은 또 돈을 거두려 했다. 송교사 등에 따르면 학교측은 직원회의에서 스승의 날 선물용으로 학생 1인당 1천5백 원씩 일괄징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때 유교사가 “일괄징수보다는 학생들의 자유의사에 맡겨 성의껏 선물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자 김교장은 그 자리에서 “스승의 날 선물은 절대 받아서도 안되고 학생들이 선물을 해서도 안된다”고 결정해버렸다.

 이 결과 “행사도 치르지 않은 채 우울하게 보낸 스승의 날이 되고 말았다”고 송교사 등은 말한다. 그러나 김교장은 “처음 돈을 거두려 했던 것은 학생들이 어차피 자기 반 담임선생님께 선물을 하게 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담임을 하지 않은 ‘비담임’교사들은 못 받게 되므로 다같이 받고는 뜻에서였다”면서 “스승의 날을 망치고 교사들 간의 분위기를 해친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 문제의 교복사건이 일어났다. 6월초 학교측이 1 · 2학년 학생들에게 하복착용을 지시하면서 ㅅ교복사를 지정해주자 박익환 교사가 “견본을 미리 공개하고 어느 업체건 학생들이 자유롭게 구입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학교측의 일방적 결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박교사의 조사로는 학교 부근의 ㅎ교복사 제품도 값도 4천원 싸고 품질도 더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측은 “ㅎ교복사는 그동안 체육복만 만들어온 비전문업체로 신뢰할 수 없었으며 미술 · 가정담당 교사 등이 참석한 교복선정위원회가 서울시내 교복사의 견본을 검토한 결과, 값 디자인 색상 등 모든 면에서 ㅅ교복사 제품이 적절하다고 최종결정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교사 등은 “교복뿐 아니라 부교재의 경우 공급사 선정과정과 원가의 2배 가까이 되는 가격을 볼 때 학교가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게 틀림없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나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교복사건 이후 박교사 등은 학교 밖으로 쫓겨났다. 직위해제 사유는 “교사로서의 품위손상 · 근무태만 · 전교조회원으로 사료 됨” 등 3개항이었다. 쫓겨난 교사들로서는 “어쳐구니 없는”사유였다. 그러나 이들 교사에 반대하는 이른바 구교교사협의회(구교협) 교사들은 이 사유를 “나가야만 될 충분한”것으로 보고 있다.

 직위해제 교사들의 출근투쟁을 저지하는 등 학교를 ‘지키고’ 있는 구교협 교사들은 “우리가 학교측의 사주를 받은 깡패교사들이나 되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아무리 조그만 것이라도 반드시 문제 삼고 지나가는 ‘투쟁교사’들과 반대입장에 서있는 사라들”이라고 주장한다.

 박교사를 명예회손혐의로 고소한 김교장은 “수업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자기들의 뜻에 동조하지 않는 동료교사는 물론이고 나까지 매도의 대상으로 삼고 ‘데모해야 학교가 발전한다’며 학생들을 선동하는 사람에게 교육을 맡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교사 등은 “잡부금 징수 등 학교의 부조리를 없애고 학생들에게 사실을 밝혀 고치도록 한 일이 과연 잘못된 일인것인가”라고 반문한다.

 ‘전교조 같은 짓’을 둘러싼 박교사 등 6명과 구교협 교사들을 포함한 학교측의 갈등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의 방식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의 방식 모두가 과연 교육적이었는가 하는 원론적인 물음도 나올 법하다. 양쪽이 드러낸 공통적인 문제점은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는 아집과 독선이 아닐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